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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 지배의 원칙과 다양한 수준의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
“…다수의 동의를 얻지 못한 주장은 비제도적인 ‘사회운동’ 형태로 표출될 수 있다. 이런 성격 때문에 사회운동은 보통 다수가 아닌 ‘소수’로부터 시작하게 된다…..”
두 글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심도있게 정리한 글인 듯 해서 기분이 좋습니다.
거대한 외부 세력들의 압력은 혁명이라면 통과의례처럼 경험해 온 것입니다. 이것이 0에 가까웠던 것은 지난 20세기에 아직 한 세기가 채 되지 않았을 무렵의 독일, 오지리(오스트리아), 토이기(터키) 등 일부 제정국가의 제정전복 혁명 정도일 것인데 이 점은 이미 당사국들은 1차 대전 패배라는 전쟁의 참화가 있었고 이미 민주공화국이나 입헌정체로 진입한 다른 나라들이 1차 대전에서 충분히 공격해서 이들의 재정을 패퇴시킨 참화가 있을 것입니다. 프레시안 북스(웅진과 제휴)의 혁명신서들(이 중에서 특히 로베스 피에르 편)이나 문제적 인간의 로베스피에르(교양인), 박세길의 혁명의 추억, 미래의 혁명 등 좋은 참고들이 있습니다.
보스코프스키님…거의 2년 전에 쓴 글도 관심 가지고 읽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ㅎ
미래학자들이 근래에 들어서 한국에 주목하는 것은, 그래서 희망과 미래를 그리는 것은 아마도, 짧은 견해로는 국민직접정치의 가능성이 높기때문일것입니다. 우리나라처럼 네트워크 기반이 잘 구축된 나라는 드무니깐요. 그런데 이에 앞서 항상 문제?시 되는 것은 각 주체각 인식하고 있는 ‘민주주의’개념과 ‘자유’라는 것에서 다시금 출발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소수 엘리트주의가 만행했던 것은 그들이 바른 생각을 가지고 현명한 제도를 구상하고 실현시킬 수 있다는 전제이고 역으로 대중은 우둔하다고 여기는 것이니깐요. 사실, 각 주체에 대한 믿음이 빈약하다고 생각하기에 자유에도 제한을 가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원론적인가요..^^;;
수페사라/ 원론적이긴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프랑스대혁명 정신인 자유, 평등, 박애(연대)는 사실 자유주의나 사회주의, 민족주의 각각에 어느 한 가치만 포함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상의 출발이지요.
특히 현대 민주주의를 새롭게 구축하는 것은 우리의 이상적 지향으로 자유주의를 전유하는 형태를 띠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실 속의 자유주의는 사실 ‘자유’라는 가치를 불균등하게 구현할 수밖에 없는 협소한 것이죠. 자유주의의 긍정성과 평등적 가치의 긍정성을 함께 종합할 수 있는 대안을 박애(연대)의 가치로 구현해 나가는 과정을 모색해볼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계속 의견부탁드리면서 기발한 아이디어도 함께 이야기해 봤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