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 논리에 갇힌 빅데이터

By | 2019-06-11T20:16:01+00:00 2019.06.11.|

중국의 IT 분야 핵심 기업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공세가 극한을 향해 치닫고 있다. 미국 정부는 화웨이를 IT 해적으로 간주하고 거래제한 기업으로 지정하였다. 그에 발맞추어 구글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퀼컴과 인텔은 프로세서 칩을, 영국의 ARM은 반도체 설계 공급을 중단하기로 발표했다. 덧붙여 미국 정부는 자국과 동맹국들이 화웨이 통신장비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사태를 보는 논자들의 입장은 대체로 일치했다. 미국과 중국이 기술 패권을 둘러싼 첨예한 전쟁에 돌입했다고 보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의 ‘기술 굴기’를 못 막으면 머지않아 실리콘밸리가 무너질 것이며, 그 여파로 패권 국가 지위를 중국에 내주어야 한다는 두려움을 품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도대체 무엇이 미국으로 하여금 중국에 대해 이토록 강한 경계심을 갖도록 만드는 것일까?

4차 산업혁명 핵심 기술은 단연 AI 인공지능이다. 미국과 중국은 현재 AI 기술에서의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AI 세계대전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AI 기술을 좌우하는 요소의 하나는 빅데이터이다. 데이터 총량이 많을수록 AI는 영리해진다. 적은 데이터만으로도 많은 결론을 유추할 수 있는 사람과 다른 점이다. 바로 이 빅데이터 지점에서 중국은 미국에 비해 월등이 유리한 조건을 지니고 있다.

중국은 13억 이상 인구를 지닌 세계 최대 인구대국이다. 그만큼 데이터 총량이 많을 수 있다. 더욱 중요한 요소가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개인의 정보를 빅데이터로 축적하는데 많은 제약이 따른다. 중국은 다르다. 중국은 당원 수 1억 가까운 공산당이 사회 모든 분야를 장악 통제하고 있다. 공산당의 강력한 장악력을 바탕으로 중국 정부는 빅데이터를 거의 제한 없이 확보할 수 있다. 중국이 내심 AI 세계대전에서의 승리를 장담하면서 미국을 넘보는 결정적 근거이다.

미국과 중국의 대결은 빅데이터 확보가 앞으로 얼마나 절대적 의미를 갖게 될 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빅데이터 확보는 개별 기업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결국 국가 수준에서의 관리로 갈 수밖에 없다. 빅데이터를 둘러싼 경쟁이 국가 대 국가 구도로 가게 되는 것이다. 이는 곧 독자적인 빅데이터 기반이 취약한 나라는 다른 나라에 의존하면서 ‘데이터 식민지’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사정은 어떠한가? 얼마 전 정부는 바이오 헬스케어를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기로 하면서 100만 명의 의료 빅데이터를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발효했다. 이에 대한 일선 현장의 반응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기왕에 있는 빅데이터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주제에 무슨 빅데이터냐는 것이었다.

세계 최대, 최고 수준의 의료 빅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는 다름 아닌 한국이다. 건강보험공단이 바로 그 빅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이 귀중한 자산을 산업 발전을 위해 제대로 써 먹지 못하고 있다. 개인정보보호법 등 법적 제약이 따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개인의 정보가 특정 집단의 돈벌이용으로 악용(?)되는 것에 대한 강력한 사회적 반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핀란드 등에서는 개인 의료정보가 산업용으로 이용되는 것에 대한 반발이 별로 없다. 그러한 과정이 모두의 이익으로 귀결된다는 사회적 신뢰 기반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바로 그 신뢰 기반이 취약하다. 해답은 하나뿐이다. 의료 빅데이터의 산업적 이용이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도록 경제 체질과 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문제는 일차적 책임이 있는 정치권이 진영 논리의 포로가 되어 있다는데 있다. 최대한 단순화시키자면 진보는 ‘산업화를 외면한 의료 공공성 유지’에, 보수는 ‘공공성을 포기한 의료 산업화 추진’에만 집착한다. 그 결과 빅데이터는 진영 논리 갇힌 채 질식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빅데이터 후진국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산업 기반 전반이 부실해질 수 있는 것이다.

이 글은 <내일신문>에 함께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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