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각각의 단체들이 어떤 입장을 취했었고
현재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가는 아닌 것 같습니다.
당선 가능한 후보는 이명박이며, 이명박이 낙마하더라도 이회창인
이 엄혹한 현실 속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택지는
포기하던지
죽쒀서 개주는 범여권 후보를 지지하던지
성과로 뭐가 남는지도 모르는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던지
이 3가지밖에 없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왜 선택지가 3가지밖에 없는지를 분석하는 것도 아니고
어느 선택이 보다 바람직한 선택인지 계산해보는 것도 아니고
선택지 문항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가 관건인 듯 합니다.
선택지 문항을 바꾸지 못하는 한 우리의 대선은 갈수록 재미없어질 듯 합니다.
선택지…..지나치게 냉소적인 것 아닌가요? 좀 긍정적으로 크시티가르바님의 선택지를 개조해 보면,
1. 포기하던지 => 요건 에러. 제외하시고.
2. 죽쒀서 개주는 범여권 후보를 지지하던지 => 범여권의 지난 5년 간의 문제를 치밀하게 지적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몇 가지 핵심 사안에 대한 확약을 받아내서 단일화 기준으로 압박하던지, 물론 이를 위해서는 협정문을 강제하고 통제할 수 있는 사회적 힘(국민주권?)이 형성될 수 있느냐가 관건이겠죠.
3. 뭐가 남을지도 모르는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던지=>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안방향에 가장 근접한 민주노동당에 투표함으로써 신자유주의, 평화체제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경쟁이 가능할 수 있는 토대마련에 집중하던지. 물론 이 경우도 민주노동당이 자기 폐쇄성에서 벗어나게 만들 수 있는 사회적 힘이 필요하겠죠.
로 요약될 수 있을 듯 합니다. (아닌가요?)
1을 제외하면 2, 3……결국 기존 정치세력들을 강제하고 통제할 수 있는, 혹은 필요하다면 대체할 수 있는 힘을 길러낼 수 있느냐….이번 대선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우리의 과제가 아닐까 싶네요.
첫째, 위에서 언급한 개혁당, 노사모라는 신세대급 세력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정치 지형을 만들었다는 거죠. 그 사상적 수준이나 내용을 따진다는 것은 책상위에서 펜대 굴리는 사람들이 할 얘기이고, 실제로 엄청난 혁명인 것입니다.
물론 “노무현 당선이라는 가시적 성과를 획득한 개혁세력이 과연 당시 시대과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었는지는 평가해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한 것처럼 중심사고가 없었죠.
둘째, 그 당시 무기력했던 국민들이나 운동 세력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줬다는 겁니다. 아무도 안 움직이던 정치팜에 이름 모를 의병들이 춤을 췄죠. 당분간 이러한 감동은 민주노동당이나 다른 정치 세력들도 받아 안을 수 있는 요소여야 할 겁니다.
2002년 서청 운영위에서 지자체선거와 대선 투표방침에 대한 논의할 때가 기억납니다.
당시에도 독자적정치세력화와 민주대연합이 격렬하게 토론되었는데…
서울시장 선거에서
‘한나라당 이명박후보를 낙선시키고 당선가능한 후보를 당선시킬 것이다’란 주장에 대해서는
전 아주 간단하게 정리했습니다.
“당선 가능한 후보? 당선 가능한 후보는 이명박말고는 안보이는데?”
대선에 대해서는 고민이 좀 됐는데…
그래서 민주대연합을 주장하는 사람에게 물어봤습니다.
빡세게 대선투쟁해서 노무현이 당선되면 우리가 승리한게 된다.
그런데 그 승리의 성과를 우리는 어떻게 남길 것인가?
죽쒀서 개 준 후 우리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독자적정치세력화를 주장하는 사람에게 물어봤습니다.
권영길이 당선되는 것이 선거투쟁의 목표가 아니라면,
출마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의 대선 투쟁은 승리했다고 평가할 것이 아니라면,
우리의 승리와 패배를 가늠할 평가 기준은 무엇인가?
어느 쪽도 이 문제에 대해서 명확한 대답을 하지 못하더군요.
