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치유하는 약은 없다. 숲에서 생활한 사회사상가 헨리 소로의 경구다. 누군가를 사랑한 사람이라면, 더구나 사랑하는 그 사람을 더는 만날 수 없다면, 소로의 그 말이 시퍼렇게 피멍든 가슴으로 파고들 터다.‘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은 사랑이 정치와 어떻게 결합할 수 있는가를 웅변으로 가르쳐주었다. ‘바보’를 사랑한 ‘바보들’의 열정은 집권으로 열매를 맺었다. 그랬다. 노사모는 한국 정치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인의 비극이 옹근 1년을 맞는 지금, 눈을 감으면 집권 뒤 처음 열린 노사모 총회의 풍경이 싱그럽게 펼쳐진다. 2003년 5월이었다. 초청강사는 두 사람, 나와 유시민이었다. 연단에 올랐을 때 마주친 눈빛들을 잊을 수 없다. 새맑은 얼굴들 가득 2002년 내내 자신의 모든 걸 아낌없이 바친 이들의 웅숭깊은 사랑이 넘실댔다. 나는 노무현을 사랑하는 방법이 대통령이 되기 전과 달라야 하며 바보 노무현이 올곧게 걸어갈 수 있도록 비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는 노무현을 사랑한다, 하지만 민중을 더 사랑한다”고 강연을 마쳤다.사랑이 정치와 만나 열매을 맺은 정치사적 사건며칠 뒤 한 참석자로부터 내가 강연장을 나온 뒤 연단에 오른 유시민이 날을 세워 나를 비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뜻밖이었다. 그에게 호감을 지니고 있어서만은 아니었다. 대통령이라는 권력의 정점을 바라보는 눈이 정치인과 언론인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다.대통령이 되기 전, 바보 노무현과의 첫 만남은 한겨레신문사 주변의 대중식당이었다. 자리를 주선한 이기명 당시 후원회장은 그때만 하더라도 순박했다. 아무튼 노무현과 한국 정치판 전반을 비롯해 언론개혁을 주제로 대화했다. 언론개혁에 대한 그의 생각이 다소 거칠게 느껴져 정책을 ‘무기’로 한 전략적 접근을 주문했다. 그 뒤 몇 차례 전자우편을 주고받았다. 내가 언론3단체로부터 ‘통일언론상’을 받을 때 수상식에 참석해 작은 꽃다발을 건네던 그의 순수한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가 대통령이 되어 한겨레신문사 논설위원실에 들렀을 때, 나는 적어도 후보로서 내건 공약은 우직하게 실천해가리라 믿었기에 “건강”만을 당부했다.하지만 언론개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여전히 정교하지 못했다. 그래서다. 취임 한 달이 지났을 때 <한겨레>에 ‘바보 노무현’(2003년4월4일자) 칼럼을 썼다.“바보. 노무현 대통령을 이름이다. 윤똑똑이들이 넘치는 정치판에서 그는 ‘바보’였다. 그래서다. 민중은 아낌없이 사랑했다. ‘바보 노무현’을 대통령에 앉혔다. 누군가를 사랑해본 사람은 안다. 바보란 말에 담긴 정감을. 참으로 바보가 아니기에 따옴표를 붙인다. 비단 사랑만 녹아 있지 않다. 늘 올곧게 걸어가라는 소망이 서려 있다. 하지만 그 사랑을 노 대통령은 배신했다. 보라. 파병안의 국회통과를 호소하며 미국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전쟁에 용춤추는 풍경을. …집권 초꼬슴부터 엇나가는 그를 비호할 때가 아니다. 김대중 정권을 두남둔 결과는 참담한 몰락이었다.”노 대통령에 비판 칼럼을 곰비임비 써가면서 그가 올곧게 걸어가길 소망했다. 과거와 달리 대통령에게 언론인이 먼저 사적인 전자우편을 보내기란 적절치 않았다.노무현 대통령으로서 성공하길 바라며 쓴 칼럼들하지만 그는 무장 엇나갔다. 급기야 한미FTA를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격하게 비판 칼럼을 쓰자 청와대에서 전화가 왔다. 