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산업은 한국의 효자산업이었다. 97년 외환위기 직후에 한국의 수출을 주도한 것도 IT산업이었고 2000년대 초반 세계적인 IT버블 붕괴 이후에도 오히려 한국의 IT산업은 세계에서 시장지배력을 확대하며 한국의 성장을 주도해왔다. 매년 기업들의 분기실적이 발표될 때면 삼성전자가 반도체로 얼마를 벌었는지, 엘지전자가 세계 휴대폰시장에서 얼마를 점유하고 있는지 등이 화제가 되곤 해왔다. 그런데 2009년부터 스마트폰 혁명이 시작되고 전세계의 산업판도가 흔들리기 시작하자 갑자기 한국의 IT산업이 위태롭다느니 지나치게 하드웨어에 집중된 산업구조가 문제라느니 하는 불안감 섞인 이야기들이 줄지어 나오고 있다. 순식간에 변하는게 여론이고 분석이라지만 잘 나가던 한국 IT산업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걸까? 아니면 새삼스러울 것 없는 한국 IT산업의 고질적인 문제가 스마트폰 혁명으로 재조명된 걸까? 스마트폰 혁명이 재조명한 한국 IT산업의 문제점 스마트폰 혁명은 앱스토어(Appstore)라는 새로운 수익모델을 만들어냈고 이로 인해서 소프트웨어 산업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또한 애플과 대만의 전문 제조업체 팍스콘의 수평분업형 모델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스마트폰 혁명으로 인해 주목받게 된 소프트웨어 산업과 새로운 IT제조업 모델은 거꾸로 기존 한국 IT산업의 문제점들을 재조명하게 되는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그동안 지적되어왔던 한국의 IT산업의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IT제조업’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하드웨어 산업에 비해 ‘소프트웨어’ 산업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문제다. 일부에서는 IT제조업에서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 문제에 대해서 양극화라는 것이 추세를 반영하는 것이라서 현재 IT제조업에 있는 중소기업의 생산성이 향상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되지만 사실 크게 변한 상황은 없다. 오히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는 확대되고 있는 것이 경향이다. 원래 IT산업은 네트워크 효과를 지니고 있다. 네트워크 효과로 초기에는 사용자의 증가 추세가 느리지만 어느 임계점을 넘어서면 사용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산업의 경우 일정정도 성장하고 나면 산업 내에서 양극화가 심화되게 되는데 이를 적절히 규제하는 것이 정부정책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정부정책이 97년 외환위기 이후 수출에만 지나치게 집중되었다. 이로 인해 대기업에만 자원이 집중되었고 IT 중소기업들은 정부정책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거나 대기업들의 하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더구나 IT중소기업들은 대기업에 비해 자본투입이 절대적으로 낮아 오로지 노동에만 의존하는 문제가 있다. 스마트폰 혁명으로 다시 드러난 IT 제조업의 문제점을 짚어보면 전체 IT 제조업에서 반도체, 디스플레이, 휴대폰 등 일부 수출 중심의 최종재가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이어서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 또한 수출효자 노릇을 하는 휴대폰,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의 핵심부품에 대한 자립도가 낮은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중소기업이 담당하는 부품소재산업이 일본, 대만 등에 비해 취약한 지점도 곧 잘 지적되는 문제다. IT제조업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 문제는 결국은 경제 주체들의 투자 의욕을 떨어뜨리게 되고 장기적으로 성장잠재력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연구결과다. 국민들의 입장에서 더 큰 문제는 IT제조업 고용의 50% 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IT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에 대한 낮은 협상력과 불공정한 거래 관행으로 충분한 설비투자나 연구개발투자를 하지 못하고 오로지 노동에만 의존하는 방식으로 생존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다보니 IT제조업 분야에서 대기업들이 제아무리 휴대폰, 디스플레이 등을 많이 팔아도 중소기업 제조업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는 나날이 높아져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더구나 최근 스마트폰 혁명으로 부품소재산업을 담당하는 중소기업들의 발전 없이는 전통적인 대기업 중심의 성장이 지속되기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이 되면서 대기업 중심의 제조업 모델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지나치게 하드웨어를 중심으로 구성된 한국의 IT산업 구조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사실 이미 세계의 IT산업은 소프트웨어 산업을 중심으로 발전해오고 있었다. 