지금 2007년 대선도 동일한 질문을 던질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리고 그 해답을 명쾌하게 제시하고 있지는 못한 듯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각각의 단체들이 어떤 입장을 취했었고
현재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가는 아닌 것 같습니다.
당선 가능한 후보는 이명박이며, 이명박이 낙마하더라도 이회창인
이 엄혹한 현실 속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택지는
포기하던지
죽쒀서 개주는 범여권 후보를 지지하던지
성과로 뭐가 남는지도 모르는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던지
이 3가지밖에 없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왜 선택지가 3가지밖에 없는지를 분석하는 것도 아니고
어느 선택이 보다 바람직한 선택인지 계산해보는 것도 아니고
선택지 문항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가 관건인 듯 합니다.
선택지 문항을 바꾸지 못하는 한 우리의 대선은 갈수록 재미없어질 듯 합니다.
선택지…..지나치게 냉소적인 것 아닌가요? 좀 긍정적으로 크시티가르바님의 선택지를 개조해 보면,
1. 포기하던지 => 요건 에러. 제외하시고.
2. 죽쒀서 개주는 범여권 후보를 지지하던지 => 범여권의 지난 5년 간의 문제를 치밀하게 지적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몇 가지 핵심 사안에 대한 확약을 받아내서 단일화 기준으로 압박하던지, 물론 이를 위해서는 협정문을 강제하고 통제할 수 있는 사회적 힘(국민주권?)이 형성될 수 있느냐가 관건이겠죠.
3. 뭐가 남을지도 모르는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던지=>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안방향에 가장 근접한 민주노동당에 투표함으로써 신자유주의, 평화체제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경쟁이 가능할 수 있는 토대마련에 집중하던지. 물론 이 경우도 민주노동당이 자기 폐쇄성에서 벗어나게 만들 수 있는 사회적 힘이 필요하겠죠.
로 요약될 수 있을 듯 합니다. (아닌가요?)
1을 제외하면 2, 3……결국 기존 정치세력들을 강제하고 통제할 수 있는, 혹은 필요하다면 대체할 수 있는 힘을 길러낼 수 있느냐….이번 대선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우리의 과제가 아닐까 싶네요.
2002년 대선은 촛불시위를 빼 놓고는 설명이 불가능할 듯 합니다.
수구보수를 대표하는 이회창조차
촛불시위 현장에 얼굴을 디밀다가 쫓겨나는 사태가 발생했지요.
논란의 여지는 있을 듯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2002년 당시 시대정신은 ‘미국으로부터 당당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정신의 표현이 분열되지요.
당장 어떤 정치적 성과를 내올 수는 없지만
시대정신의 본질적인 구현이 민주노동당
시대정신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지만
시대정신의 전면적 부정은 막을 수 있는 노무현
진보적인 혹은 개혁적인 아니면 자유주의적인 국민들은
시대정신의 본질적 표현과 시대정신의 소극적 표현 사이에서 갈등했습니다.
당시의 진보, 개혁 세력은 국민들에게
실현할 수 없는 시대정신의 본질적 표현과 실현가능한 시대정신의 소극적 표현이라는
아주 웃기는 선택지를 제시했습니다.
그 웃기지도 않는 선택지 속에서 국민들은 아주 현명하게도 절묘하게 선택했지요.
시대정신의 본질적 표현이 성장할 발판을 만들었고
시대정신의 전면적 부정을 막아냈지요.
2002년 대선을 돌아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역사적 교훈을 정확하게 짚어주시길 기대합니다.
16대 대선은 몇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첫째, 위에서 언급한 개혁당, 노사모라는 신세대급 세력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정치 지형을 만들었다는 거죠. 그 사상적 수준이나 내용을 따진다는 것은 책상위에서 펜대 굴리는 사람들이 할 얘기이고, 실제로 엄청난 혁명인 것입니다.
물론 “노무현 당선이라는 가시적 성과를 획득한 개혁세력이 과연 당시 시대과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었는지는 평가해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한 것처럼 중심사고가 없었죠.
둘째, 그 당시 무기력했던 국민들이나 운동 세력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줬다는 겁니다. 아무도 안 움직이던 정치팜에 이름 모를 의병들이 춤을 췄죠. 당분간 이러한 감동은 민주노동당이나 다른 정치 세력들도 받아 안을 수 있는 요소여야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