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PIIGS의 재정문제2008년의 글로벌 정치경제 위기에서 직격탄을 맞은 Ireland와 Iceland에 이어 최근 포르투칼, 그리스, 스페인의 재정악화가 부각되면서 소위 PIIGS 문제가 세계 경제 전체에 부담을 주고 있다. 이 중 가장 심각한 나라는 그리스로 유럽연합과 유로 통합 경제 전체의 실패를 알리는 전주곡인 것처럼 과장되기까지 한다. [그림1] 유로 지역 국가들의 재정과 국가 현황 출처 : European Commission(유럽 연합 집행기구) 그리스는 2009년 재정적자가 금번 경제위기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아일랜드, 영국과 비슷한 수준인 GDP의 12.8퍼센트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올 초 유럽 연합 집행기구에서 설정한 목표인 8.7퍼센트를 훨씬 초과하는 수치이다. 경제위기 전에 EU가 세운 규정에 따르면 회원국들의 재정적자 목표치는 3퍼센트고 최대 허용치는 6퍼센트이다. 이 기준과 비교하면 그리스의 2009년 재정적자는 목표치의 4배 허용치의 2배 이상을 초과한 것이다.이는 기존에 지속적으로 증가해온 그리스의 공공부채를 더 급속히 키워, 채권시장에서 채무불이행 가능성까지 회자되었다. 그 결과 2월 초에 국채 CDS가격이 단기간에 4배 가까이 치솟았다. Economist지에 따르면 오는 4월과 5월에 그리스의 채무 중 약 200억 유로가 만기가 된다고 한다. 시장의 투자가들이 그리스가 이 돈을 갚지 못한다는 쪽에 “돈”을 걸면서, 그리스의 재정문제가 한 때 새로운 전 세계적 금융위기를 몰고 올 것이라는 위기설이 퍼지기도 했다 ("Greece’s sovereign-debt crunch, 2010.2.4). 현재는 그리스 정부가 긴축정책 계획을 발표하고 독일과 프랑스 등 EU의 주요국들이 그리스 지원책을 조율하면서 위기의 파장이 다소 진정되고 있는 분위기이다. 2월 3일 397bp(3.97퍼센트)까지 치솟았던 CDS 프리미엄이 3월 초에는320bp 근처에서 움직이고 있다. 그렇지만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며, 그 동안 몇 번의 상황반전이 반복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스의 긴축정책 발표와 함께 유럽연합이나 IMF의 지원이 이어져야 하는데, 아직 어떤 주체가 어떤 방식으로 그리스에 도움을 줄지 결정이 나지 않았다. EU안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독일의 경우 EU의 기본규약 성격을 가진 리스본조약이 금융지원 금지조항(no-bailout clause)을 명시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조약을 깨고 그리스를 지원할 경우 회원국의 모럴 해저드가 초래되어 유럽연합 전체의 미래를 위협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EU보다는 IMF에서 지원을 받는 것이 여러 면에서 올바른 선택이란 주장을 제시하기도 한다. EU내에 IMF와 같은 성격의 기구를 신설해야 한다는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세우는 입장도 등장했다. 정치적인 영향력을 최대한 배제한 독립적 금융기구를 만들어 “회원국들의 전반적인 경제 상황을 정기적으로 감독하고, IMF가 하는 것처럼 곤경에 처한 유로 지역의 나라들을 지원하는 기금을 조성하고 운영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도록 하려는 것이다(이코노미스트지, "Disciplinary Measures", 2010. 2. 18). 2. 재정문제를 둘러싼 사회세력들의 싸움재정문제의 심각성은 남유럽 국가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 미국과 일본도 문제의 중심에 서 있다. 일본의 국가부채는 GDP의 229퍼센트 수준으로 주요국 중 가장 높다. 미국의 경우는 GDP의 92퍼센트로 일본에 비하면 아직 “여유”가 있지만 미국의 무역적자 문제와 함께 생각한다면 세계 정치경제 체제의 가장 큰 골칫거리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미국은 지난 대선에서 권력이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이양되고, 상하원 모두에서 민주당이 과반이상 다수를 차지하게 되면서 과감한 경기부양책을 펼치게 되었고, 그 결과 2009년 재정적자가 큰 폭으로 늘어났다. 