세계 IT시장은 전체 규모 3.4조 달러(‘08)에서 정보통신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46.6%, 소프트웨어 산업이 30.7%에 이르고 있고 하드웨어 산업은 22.7%에 불과한 상황이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는 전체 IT산업 생산액 중 하드웨어 산업이 73%를 차지하고 소프트웨어 산업은 8%에 불과하다. 한국의 언론들이 매년 삼성이나 엘지의 반도체, 휴대폰 판매량을 대서특필하는 동안에도 세계 IT산업은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주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일부에서 애플의 아이폰 출시 이후 한국의 무선인터넷 정책 등을 두고 이동통신사들이 ‘갈라파고스 신드롬’에 갇혀있었다는 비판을 받아왔지만 사실 재벌대기업들의 화려한 판매실적과 이를 마치 국가적 자부심으로 여기게 조장한 언론들의 호들갑 뒤에서 한국 IT산업 전체가 ‘갈라파고스 신드롬’에 갇혀있었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이러다보니 스마트폰 혁명이 소프트웨어 산업을 중심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게 되자 급기야 한국 정부와 대기업들도 하드웨어 산업중심에서 소프트웨어 산업 중심으로 구조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대기업과 하드웨어산업 중심으로 성장해온 한국의 IT산업이 지금까지 수출 등으로 벌어들인 과실을 대기업만이 독점하다시피 해왔고 더구나 이런 과실이 IT제조업과 콘덴츠 개발 등을 중심으로 한 소프트웨어 산업의 중소기업들에게까지 돌아가지 않으면서 IT산업의 성장이 국민경제와 괴리되는 현상이 심화되어 왔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더구나 성장의 과실을 얻지 못하는 중소기업들은 오로지 노동을 쥐어짜는 방식으로 밖에 이익을 창출하지 못하자 이로 인해 정작 중소기업 노동자들이나 개발자들은 극심한 노동강도에 시달리게 되었고 IT산업이 신종 3D산업이라는 취급을 받는 지경까지 온 것이다. 한국에서 반복되는 애플과 팍스콘 노동자들 이러한 한국 IT산업의 고질적 문제점들이 ‘참여, 공유, 개방’의 가치를 실시간으로 전파한다는 스마트폰 혁명으로 개선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국민들의 삶이 그렇게 단순하게 개선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스마트폰 혁명이 초래한 세계적인 산업의 변화가 한국의 재벌대기업들의 경영전략 등에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은 크다. 아마 한국의 대기업들도 소프트웨어 산업을 중시하게 되고 부품소재산업을 강화하는 등의 적극적인 대응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곧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개발자들과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이 나아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될 수는 없다. 사실 스마트폰 혁명을 세계적 차원에서 주도하고 있는 애플만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애플은 자사의 아이폰을 미국에서 생산하지 않고 대만의 혼하이그룹 자회사인 팍스콘이라는 전문 제조업체에서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팍스콘의 노동자들은 유례 없이 열악한 노동시간과 환경에서 일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최근 몇 달새 무려 열두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애플 아이폰의 세계적인 성공이 중국의 팍스콘 공장 노동자들의 노동강도와 비례하는 비극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애플과 팍스콘 노동자들의 관계는 한국의 재벌대기업과 중소기업 하청 노동자들의 관계와 전혀 다르지 않다. 한국의 재벌대기업들이 스마트폰 열풍에 동참해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새로운 이윤을 창출하고 부품소재산업 등을 혁신시킨다고 해도 이는 중소기업, 그리고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에 대한 노동강도를 증가시키는 방법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애플이나 구글과 같이 스마트폰 시장에서 앞서가는 선두주자를 따라잡기 위해 제품단가 하락을 통한 시장지배력 확대를 목표로 중소기업에 단가압력을 넣을 수도 있다. 