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경제위기 이후, 80년대 신자유주의 반혁명 이후 잊혀졌던 케인즈가 다시 읽혀지고 있다.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자본주의 경제의 작동에 관한 케인즈의 분석과정책대안에 대해서 다시 주목하고 있다는 말이다. 맑시스트 또한케인즈의 화폐와 금융에 대한 분석을 통해 자본주의불안정을 다시 해석하며 두 학파간 간극을 메우려 시도하고 있다.그러나 우리는 케인즈주의하면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다.정부의 적극적 개입 혹은 재정지출 정책이 케인즈주의의 핵심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이러한 수요관리 정책은 사실상, 케인즈를 신고전파적으로 해석한 신고전 케인즈주의 혹은 신고전파 종합의 내용이다. 케인즈 사상의 아류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수요관리정책은 70년대까지 경제학의주류였으며 자본주의 황금기를 구축한 주요한 이론적 토대이기도 하다.영국의 보수당이나 미국의 공화당조차도대처나 레이건이 등장하기 전까지 케인즈의 수요관리 정책을 사용하였다.그러나 케인즈 일반이론의 핵심은 고전학파, 특히세이의 법칙을 거부한 것이다.세이의 법칙이란 공급이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는 것으로, 자본주의 경제는 잠재생산 수준에서 이상적으로 작동하고있음을 함의한다.리카도나 마르크스의 관점에서 자본주의가 잠재수준에서 작동한다면, 주어진 소득하에서 임금과 이윤의 분배적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그러나 세이의 법칙을 거부한 케인즈는 현실의 자본주의 경제가 잠재수준 이하에서 작동한다고 보았고, 따라서소득(즉 고용)을 늘릴 수 있다면 임금과 이윤을 동시에 늘릴 수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케인즈는 소득의 분배의 문제보다는 불완전고용을 더 중요한경제문제로 간주하였다.그렇다고 해서 케인즈가 분배의 문제를 소홀히 한 것은 아니다.일반이론의 마지막 장은 자본주의 개혁에 대한 여러 방향이 제시되어 있다.자본주의의 근본문제로 그는 소득의 과도한 집중과 불완전고용에 주목하였다.여기서 주목할 것은 ’과도한’이라는 수식어다. 오히려 적당한 불평등은 사회 전체로 이득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화폐적 동기나 추구를 통한 불평등의 용인은 권력과 권위의 추구와 같은 인간에 내재적인 위험한 성향 또는 야만성의 방출을 억제하기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본 것이다. 따라서투자-생산-판매를 완성하기까지 ’시간’이 소요되며, 따라서 필연적으로 투자의 불확실성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기업가의동물적본능과 혁신은 보상받아야 하며, 이는 자본의 축적과 생산성 증대에도 이롭다고 보았다.그러나 정당한 수준을 넘어선 불평등은 사회질서 자체를 위협할만큼 위험하다고 보았다. 자본주의 체제를 위협할만한 대표적인 제도로 상속세를 지적하였다.봉건주의 잔재의 대표적인 것으로자본주의의 리더십 또는 정통성을 취약하게 만드는 장애물로 폐지할 것을 주창하였다. 마찬가지로 소득의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누진세의 도입을 또한 주장하였다.그리고 불완전고용의 원인에 대한 출발점은 화폐에서 찾았다.여타의 상품과 다른 화폐만의 독특한 특성, 즉 가치저장의 수단으로서 화폐를 주목한 것이다.이는 리카도의 상품생산경제와 자신의 화폐생산경제를 차별시킨 변별점이었다.금융위기에서 케인즈의 분석과 대안이 유행하는 것도그의 화폐중심의 경제분석 때문이다.그는 인간이 부의 축적 수단으로 화폐를 유통에서 퇴장시키기 때문에 실업이 발생한다고 파악했다.그렇다고 해서 화폐를 폐지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일반적 등가물로서 화폐가 사회적 분업의원동력이기 때문이다.자본주의의 가장 큰 미덕인 화폐를 없애기 보다는’투자의 사회화’나 소득재분배를 통해 유효수요의 부족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자유주의 철학의 관점에서 생산수단의 공동소유를 용인하지 않았다. 투자의 사회화를 통해 생산수단을 공동으로 이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주목할 것은, 소득과 부의 재분배는 사회적 질서나 정통성의 문제 뿐 아니라 효율성의 관점에서도 바람직하고 본 점이다. 공평과 효율의 상충이라는기존의 관점을 반박한 것이다.소득누진세나 상속세 폐지, 사회보장 제도를 통해 자본주의의 합법성과 호소력을 유지함은 물론,완전고용 달성에도 도움이 된다고 본 것이다. 완전고용 유지가 거시경제정책의 핵심임무라고 할 때, 소비성향이높은 계층으로 소득을 재분배하면유효수요의 부족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정부의 수요관리가 아니라개혁정책이 단기에 유효수요 부족뿐 아니라 장기에 자본축적을 촉진할 수 있다고본 것이다.그리고 이러한 개혁정책은 리세션이 시작될 때가 최적의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금리의 하향 안정을 통한 금리생활자의 안락사를 주창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자본주의의 도덕적 합법성은 물론, 투자수요를 늘려 완전고용을 달성하려는 의도였다.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선언의 둘째 강령이 소득누진세, 셋째 강령이 바로 상속세의 폐지였음을 기억하면, 그리고 당시 자유방임이 유행하던 시기임을 감안하면 분명 혁명적이었다.주식시장의 불안정과 투기를 해소하기 위해 증권거래세 도입을 주창한 것도당시에는 개혁적인 발상이었다.감세와 사회보장의 폐지가 대세인신자유주의시대를 보건대 케인즈의 개혁방안은 동시대의 관점에서도 여전히 혁명적이다.그러면 마르크스에 대한 케인즈의 태도는 어떠했을가? 케인즈가 맑스의 자본론을 읽었는지 아직까지 명시적으로 확인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분명히 케인즈는 자유방임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맑스주의에 대해서도 상당히 적대적이었다. 