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에 연재 중인 글입니다.  http://omn.kr/r6iz

 

모두들 인류가 늙어가는 것을 걱정한다. 과학과 의학의 발달로 더 오래 살게 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나 늘어난 수명을 떠받칠 만큼 인구가 늘지 않아 걱정이다. 언제부턴가 ‘소멸’이란 무시무시한 말들이 떠돌고, 앞으로 얼마나 늘어날지 모를 ‘비용’ 때문에 정부도 젊은 세대도 불안하기만 하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멋진 말로 ‘복지국가’의 문을 열었던 영국도 더 이상 무덤까지의 삶을 책임지지 못한다. 영국의 60살 이상 노인 3명 가운데 1명은 일주일 동안 단 한 번도 다른 누군가를 만나 말을 하지 않는다.

 

보다 못한 영국 정부는 올해 1월 ‘외로움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을 임명했다.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이른바 ‘베버리지 보고서’로 복지국가의 청사진을 그렸던 베버리지(W. Beveridge)도 미처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바야흐로 국가가 모든 것을 해주던 시대는 저물어 가고 있다.

 

 

낯선 곳에서 나를 기다려주는 친구가 있다면

 

국가의 빈자리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로 메우려는 노력들이 있다. 아일랜드에서 시작한 ‘프리버드 클럽(The Freebird Club)’은 노인을 위한 여행자 클럽이다. ‘에어비앤비(Airbnb)’처럼 숙박 공간을 가진 호스트와 그곳에 머물고자 하는 게스트를 연결하는 P2P(Peer to Peer) 서비스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호스트와 게스트가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조건이 따라 붙는다. 함께 밥을 먹고 지역을 돌며 인연을 쌓는다. 이른바 ‘사회적 여행(Social Travel)’이다.

 

회사를 세운 피터 망간(Peter Mangan)은 팔순을 내다보는 자신의 아버지가 에어비엔비로 집을 찾아온 낯선 게스트와 너무도 즐겁게 어울리는 모습을 보며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나이를 먹을수록 함께 여행을 떠날 친구와 가족이 줄고, 몸이 불편해 낯선 곳으로 떠나길 꺼리게 된다는 것에도 생각이 미쳤다. 비슷한 처지이면서 여행지가 낯설지 않은 누군가가 맞아준다면 용기를 내기가 조금은 쉬워질 것이라 생각했다.

 

“노인이 더 많은 힘을 갖고, 마음껏 움직이며 활기차게 지낼 기회를 주고 싶었다.”

 

노인들은 젊은 세대보다 방을 내어줄 여유도 많다. 에어비엔비에 따르면 60대 이상 노인 호스트는 해마다 가파르게 늘고 있다.

 

이들은 이름에 ‘클럽’을 붙일 만큼 관계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게스트든 호스트든 클럽 회원이 되려면 가입비로 25유로(약 3만 2,000원)를 내야하고 승인도 받아야 한다. 가입비를 먼저 받는 것도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는 게 중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따른 것이다. 승인이 거절 되면 가입비는 돌려준다. 호스트가 되는 건 더 까다롭다. 직원 면접을 거쳐야 하는데, 직원도 절반 이상이 노인이다. 호스트가 되면 게스트와 어느 정도의 시간을 함께 보낼지를 스스로 정할 수 있다.

 

“우리의 첫 게스트가 독일에서 왔을 때 우리는 그들을 데리고 마을 곳곳을 함께 둘러봤다. 우리는 대단한 경험을 했고, 그들은 떠날 때 게스트북에 ‘우리는 타인으로 와서 친구가 되어 떠난다’는 글을 남겼다. 너무 사랑스러웠다.”

 

아일랜드 롱포드(Longford)에 사는 호스트 덜브라(Dervla)와 브라이언(Brian) 부부의 말이다. 앞으로는 여행을 떠나려 친구를 사귀기보다 친구를 사귀려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많아질지도 모르겠다.

 

‘프리버드 클럽’은 2015년 ‘유럽 사회 혁신 대회(European Social Innovation Competition)’ 최종 3개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에 선정돼 5만 유로의 상금을 받았다. 2016년에는 ‘Aging 2.0 Global Startup Search in London’도 수상했다. 그밖에도 크고 작은 여러 대회에서 수상하며 초기 창업 비용을 모았다.