공화당은 재정적자 확대를 구실삼아 오바마 정부의 개혁정책에 제동을 걸고 있다.현재 민주당과 공화당, 그리고 그 두 정당을 지지하는 사회세력 간의 핵심적인 대립 지점은 “작은 정부” 대 “큰 정부”로 정리될 수 있다. 오바마의 당선 이후 공화당 지지 세력은 미국의 독립전쟁을 주도한 티파티(Tea Party)운동을 모방하여 “작은 정부”를 주장하며, 오바마 정부의 경기부양책과 누진세 강화 정책, 건강보험법 개혁 정책 등에 대해 줄기차게 반대 캠페인을 펼쳐왔다. 티파티 운동세력은 최근에 기금을 모아 다가오는 11월 선거에서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후보들을 적극 지원하고, 건강보험 개혁법안에 찬성하는 등 정부 역할 확대를 주장하는 의원들에 대해서는 낙선운동을 펼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한 동안 수세적 입장에 있었던 오바마 지지 세력도 전열을 가다듬고 반격에 나서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보수 쪽 풀뿌리 운동 티파티에 맞서 중도 성향의 “커피 파티” 운동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고 한다. 이 운동을 주도한 사람이 한인 2세 사회운동가 애너벨 박(한국명 박수현)이라는 사실이 국내에 알려지면서 화재가 되고 있다(한겨레, 2010.3.4). 한겨레신문에 따르면 2009년 1월 박씨가 자신의 페이스북(Facebook) 페이지에 티파티 운동의 부당함을 주장하고 커피 파티라는 이름으로 정치적 대화를 나누자고 제시한 이후, 참여자들이 서서히 늘기 시작하여 3월 3일 현재 6만 명이 넘는 회원이 가입했다고 한다. 또한 3월 13일에는 전국적인 커피 파티를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풀뿌리 운동 쪽에서의 반격에 맞춰, 오바마 대통령도 3월 9일 필라델피아를 방문한 자리에서 보험업계야말로 건강보험 개혁의 장애물이라고 직접 거론하고, 오는 18일 이전에 하원에서 건강보험 개혁 법안을 처리해 달라고 날짜까지 못 박고 나섰다. 오바마 대통령이 개혁안 관철에 대해 강한 의지를 내비치자 보수적 성향의 공화당 의원들과 티파티 운동세력은 다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 두 세력 간 힘겨루기의 첫 판은 건강보험에 대한 상하원 통합개정법안의 향방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3. 이론 투쟁미국 내에서 작은 정부 vs. 큰 정부라는 구도를 가지고 사회세력 간의 충돌이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국가부채는 갚지 않아도 되는 부채”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시선을 끌고 있다. 북미의 대표적인 케인지언 경제학자이며, 『대공황』, 『풍요한 사회』등의 저서로 유명한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John Kenneth Galbraith)의 아들인 제임스 갤브레이스 텍사스대 교수는 오바마 대통령이 2월 18일 재정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초당적인 ‘국가재정책임개혁위원회(NCFRR)를 대통령령으로 설치하기로 한 것은 월가 세력의 압력에 굴복한 것이라 주장했다(프레시안, 2010. 3. 8). 그는 오바마 대통령이 금융자본에 밀려 재정지출 확대 기조에서 재정긴축으로 방향을 바꾸고 있는데, 이런 방향 선회를 막아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제임스 갤브레이스는 The Nation에 기고한 “재정적자를 방어하며”라는 글에서 “국가부채는 민간부채와는 달리 갚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2010. 3. 4). 부연하자면, “국가가 자국 통화로 표시된 부채로 인해 파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공공부채는 미래 세대에게 부과되는 짐이 아니다. 공공부채는 꼭 갚을 필요가 없고, 실제로 부채가 상환되지 않을 것이다.”