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국민의 방송인가. 전국언론노조 KBS본부가 파업출정식에서 스스로 던진 ‘화두’다. 기실 KBS가 걸어온 길을 톺아보면 국민의 방송이라는 데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특히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특보가 사장 자리에 앉았기에 더 그렇다. 시청자 사이에 ‘땡이뉴스’라는 우스개가 퍼져갈 정도다. 더러는 과장이라고 눈 홉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땡전뉴스’와의 사이에 놓인 30년 세월을 감안해보라. 결코 부풀리기가 아니다. 이 대통령이 어린이날 행사에서 찧은 엉덩방아까지 ‘찬양’하는 보도에선 이승만의 방귀에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며 부닐던 장관의 구린내가 묻어난다.국민의 방송이 아니었는데도 시청자들이 KBS의 그 ‘참칭’을 용인해온 까닭은 간명하다. 국민으로부터 수신료를 받는 공영방송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민의 방송이 소임을 다하지 못할 때 불거진다. 그래서다. 언론노조 KBS본부가 파업에 들어갈 때, KBS 경영진의 반응은 차라리 놀랍다. “30년 숙원인 수신료 현실화를 위해 전사적 역량을 기울이는 중차대한 시기”에 파업은 “해사행위”란다.수신료 인상 국면에 파업은 해사행위?국민의 방송을 ‘권력의 방송’으로 만들어놓고 언죽번죽 수신료는 대폭 올리겠다는 부라퀴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옳을까. 그뿐인가. 법적 절차를 모두 밟은 파업을 방송 자막을 통해 ‘불법’으로 왜곡한다. 국민을 시들방귀로 여길 때나 가능한 작태들이다.기존의 KBS노조도 어금지금하다. 알다시피 기존 노조와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는 다른 조직이다. 대통령 특보였던 인물이 사장으로 들어올 때 기존 노조가 미온적으로 대처했다고 판단한 사람들이 새로 결성한 노조가 언론노조 KBS본부다. 새 노조와 달리 기존 노조는 수신료를 논의하는 이사회 회의실 앞에서 인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인상에 반대하는 이사들은 즉각 사퇴하라고 압박까지 했다. 기존 노조도 공정성 시비를 마냥 모르쇠할 수는 없었을까. “특단의 대책을 세우도록 강력한 주문을 할 예정”이라고는 밝혔다. 하지만 왜 ‘예정’인가. 더구나 특보 출신의 사장에게 ‘주문’해서 방송이 달라지리라 믿을 만큼 순진한가. 다름 아닌 새 노조의 파업이 바로 그 공정방송을 세우려는 ‘특단의 대책’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가.기존 노조로선 자신을 ‘어용’으로 비판하는 시민사회에 발끈할 수 있다. 하지만 찬찬히 짚어볼 일이다. 특보 출신이 ‘국민의 방송’ 사장으로 오는 걸 막지 못한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KBS노조의 전통에 비춰보아도 그렇다. 그럼에도 수신료 인상에 앞장서는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라. 무엇이 보이는가. 왜 새 노조가 국민 앞에 반성문을 쓰며 애면글면 파업에 돌입했는가를 성찰하고 연대에 나설 때다.기존 KBS노조도 파업에 연대하라파업에 참여한 방송인들도 다짐했듯이 KBS를 국민의 방송으로 세우는 길은 탄탄대로가 아니다. ‘대장정’이다. KBS 역대 사장은 지금까지 모두 정권과 닮은꼴이었다. 그 긴 고리를 끊으려면 내부 구성원들이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이미 새 노조의 파업을 왜곡하는 무리는 ‘정치적 접근’으로 언구럭 부리고 있다.참으로 국민의 방송을 구현하겠다는 대장정의 출발점이 되려면 파업에 기꺼이 몸 던지겠다는 옹찬 결의가 구성원 사이에 넘실대야 한다. 바로 그 점에서 파업은 ‘학교’다. KBS 새 노조가 국민의 방송을 일궈가겠다는 결기를 곧추세워간다면, 대장정에 함께 할 국민은 많다. 국민의 방송이기 때문이다.손석춘 2020gil@hanmail.net*편집자/ 이 글은 <경향신문>에 실린 칼럼(7월8일자)입니다. 경향신문사 동의를 얻어 올립니다.
기존노조는 아마 수신료 인상에 반대 안할겁니다.
수신료 인상은 보너스로 이어질 수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