이미 휴대폰 시장에서 재벌대기업들이 세계 휴대폰 시장을 더 많이 차지할수록 국내 부품생산을 담당하는 중소기업들은 이익률이 하락한 2005년, 2006년의 기존 사례가 반복될 수 있다. 더구나 ‘앱스토어’등의 성공으로 주목받고 있는 소프트웨어 산업, 콘덴츠 산업 등의 경우도 대기업들이 나서서 이를 단독으로 수직계열화할 경우 자본도 투자여력도 부족한 중소기업들이나 개발자들이 이에 맞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다양한 어플리케이션 개발이나 콘텐츠 개발도 일정 규모 이상의 데이터의 대량 축적이나 인프라가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떤 거대한 변화라해도 초창기에는 늘 빛나는 성공을 거둔 개인들이 주목받지만 어느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는 규모의 경제를 앞세운 재벌대기업들의 위용만 주목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2000년대 초반 IT중소벤쳐기업들의 몰락과 대기업들의 독점화 현상도 이를 보여주는 사례다. 진정한 상생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따라서 현재 한국 IT산업의 바람직한 혁신과 발전을 위해서는 기존의 정부정책과 함께 기업들의 경영방식도 변해야 한다. 정부정책은 그동안 수출효자산업으로 인식해온 IT대기업들의 하드웨어 산업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었다. 이제는 오히려 중소기업들의 부품소재산업 강화를 위한 각종 지원이 더 시급하게 추진되어야 한다. 또한 하드웨어 중심이 아니라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소프트웨어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대기업들에게 그냥 맡겨둬서는 안 된다. IT중소기업들이나 콘덴츠 업체,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들이 노력한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적극적으로 조성해야 한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지적재산권을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공동으로 소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이런 정책은 정부가 선도적으로 나서야 하는데 현재 정부가 발주하는 소프트웨어 사업의 경우만해도 87.8%가 공공기관이나 정부가 지적재산권을 소유하는 등 선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점은 심각한 문제다. 그간 수출주도정책의 효과를 톡톡히 보았던 대기업들도 이제 변화된 환경에서는 중소기업이나 소프트웨어 개발자, 콘덴츠 업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의 협력과 공유가 중요하다는 것을 시급히 깨달아야 한다. 냉정하게 말해서 스마트폰 혁명, 모바일 웹2.0 혁명이 그대로 대기업, 중소기업의 관계 변화, 개발자 등을 포함해 중소제조업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애플도 삼성도, 구글도 결국은 새롭게 열리고 있는 스마트폰 시장을 장악하기 위한 생산의 고리에서 최종점을 차지하기 위해 플랫폼 전쟁이니 혁신이니 하는 말을 가져다 혈투를 벌이고 있을 뿐이다. 글로벌 대기업들은 노동의 문제, 고용의 문제, 국민생활의 변화와 개선 등을 고려하기보다는 이윤추구에 몰두하는 것이 우선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의 재벌대기업들이 단순히 새롭게 열린 시장에서 수직계열화를 통해 기존의 방식대로 중소기업과 개발자들의 노동과 노력을 빼앗아가는 방식을 고수한다면 이것은 스마트폰 혁명이 초래한 변화에 대한 얕은 고민과 시야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모바일 웹2.0 혁명의 근본가치인 ‘참여, 공유, 개방’은 기업의 변화에 앞서 국민들의 의식에 변화를 낳 있다. 이로 인해 국민들은 이제 단순히 스마트폰의 소비자로서 머물지 않고 정치, 사회, 경제적인 문제에 실시간으로 참여하면서 소셜미디어를 통해 더 많이 소통하고 더 많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거대기업들의 구태의연한 경영방식이나, 공존을 외면하는 독점과 편법을 예리하게 지적하며 참여와 공존을 거부하는 낡은 질서를 매섭게 몰아붙이고 있는 것이다. 모바일 웹2.0 혁명의 ‘참여, 공유, 개방’의 가치는 국민들의 의식에 이미 자리잡기 시작했다. 어쩌면 한국의 글로벌 대기업들은 세계시장의 트렌드를 쫓아가지 못하는 것보다 먼저 국민의식의 변화를 쫓아가지 못하는 것을 더 심각하게 걱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진정한 스마트폰 혁명은 글로벌 기업들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가치를 수용하는 국민들의 대중적 요구가 주도하는 것이다.
