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보내온 평화의 편지

어느덧 ‘4.3 제주민중항쟁’이 발발한지 70년이 지났다. 오래 전부터 각지에서 70주년을 기념하는 많은 행사가 준비되고 있으며, 여기저기에서 학술제나 공연 등이 벌어지고 있다.

제주 사람들은 해마다 이맘때만 4.3을 기억하지 않는다. 일 년 내내 보고, 몸에 와 닿고, 기억하게 되는 날짜이기 때문이다. 여느 오름에 오르더라도 그곳에서 죽어간 가족들의 사연이 깃들어 있고, 제주 바닷가 어디를 가도 집단으로 죽어 던져진 마을 사람들의 원혼들이 떠돌고 있다. 우리가 타고 내리는 제주비행장은 대규모 학살 터로서 아직도 집단 매장된 사람들의 뼈가 간간이 발굴되곤 한다. 그러니 제주 사람들에게 4.3은 연례행사나 일 년에 한번 기억하는 날이 아닌 것이다.

4.3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4.3은 오랫동안 ‘4.3 폭동’으로 불리다가 70년의 세월을 지내면서 시민들의 노력과 민주화의 영향으로 ‘4.3 사건’, ‘4.3 항쟁’ 등으로 불리게 되었다.

제주는 누구 하나 4.3과 무관한 사람이 없다. 가족마다 아픈 사연들이 다 있기 때문이다. 의귀초등학교 주민 학살은 수 백 사례들 중 하나인데, 당시 학교에는 육군이 주둔하고 있었는데 토벌대 및 서북청년단이 사람들을 고문하고 죽이곤 했다. 이를 알게 된 무장대(유격대)가 학교를 급습했지만 전투 끝에 무장대는 전멸했다. 전투 직후에 군인들은 이전에 무장대와 내통했다는 구실로 학교에 잡아놓고 있었던 주민 80여 명을 학교 근처의 밭에서 학살하고 만다. 이런 학살이 제주 섬 전체에 만연했으니 누구 하나 연관되지 않을 수 있을까?

1947년 3.1절 기념대회와 발포 사건, 그 이후 계속되는 소요 사태, 1948년 4.3을 기해 남로당의 봉기 선언, 토벌대와 서북청년단의 민간인 학살, 유격대의 보복… 1948년부터 1954년까지 이어진 제주섬에서의 광란의 학살, 인구 30만 명이던 섬에서 3만 여명이 죽어간 슬픈 비극은 사실 4.3의 겉모습일 뿐이다. 실제로는 오랜 역사 속에서 이어져 오던 차별과 수난, 저항의 마지막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른다.

고려 말엽 삼별초의 난, 목호의 난, 조선 시대 혹독한 공출과 섬사람에 대한 차별, 조선 말 이재수의 난에 이어지는 섬사람들에 대한 차별과 무시, 착취의 역사를 보지 않으면 4.3을 볼 수 없다. 그러한 역사 속에서 제주 사람들은 어느 지역보다도 거세게 항거했고, 독립운동에 적극 뛰어들게 된다.

제주는 이렇게 착취의 섬이었고 부조리와 핍박에 대한 항쟁의 섬이라면 반대로 제주를 바라보는 지배세력의 시각을 살펴볼 필요도 있다. 당시 경무부장 조병옥은 제주섬에 석유를 뿌려 다 태워서라도 폭도들을 진압하라고 했다. 단 몇 백명에 불과한 유격대를 잡으려고 제주 사람들 다 죽여도 좋다는 생각이었다.

제주의 저항 정신, 이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지배 세력의 충돌… 그래서 4.3은 ‘항쟁’이라고 하는 것 같다. 제주 4.3을 남로당이 일으킨 사변이라고 왜곡하는 세력이 있는데, 당시 남로당은 봉기를 조장하고 유격대를 만들어 싸운 한 주체일 뿐이다. 제주 민중들의 독립운동, 단독정부 수립 반대, 통일조국 건설 투쟁에서부터 4.3 항쟁까지의 시간들을 연장선에서 바라봐야 한다. 그러기에 단순히 남로당의 사주라는 둥, 공산 폭동이라는 둥 하는 것은 일각의 시선일 뿐이며 왜곡일 수 있다.

4.3의 계승

앞서 말했듯이 4.3은 오랜 역사 속에서 이어져 온 불의에 항거하는 정신이었고, 변방일지라도 힘차게 외쳤던 통일 운동이었다. 그리고 현재의 4.3은 평화이다. 제주 사람 아무도 책임자 처벌이나 복수를 주장하지 않는다. 용서를 빌지 않는데도 용서하려고 하고, 더 이상 이 땅 어디에서도 그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70년이 된 4.3은 이렇게 통일, 평화, 화해를 말한다. 이것은 제주만이 아니라 함께 사는 한반도와 동포 모두가 계승해야 할 정신이라고 본다. 그래서 4.3은 제주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라야 하는 것이다.

지금 제주 사람들은 별다른 걸 바라지 않는다. 일차로는 신원 회복, 적절한 보상이지만 사실 이보다 더 바라는 것은 앞으로는 이런 비극이 이 땅 어디에서도 벌어지지 말도록 하는 것과 ‘화해와 평화’이다. 그럼에도 4.3을 왜곡하며 4.3 평화공원에서 분탕질을 치는 이선교 목사나 일부 보수단체들은 제발 아픔을 잊고 살려는 사람들에게까지 와서 더 이상 망나니 같은 짓을 하지 말았으면 한다. 제주 사람들은 보수, 진보 구분 없이 같은 생각이다.

추운 겨울, 꽃망울을 품었던 동백이 담벼락마다 빨간 꽃을 터뜨리는 봄이다. 해마다 이맘 때면 제주는 슬프다. 이제 더는 4.3 영령들을 아프게 하지 말고 편하게 쉬게 하자. 그리고 그 아픔의 역사와 피눈물 나는 항쟁의 역사를 제주만이 아니라 온 국민이 알게 하자.

*편지를 보내 온 고병수는 제주에서 태어나 현재도 제주 사람들의 아픔을 치료하고 있는 제주탑동365일의원 의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