대통령의 ‘고위 측근’과 청와대 근처에서 마주했다. 대화 초반에 그는 “대장(그가 대통령을 부른 호칭)에게 손 위원을 통일부 장관으로 추천했다”고 밝혔다.나는 대통령이 나를 장관으로 선택할 리도 없겠지만, 설령 선택하더라도 한미FTA를 추진하는 정부에서 장관할 생각은 없다고 답했다. 그런 이야기 듣고 싶어 온 게 아니라며 한미FTA를 강행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망설이던 그는 비보도(오프더레코드)를 전제로 자신도 반대했지만 “(대장이) 감이 참 좋다”며 확고한 의지를 밝혔다고 전했다. 이어 “대장이 ‘정치적 감’을 말할 때는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뜻 한다”고 설명했다.가능한 비보도 약속을 지키려 했다. 하지만 노무현을 위해서라도 덮어둘 문제가 아니라는 판단이 그 약속의 효력을 시나브로 무력화했다. 한 달이 넘어서 칼럼에 “곧추 보기 바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어떻게 강행되고 있는지를. 대통령의 ‘정치적 감’으로 공화국의 운명을 욜랑욜랑 결정했다”고 썼다.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을 의식해 더는 자세히 쓰지 않았다. 신문이 나오자 노사모라고 밝힌 독자가 ‘우리 노짱’이 설마 감으로 그랬겠느냐며 힐난했다.그랬다. 기자가 된 뒤 6명의 대통령을 보았지만 사사로운 ‘친분’이 있었던 정치인은 오직 노무현이었다. 하지만 짧은 인연이었다. 민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으면서도 민중과 더불어 개혁을 밀어 붙이지 않는 대통령을 이해할 수 없었다.내가 가야할 길은 또렷했다. 신자유주의와 분단체제의 대안을 만드는 싱크탱크(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창립에 나서며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삼성경제연구소가 경쟁상대”라고 밝힌 이유도 참여정부의 과도한 삼성 의존이 어떤 폐단을 빚고 있는지 목격했기 때문이다.삼성에 의존한 개혁정부에서 교훈 얻은 시도결국 한미FTA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민주-진보세력은 분열됐다. 그의 뒤를 이은 이명박 정권이 국회에서 한미FTA를 비준하겠다고 불을 켜는 살풍경 앞에서, 삼성의 품에 안긴 FTA협상대표 앞에서, 유감이지만 다시 그 시절을 맞더라도 언론인으로서 나의 선택은 같을 수밖에 없음을 확인했다.바보 노무현과 대통령 노무현을 사랑하는 방법은 달라야 한다고 주장했던 나는 이제 고인이 된 노무현을 사랑하는 방법도 달라야 옳다고 생각한다.무엇일까? 대통령 노무현이 구현하지 못한 바보 노무현의 뜻을 온새미로 실현하는 길 아닐까? 퇴임 뒤 노무현이 미국의 금융위기를 보며 한미FTA와 신자유주의에 대해 다시 성찰하는 모습을 보였기에 더 그렇다.노무현이 역사의 인물이 된 지금 나는 다시 헨리 소로의 경구를 떠올린다. 소로는 사랑을 치유하는 약은 없다는 말에 ‘치유책’을 덧붙였다. “있다면 더 사랑하는 것뿐이다.” 신자유주의와 분단체제로 고통 받는 민중 앞에 또 다른 ‘바보’가 정치무대에 등장하길 갈망하는 까닭이다.새로운 바보가 갈라진 민주-진보세력을 통합하고 신자유주의와 분단체제를 넘어서겠다는 의지와 정책으로 충만하기를 기대한다. 더 사랑하는 일 밖에 사랑을 치유하는 약은 없다.손석춘 2020gil@hanmail.net * 노무현 전 대통령의 1주기를 맞아 <한겨레21>에 기고한 글입니다. * 이 글은 ’손석춘의 새로운 사회’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블로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