지난 10월 3일은 독일이 통일된 지 20년이 되는 날이었다. 국내에서도 언론 보도뿐만 아니라 이를 기념하는 학술대회도 많았다. 이 중 한 학술대회에 참석한 독일 교수 한분이 독일에서조차 통일 20주년에 대한 관심이 한국에서보다 높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감탄 아닌 감탄을 표했다. 그렇지만 전철복 후철계, 앞바퀴가 넘어지면 뒷바퀴는 조심한다고 했다.독일은 통일문제에서도 우리에게 반면교사가 되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서독지역이 동독지역에 2조유로(약 3000조원) 이상을 ‘퍼준’ 결과 동독지역의 생활수준은 서독지역의 80% 수준까지 상승했고 생활양식은 완전히 동질화되었다. 그렇지만 생활수준의 격차가 줄어드는 추세가 처음 10년 동안에는 빠르게 진행되었으나 최근 10년 동안에는 정체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향후 동서독 간 경제적 격차가 줄어들고 독일 헌법에 규정된 “대등한 생활수준의 확보”가 전국적으로 실현될 가능성은 갈수록 희박해지고 있는 게 최근의 현실이다.갈수록 많은 독일인들이 통일을 자신들의 위대한 업적으로 기리고 있는 것도 맞지만 동독지역의 공동화에 대한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동독지역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서독지역으로 이주한 인구가 지난 20년 동안 180만 명에 이르고 2020년까지 150만 명이 더 이주할 것으로 예상되는 암울한 전망이 통일독일을 뒤덮고 있다. 동독지역에 종업원 10,000명 이상을 고용한 기업이 하나뿐이고 그마저도 제조업이 아니라 송전회사라니 일자리문제가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젊고 유능한 인력이 서독지역으로 빠져나가니 동독지역에 대한 투자는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이를 정치적으로 돌파할 세력도 부재한 실정이다. 독일 내각에서 메르켈 총리를 제외하고 모든 각료가 서독 출신이라는 사실은 정치권력의 편중현상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정치권력의 편중은 동독지역 주민의 이익을 대변할 세력이 없음을 의미한다. 눈앞에서 나타나고 있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묘수가 당장은 보이지 않는다.독일이 통일되기 전 한국이 독일보다 먼저 통일 될 것이라고 아마도 모든 한국인이 장담했을 것이다. 역사적 정당성에서보나 주변국의 반응에서보나 독일 통일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막상 독일 통일논의가 수면 위로 떠올랐을 때 러시아는 물론 영국과 프랑스의 반응도 한 결 같이 부정적이었다. 독일 통일을 거부하는 주변국 또는 승전국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것은 다름 아니라 당시 동독주민의 통일 열망이었다. 매일 수십만 명이 거리에 나와 “우리는 한 민족이다”를 외치는 것을 보며 프랑스, 영국은 물론 소련마저도 통일을 승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60년대 말 동방정책이 시작되면서 통일되기 전까지 서독은 동독에 대하여 막대한 경제지원을 했지만 단 한 번도 통일의 ‘통’자도 꺼낸 적이 없었다. 동독 정부도 ‘2민족 2국가론’을 주장하면서 통일에 대한 거부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던 상황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순식간에 급변했다. 서독인과 같은 풍요를 원하는 동독인들은 통일을 요구하는 시위를 계속하는 한편 서독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서독으로의 편입을 원하는 동독인의 열망은 누구도 다스릴 수 없었다. 그렇게 독일은 통일되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주변국의 반대를 무력화시킨 독일통일의 동력은 서독을 동경하는 동독인들의 열망이었다는 사실이다.그렇다면 한반도는 지금 어떠한가? 한반도에서도 독일에서와 같은 동력, 남한에 대한 북한 주민의 동경이 끓어오르고 있는가? 아마도 그 정반대일 것이다. 최근 중국과 북한의 국경지대에서 북한 주민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는 – 대표성을 가지지는 못할지라도 – 한반도 통일문제의 현주소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북한 정권이 붕괴된다면 북한이 중국에 편입되기를 원하는지, 남한에 편입되기를 원하는지를 묻는 설문에 중국에 편입되기를 원하는 주민이 더 많았다는 결과가 나왔다. 놀랍기는 하지만 충격적인 결과는 아니라면 잘못된 생각일까? 이러한 결과가 북한 주민 대다수의 생각을 나타낸다면 한반도 통일에 관한 우리의 패러다임은 근본적인 수정을 필요로 할 것이다. 더욱이 중국에 대한 종속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북한경제를 바라보면 ‘북한 붕괴 = 북한의 남한 흡수 통일’로 정식화되어 있는 우리의 고정관념은 수정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왜 상황이 이렇게 변했을까?통일 후 독일이 치러야 하는 막대한 통일비용을 보면서 국내에서도 한반도 통일비용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졌고 이는 통일에 대한 ‘공포심’을 특히 젊은 세대에 심어주었고 통일에 대한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나아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정부에서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보수세력은 ‘퍼주기’로 끊임없이 폄하했다. 최근에 이명박 정부는 북한에 대한 쌀 지원을 30만톤으로 한정하기로 결정했다. 김정일은 “빌어먹는 경제는 죄악”이라고 탄식하면서도 중국에 손을 내밀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 주민의 눈에 비친 남한과 중국의 대조적인 모습을 상상해보면 앞의 설문조사 결과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 주민들이 ‘째째한 형’보다 ‘통 큰 이웃사촌’이 더 낫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지 않을까? 우리가 북한을 포용할 자세가 전혀 안되었는데 북한이 남한 사회를 동경하고 남한사람들처럼 사는 것을 갈망할 것이라 기대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어이없는 ‘자뻑’일 것이다. 한창 자라는 청소년에게 점심 한 끼 공짜로 나누어주는 데도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가 2,500만 북한 주민을 포용할 수 있을까? 한반도 통일은 남한사회가 원하지 않는 순간에 올 수 있다. 독일은 통일을 입에 담지 않으면서도 암묵적인 통일 준비를 20년 동안 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통일과정을 완료하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에선 통일 얘기가 매일 들리고 있지만 준비는 전혀 되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토록 두려워하는 통일비용을 증대시키는 일만 벌어지고 있다. 뜬금없는 ‘통일세’ 발언은 북한을 자극해서 오히려 통일비용을 높이는 역효과를 가져왔다. 독일의 경험에서 보면 남북한 하기에 따라서 주변국은 통일과정에서 종속변수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한반도 상황은 이 가능성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남한이 가장 원하는 남한 주도의 통일은 북한 주민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비로소 가능하다. 북한 주민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그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 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으려면 남한사회 자체가 희망이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결국 한반도 통일에 대한 접근은 남한사회를 배려와 포용력이 있는 사회로 변화시키는 사업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10년 동안 퍼주어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북한을 비난하기에 앞서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경제협력을 ‘퍼주기’라고 아까워하는 우리 자세부터 고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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