예를 들어 1932년 이탈리아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Sraffa에게 쓴 편지를 보면 이는 확실하다."나는 마르크스 저작을 읽으려고 했다. 그런데 당신이 거기에서 찾은 것 혹은 내가 읽었으면 하고 당신이 기대했던 것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합리적 인간에게 인식적으로 이로운 그 어떤 구절도 발견하지 못했네. 다음 방학 때는 marked copy를 전해 주게."케인즈의 맑스주의에 대한 거부는 아마도 1925년 소비에트를 방문한 경험이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소비에트에서 레닌주의를 종교적 성격의 것으로 파악했는데, 이는 교조나 독트린을 거부하는 그의 평소 관점과도 부합한다. 자신의 관점이 노동당 좌파에 속한다고 얘기했지만, 케인즈는 실제 어떤 당에도 가입한 적이 없다. 어떤 당파에 속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경제정책으로 그 어떤 당파도 설득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소비에트를 전체주의로 바라본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한편 케인즈는자신이 엘리트주의자임을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다녔다.맑스주의를 거부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다음과 같은 구절을 보자."물고기보다 진흙을 선호하면서, 브루주아와 인텔리겐차보다 천박한 프롤레타리아를 칭송하는 교리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그들의 결점이 무엇이던간에, 그들은 모든 인류 진보의 씨앗을 나르고 있는 사람들이다."또한사회변화의 방식에 대한 관점의 차이도 맑스주의 비판에 작용하였다. 케인즈는 민주적 의회절차를 통해 자신의 정책과 제안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대중에게 설득할 수 있다고 자신하였다.엘리트주의자인 케인즈는 정부를 플라톤의 군주나 현인으로 간주하여,이상적인 정부의 개입을 주창한다. 경제의 작동 원리에 대한 올바른 이해로 무장한 계몽된 민주정부는 올바른 정책을 효과적으로 집행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기존의 권력과 기득권은 자신의 정책이 집행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본 것이다. 관료와 대중을 설득하는 것은 오직 시간의 문제였고,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설득을 통해 정책이 집행될 것으로 확신하였다. 자신의 이론과 정책을 확신한 지나친 엘리트주의 관점은 영국을 비롯한 세계적인 명성과 칭송도 큰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마지막으로 케인즈는 자유방임과 맑스주의 모두 경제이론에서토대를 공유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마르크스에 적대적이었다. 일반이론의 목적을 ’비마르크스적 사회주의 구축’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듯이, 자본주의 경제의 작동방식에 대해서 사회주의자들이 잘못 이해하고 있으며 따라서 잘못된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즉 둘 다 리카도의 유산(물물교환경제)을 공유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화폐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한 맑스주의에 호의적일 수가 없었을 것이다.물론’인류공통의 창녀’라는 세익스피어의 문구를 인용하면서 마르크스는 화폐에 대해서 매우 적대적이다. 그러나,마르크스가 여기저기서 암시한 미래의 대안사회에서 화폐의 지위는 아직까지도 논쟁적이다.그리고 마르크스 또한 조야한 세이의 법칙을 비판하는 근거로 화폐를 분석의 토대로 삼고 있었다.따라서 마르크스와 케인즈는 모두 자본주의의 불안정을 비판한 공통적인 토대를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차이 또한 적지 않다. 가장 두드러진 점이, 그 비판에 대한 대안으로 전자는 혁명이고후자는 개혁을 제시한 점이다.아무튼 케인즈의 사상의 핵심은결코 정부의 재정지출 증대나 수요관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대공황 시기 루즈벨트의 뉴딜이나 북유럽 사민주의가 케인즈주의를 올바르게 구현한 현실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의 개혁!
모 단체의 케인즈 주의 비평입니다.
케인즈주의는 왜 인기가 있는가
1 – http://lodong.org/board/board.html?mtype=view&page=5&bid=3&num=112&seq=706&replynum=112&shownum=110
2- http://lodong.org/board/board.html?mtype=view&page=4&bid=3&num=119&seq=726&replynum=119&shownum=117&key=&searchword=
그리고 케인즈주의나 신구 자유주의 모두 국가성격에 대해서는 동일하다는 오류를 공유한다는 생각도 들고 국가개입의 규모 논쟁으로 성격후퇴가 있다는 생각이 무었보다도 드는군요…
개입이냐 불개입이냐 하는 것이 양만으로 논쟁할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현대의 특징은 특히 잦은 위기와 손쉬운 극복 현상(?)의 반복도 자주라는 생각이 드네요…
최근 남유럽을 비롯한 유럽 일부에서 재정위기를 동반한 노동자투쟁이 발생했는데 케인즈주의는 이를 보더라도 임시응변정도일 뿐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드네요…
다른 단체에서 유럽 일부의 재정위기중 희랍/그리스를 취급한 기사입니다. ‘그리스, 문명의 발상지에서 …’ 라는 기사문입니다.
http://hb.jinbo.net/view.php?ho=52&cat=issue&pg=&no=5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