스마트폰 혁명이 한국 IT 산업에 고질적인 문제를 재조명한 측면에는 여려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중에서는 대기업/중소기업 문제, 갈라파고스 섬 현상, 내수/수출 의존성, 노동 착취 구조의 문제, 정보 접근성의 평등, 통신의 공공재 등등…
그러나 이 모든 것들에 대해 다 말해야 하는 것일까요? 한 번 쯤 짚고 넘어가도 좋을 듯 합니다만, 이미 많은 얘기들이 기존에 있었던거 아닌가요? 대통령 선거때만 되면 등장하는 단골 메뉴들이 아닌가요?
저는 스마트폰 혁명이 단순이 저런 것들을 재조명하는 것이라면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다고 봅니다. 스마트폰 혁명이 새롭게 가져다 준 것은(만일 그것이 있기라도 하다면, 한국이 아닌 세계를 보라) 그것은 일반 소비자의 측면에서는 정보 접근성과 관련된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이고, 개발자의 측면에서는 소프트웨어 산업의 구조 변화일 것입니다. 이런 부분에 초점을 맞추면 더 좋은 연구 결과가 나오지 싶은데요. 뭐 제 개인 의견이었습니다.
네 말씀하신 부분에 깊이 공감합니다. 이 기획이 일단은 큰 차원에서 한번 점검해보고 세부적인 부분에 테마을 잡아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국민들의 라이프스타일 변화와 개발자 측면에서 소프트웨어 산업의 구조변화가 중요하다는 것은 실감하고 있습니다. 세부테마를 잡을때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인간소외현상이 심화되면서 관계회복의 욕구를 정보통신기기로 해소하려는 경향이 안타깝습니다. 눈빛을 마주하지 않고 상대의 음성을 듣지 않고 나의 언어를 직접전달하지 못하는 소통에 의지하는 관계에 적잖은 회의가 듭니다. 아이폰을 이용한 ‘트위터’ 같은 웹서비스는 넓고 다양하게 연결시켜 줄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을 통해 만나는 것은 ‘그사람’인지 아니면’그사람의 의식정보’인지 헷갈립니다. 자신이 원하는 정보와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자신이 원하는 언어만을 향한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적인 반복… 이런 지점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네 의견 참고하겠습니다. 사실 트위터등을 두고 소통이 일방적이다라는 비판을 하시는 분들도 계시더라구요. 인간소외라는 측면에서 추가로 고민해보겠습니다.
이건 트위터의 출현에 대해 인간주의 편향적 의사소통 방식에 대한 향수인가요?
의사소통방식에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눈빛으로 ,목소리로, 몸짓으로 하는 인간적인 방식도 있습니다.
또한 페로몬을 통한 개미들의 의사소통 방식도 있습니다.수억년을 진화해오면서 살아남은 가장 강력한 유전자(개미)가 선택한 개체간의 의사소통 방식은 페로몬을 통한 의사소통 방식입니다. 이러한 방식을 stigmergy라고 합니다.
트위터나 오픈 소스의 개발 방식도 이러한 stigmergy의 관점에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의사소통방식이 인간의 한 진화 방식의 최전선에 있는 것이라는 관점을 갖고 있습니다. 즉 인간은 이런 방향으로 현재 진화중인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