 

2017년 4월에 문을 연 뒤 1년도 안 돼 약 2,000명의 회원이 가입했다. 앞으로는 마음 맞는 여행 동반자를 찾을 수 있는 서비스를 더하고, 유럽 여러 나라를 더 자유롭게 돌아다니도록 할인된 인터레일(interrail) 표도 제공할 계획이다. 공유 경제를 넘어 이른바 ‘돌봄 경제(caring economy)’의 개척자가 되겠다는 포부도 가지고 있다.

 

“비즈니스의 중심에 사람이 있기를 바라며, 이익 못지않게 사회에 긍정적 효과를 미치는 것도 중요하다.”

 

 

사람은 반려견을, 반려견은 사람을 돌보다

 

네덜란드의 ‘오포(OOPOEH)’는 55세 이상의 노인들이 바쁜 이웃의 반려견을 시간 날 때마다 돌볼 수 있도록 노인과 반려견 그리고 이웃을 이어주는 프로젝트다. 노인들이 집 안팎에서 반려견을 돌보며 더 많이 움직이고 교감하며, 외로움을 달래고 새로운 기운을 얻도록 돕는다. 반려견과 그 주인까지 가까운 이웃 둘을 얻게 되는 셈이다.

 

‘오포’는 사업을 시작한 재단의 이름이자, 반려견을 돌보는 노인 회원을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다. 2012년 노인들이 지역 공동체에서 이웃들과 더불어 더 활동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외로운 노인들이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어도 온전히 혼자 키우기는 쉽지 않다는 점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또 노인들이 자신의 경험과 지식, 에너지를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에 쓰고 싶어 한다는 믿음도 있었다.

 

‘오포’가 되면 어떤 반려견을 돌보길 원하는지, 또 얼마나 자주 돌볼 수 있는지 결정할 수 있다. 반려견과 주인을 만나 서로가 잘 맞는지 확인하는 과정도 거친다. 인연이 맺어졌다고 해도 ‘오포’에게 어떤 의무가 주어지는 건 아니므로, 주인이 아무 때나 반려견을 맡겨선 안 된다. 또 가입비를 비롯해 어떤 비용도 들지 않는다. 반려견을 맡기려는 주인은 50유로(약 6만 5,000원)의 가입비와 한 마리당 15유로의 월회비도 내야 한다.

 

효과는 적지 않았다. 한 달에 한 번 이상 반려견을 돌본 회원 가운데 72%가 이웃들과의 교류가 늘어났다고 답했다. 또 71%가 운동량이 늘었고, 80%가 정서적으로 긍정적 효과를 느꼈다고 답했다. 주변에 나와 연결된 누군가가 있다고 답한 비율도 크게 늘었다.

 

 

이웃들과의 관계로 국가의 빈자리를 메우다

 

2007년 영국의 민간 단체 ‘파티시플(Participle)’이 시작한 ‘서클(Circle)’은 더 대담한 사회 혁신 프로젝트다. 이들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혁신적 노인 돌봄 체계를 꿈꿨다.

 

‘노인이 스스로 더 나은 삶을 정의하고 만들어갈 수 있도록 지역 사회가 공공과 개인, 자원봉사자와 공동체의 자원을 어떻게 모을 수 있을까.’

 

이들은 영국 남부의 서더크(Southwark) 지방 의회, 노동연금부(the Departmanet for Work&Pensions) 그리고 스카이 미디어(Sky media)와 함께 ‘지역에 뿌리 내린 복지 공동체’를 만들어갔다. 노인을 복지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며 사회에서 배제시키던 시각에서 벗어나 그들 스스로 삶의 방향을 정하고 길을 찾도록 공동체의 자원을 끌어 모으기로 한 것이다.

 

먼저 약 250개에 달하는 노인과 그 가족 그룹을 만나 그들이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걱정하는지, 또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를 살펴 몇 가지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됐다.

 

첫째, 그들은 살던 곳에 머물며 독립적으로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누군가가 ‘일상에서 부딪히는(Practical)’ 일들을 도와주길 바랐다. 전구를 갈아주거나 은행에 같이 가주는 일들처럼 대개는 별다른 기술이나 힘이 들지 않는 것들이었다.

 

둘째, ‘마음이 맞는 좋은 친구’를 원했다. 어느 순간 홀로 남겨지게 되면 다시 마음을 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외로움은 그들도 견디기 힘들었다.

셋째, ‘목적이 있는 삶’을 살고 싶어 했다. 오랜 경험과 기술, 지식으로 공동체에 기여하면서, 죽는 순간까지도 꾸준히 성장할 수 있길 그들은 바랐다.

 

‘고령화’나 ‘노인’ 같은 말들이 서비스에 따라붙는 것을 꺼려했다. 무엇을 제공하느냐 만큼이나 어떻게 제공하느냐도 그들에겐 중요했다.