그의 또 다른 핵심 주장은 재정적자는 공적 금융의 성격을 지니고 있고, 이는 민간은행에 의해 주도되는 사적인 대출과 경쟁적인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갤브레이스의 이런 주장이 가지는 함의는 다음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두 가지 적자운영 방식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하나는 매우 유용한 방식으로 뉴딜 때처럼 나라를 재건하는데 필요한 적자이고, 다른 하나는 해악한 것으로서 수백 만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그들이 실업보험에 의존해서 살아가게 만드는 적자이다.” 그래서 재정적자 문제를 과장하여 출구전략을 서두르거나, 큰 정부를 지양해야 될 필요가 전혀 없다는 실천적 결론에 도달한다. 갤브레이스의 주장이 다소 생경하게 들리지만, 최신 이론은 아니다. 이런 주장은 Chartalism이라고 불리는 화폐이론을 토대로 하고 있는데, 이는 1920년대 크납 G. F. Knapp이란 학자에 의해 발전되었다. 그 후 케인즈가 한층 더 발전시켰고, 현재는 포스트-케인지언들이 계승해 발전시키고 있다. 차탈리즘은 법정화폐이론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이 이론은 수량화폐이론이 근간으로 하는 상품화폐 개념과는 정반대의 개념에 근거하고 있다. 법정화폐이론은 화폐가 오로지 국가의 권력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관리된다고 주장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화폐 자체가 정부의 재정적자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화폐는 국가권력이 특정 징표를 소비할 때 쓰고 세금의 형태로 수거하면서 시장에서 화폐로서의 권위를 인정받게 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국가가 소비하며 유통시킨 돈을 세금으로 다 거두어들이면 (즉 재정적자가 없다면) 민간이 보유하고 있을 수 있는 돈은 하나도 없게 된다. 더불어 다음의 몇 가지 결론이 도출된다.첫째, 정부의 지출은 소득(주로 세금)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 둘째, 정부가 납세자들의 돈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소비를 통해 돈을 창출해 내고 있는 것이다.셋째, 정부는 화폐를 찍어낼 수 있기 때문에 부채를 통해 자금을 모을 필요가 없다.마지막으로 실천적 결론은, 경기활성화를 위해 생산적인 분야에 재정지출을 늘린 결과 발생한 재정적자는 해로운 것이 아니고, 오히려 자산을 담보로 하고 있는 민간부채를 줄이는 효과와 유효수요의 증가로 이어져 경제성장에 꼭 필요한 것이다.신자유주의 체제가 깊은 위기에 빠진 후 대안적인 체제가 모색되면서 다시 경제학계의 이론투쟁이 활발해지고 있다. 오래 동안 빛을 보지 못하고 도서관에서 잠을 자고 있던 화폐이론도 다시 기지개를 펴고 있다. 이론적인 싸움이 우리의 일상과는 무관해 보여도, 결국 그 동안 우리를 심하게 괴롭혔던 신자유주의체제도 그 이론투쟁을 기반으로 발전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이 글에서는 어떤 이론이 더 타당한가를 따지진 않겠다. 다만 어떤 화폐개념에 바탕을 두고 정치경제 체제를 디자인 하는가에 따라 다양한 사회세력 간에 혜택과 부담이 분배되는 방식이 다를 것이고, 신자유주의 체제에서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혜택이 집중되었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글을 마치겠다. 그리고 재정위기와 관련해 금융시장에서 CDS프리미엄이 폭등하고, 채권 이자가 상승하는 일련의 현상도 갤브레이스가 주장하는 것처럼 금융가의 “음모”중 하나일지도…… 박형준 hjpark@saesayon.org [insert_php] if ( ! function_exists( ‘report’ ) ) require_once(‘/home/saesayon/script/report/report.php’);report( ” );[/insert_ph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