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경제 분야 정부 관계자들의 화법은 ‘입만 열면 자화자찬’이었다. 입을 열었다 하면 각종 경제 지표가 긍정적으로 돌아서고 있음을 설파하기 바빴다. 그러면서도 신중한 모드로 덧붙이는 이야기가 있었다. 일자리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점이 아쉽고 송구스럽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정부 입장은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심각한 결함을 내포하고 있다. 결론만 이야기하면 일자리 문제 해결은 경제의 핵심 과제이며, 일자리 문제가 잘 해결되어야 경제 전반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는 구조이다. 일자리 문제 해결 없이 경제가 잘 돌아간다는 것은 넌센스에 불과하다.

정부가 일자리 문제에서 기대했던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은 그 어떤 외부 요인의 작용보다도 잘못된 정부 정책 방향에서 비롯되었다는데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표현하면 방향이 완전 거꾸로 되어 있다.

첫째 신산업 육성 없이 일자리 창출 능력이 취약한 구산업에 의존하고 있다. 정부가 집중 육성 대상으로 삼은 분야는 반도체, 미래차, 바이오 헬스케어 등이다. 반도체는 대표적인 장치산업의 하나로서 국내업체들이 평택에 20조 원을 투자했을 때 새로이 만들어진 일자리는 900개에 불과했다. 미래차는 부품 수가 기존 자동차의 3분의 1에서 10분의 1로 줄면서 일자리 무덤이 될 가능성이 크다. 향후 다수의 일자리는 제조업과 ICT, 서비스 산업이 융합된 새로운 산업 생태계에서 창출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국인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의료, 뷰티, 문화컨텐츠 산업 등이 그 대안이 될 수도 있다.

둘째 청년이 아닌 노년을 중심으로 접근해 왔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생산성을 좌우하는 요소는 미지의 영역에서 새로운 것을 일구어내는 특유의 모험심과 창의적 능력이다. 이러한 능력을 풍부하게 간직하고 있는 경제 주체는 청년이다. 청년 중심의 일자리 정책이 추진되어야 생산성 향상으로 경제 전반이 활성화될 수 있다. 그럴 때 인생 2막을 사는 노년들에게 안정적 일자리를 제공할 서비스 산업도 연쇄적으로 창출된다. 하지만 정부 일자리 정책은 노년용의 단기 알바 확대에 초점이 맞추어져 왔으며 청년은 줄곧 소외되어 왔다. 결과적으로 노년에게 필요한 안정적 일자리를 제공하지도 못했다.

셋째 일자리의 질이 아닌 양을 우선해 왔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생산성이 극대화되려면 작업자의 창의적 능력을 지속적으로 고양시키면서 자발적 열정을 발휘할 환경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일자리의 질을 제고할 때 생산성이 극대화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질을 우선할 때 생산성 향상 – 매출 증가 – 고용 확대로 일자리 양도 함께 증가할 수 있다. 정부 일자리 정책은 일자리의 질과 양이 함께 개선되었다는 관계자의 말과 달리 질의 희생을 바탕으로 양을 우선하는 식이었다. 단적으로 일자리 질의 개선과 직결된 기업 교육 정부 지원비가 대폭 삭각되었다.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된 탓이겠지만 결과는 생산성의 저하로 일자리 양의 확대를 제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년들이 헬조선을 운위하는 것에 대해 기성세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너희들이 밥을 굶어 봤느냐 학교를 못 가 울어 봤느냐 도대체 무엇이 부족해 세상을 비관하느냐고 되묻는다. 하지만 청년들은 미래의 시선으로 현재를 보는 속성이 있다. 그들 입장에서 미래를 꿈꾸기 어려운 현실은 지옥이나 다름없다. 지금의 일자리 구조가 지속되는 한 청년들은 미래를 꿈꾸기 쉽지 않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정부 관계자들이 국민을 바보 취급하는 것이다. 적당히 숫자를 맞추어 지표가 개선되고 있지 않으냐고 하면 국민들이 수긍하고 따라줄 것이라 믿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실생활에서 느끼는 현실을 갖고 판단한다. 정부 관계자들이 아무리 바보 취급하려 해도 국민들은 결코 바보가 아니다.

(  이 글은 <내일신문>에 함께 게재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