 

“나는 집에만 갇혀 비참하고 외롭게 지냈다. ‘서클’은 내가 필요할 때, 계속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나를 밖으로 이끌어주었다. 정말 사랑스러운 사람들이고, 그들은 못하는 일이 없다.”

 

누구 못지않게 활달했던 80대 초반의 안토니아(Antonia)는 무릎을 다친 뒤로 외톨이가 되었다. 그런 그녀를 서클은 집 밖으로 나오도록 이끌었다. 이웃과 점심을 함께 먹거나, 극장에 가는 이벤트를 만들어 그녀를 초대했다. ‘소셜 캘린더(Social Calendar)’라 부르는 프로그램들이다. 첫 이벤트에 참여한 뒤 그녀는 자신에게 맞는 사람들을 만났고, “내가 빠져들게 만드는, 나에게 꼭 맞는 사람들”이라며 반겼다.

 

무릎 수술을 받은 뒤엔 서클의 스탭들이 꾸준히 안부를 물었고 회원들도 그가 몸을 추스르는 사이 온라인으로 먹을 걸 주문할 수 있게 컴퓨터를 고쳐주는 등 소소한 도움을 주었다. 서클이 이어준 ‘작은 도움’이 누군가의 삶을 크게 바꾼 것이다.

 

1년에 30~75파운드(4만 5,000~11만 5,000원)만 내면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다. 정원을 멋스럽게 꾸미거나 전기 설비를 손봐야 한다면 전문 기술을 갖춘 유료 도우미(Helper)를 불러야 한다. 다른 회원을 도우면 이 비용이 상쇄되기도 하고, 핸드폰이나 책을 살 때 할인 혜택을 받을 수도 있다.

 

회원의 절반은 50~60대다. ‘젊은 노인(younger old)’을 끌어들이려 꾸준히 애쓰고 있고, 이들이 더 나이가 많은 이웃들을 돌보면서 공동체를 든든하게 떠받치고 있다. 이웃들도 도우미로 힘을 보탠다. 도움이 필요한 일들이 대개 ‘평범한’ 일들이고, 여건이 허락하는 만큼 하루에 1~2시간이라도 참여하면 되기 때문이다. 회원과 회원, 회원과 도우미를 잇고 서비스 시간과 비용을 계산하는 건 서클 스텝들과 시스템(기술)의 몫이다.

 

2012년 9월에는 지역 서클들을 묶어 ‘런던 서클(London Circle)’을 꾸렸다. 마케팅, 콘텐츠 기획 등을 맡아 효율성을 높이고자 한 것이다. 이듬해엔 헤이버링(Havering)을 비롯해 4개의 지역 서클이 더 만들어졌다.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는 것에서 출발하자

 

서클이 가져온 변화는 적지 않았다. 2009년 서클이 공식적으로 문을 연 뒤 서더크에서만 1만 4,600시간의 사회적 활동이 이루어졌고, 17만 5,000명이 참여했다. 회원의 88%가 새로운 친구(평균 6명)를 사귀었고, 불필요한 공공 서비스 이용도 줄었다. 회원의 26%가 의사(General Practice)를 덜 찾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2014년 공공의 자금 지원이 끊기면서 몇몇 서클이 어려움을 겪기 시작하더니 결국, 처음 문을 연 지 6년 만인 2015년 모든 서클이 문을 닫았다. 파티시플 설립자인 힐러리 카텀(Hilary Cottam)은 2014년, “모든 서클이 그런 건 아니지만 일부 서클은 모임을 키워나가는 데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는 능력, 그리고 서클 모델을 좀 더 큰 맥락의 공공 서비스 생태계의 일부로 자리매김할 비전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고 털어놓았다.

 

‘영국 복권 기금(Big Lottery Fund)’이 서클의 성장을 지원하겠다며 손을 내밀었지만, 8개월간의 긴 검토 끝에 수포로 돌아간 일도 있었다. 꾸준히 성장하며 놀랄 만한 성과를 내고 있음에도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일은 6년을 이어온 서클에게도 만만치 않았다. 새로운 도전에 나서려는 우리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풀어가야 할 숙제다.

 

서클은 문을 닫았지만 그렇다고 관계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몇몇이 나서서 다시 모임을 꾸리고 힘닿는 만큼 ‘소셜 캘린더’를 이어가려 애쓰고 있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단단하다. 우리도 우리가 가진 것들을 나누면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에서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어쩌면 우리가 저들보다 더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