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차 따복공동체 도민참여연구에 참여하여 작성한 보고서가 발간되었습니다. 경기도의 마을공동체 관련 중간지원조직의 실무자들과 나눈 대화를 통해 현안이슈를 정리한 연구였습니다. 우리나라 중간지원조직 실무자의 업무환경은 매우 열악한데요, 그래서 한 자리에 모이기도 힘들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얘기를 나누고, 그것을 정리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기회가 된다면 이런 연구를 지속해야 한다고 여겨집니다.

1. 복잡한 마을, 관계망이라는 열쇠

걸어서 가기에 먼 곳에 약속이 잡히면 마음이 분주하다. 약속시간은 세 시간이나 남았지만 바삐 영등포역으로 향했다. 수원 가는 전철을 기다리며 ‘이 연구를 어떻게 풀어야 되나?’라고 잠시 고민이 들었다. 주로 서울과 인천을 대상으로 연구를 해온 터라 경기도는 미지의 세계나 다름없다. 공식적인 연구경력의 절반 이상이 공공영역의 정비사업이나 도시재생 따위라서 마을공동체 자체에 문외한이나 다름없기도 하다. 마을공동체라는 주제는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앞서기보다는 주민들이 나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항상 조심스럽다.

새삼스레 연구를 제안하던 때가 떠오른다. “뭘 하고자 하는지 모르겠네요. 따복공동체가 뭔지는 아세요?” 어느 심사위원의 질문에 당황했다. 조례에 정해진 따복공동체의 정의인 ‘주민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지역 내 관계망을 활성화하고, 사람 중심의 사회적경제를 실현하는 공동체를 말한다.’라는 거를 알고 있는지 묻는 것일까? ‘뭘 하고자 하는지 모르겠다.’와 ‘따복공동체가 뭔지는 아느냐?’는 서로 연결되는 개념도 아니다. 후자로 인해 무엇을 묻는 것인지 알기 어려워지는 비논리적 표현의 전형이다. 설령 누군가가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더라도 따복공동체가 뭔지는 아느냐는 질문은 매우 무례한 것이다. 하물며 심사과정에서 공인으로서 그런 질문을 한다는 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싶어 서글펐다.

뭘 하고자 하는지 모르겠다는 질문은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문제와 가설과 연구방법을 설정한 후 분석을 수행하여 얻은 결과를 통해 가설을 검증하는 방식의 실증연구와는 다른 방식의 연구를 설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을현장은 그 자체로 ‘복잡다단한 사회’이다. 복잡다단하다는 것을 학술적으로는 복잡계(chaos)의 특성(복잡성)을 지닌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하위 구성체나 분자 단위에서는 분석을 통해 인과관계를 파악하고 예측을 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그 총합이나 총체의 경우에는 정확한 이해가 어려운 것이 복잡계의 특성이다(Bar-Yam, accessed August 17, 2017). 그래서 마을공동체를 설명하기가 어렵다. 또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을공동체의 상을 다른 사람에게 강조하는 것은 의미도 없고 심지어는 위험하다.

마을사업 조력자(마을지기)나 중간지원조직의 실무자는 복잡다단한 마을현장을 대하는 게 일상이다. 매일 다양한 상황과 변수들에 마주치게 되고 그것을 풀어내야 한다. 복잡계를 풀어내기 위해서 제일 먼저 갖추어야 하는 기반 중에 하나는 방대한 정보처리와 분석과 논의를 위한 연구자 관계망, 즉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이다(Lévy, 2002). 마찬가지로 복잡한 마을현장의 이슈를 풀어내기 위해서도 관계망이 필요하다. 관계망은 충분한 ‘시간’, 즉 관계밀도와 이슈에 공감하는 ‘동료’로 구성되는데, 둘 모두 마을현장에서는 항상 부족하다.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데 진척이 되지 않고 소모되는 느낌을 가지게 되는 근본 원인 중에 하나이다. 즉 마을지기와 중간지원조직은 외로움에 처해 있다.

마을지기와 중간지원조직이 외롭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공동체는 ‘다양한 관계로 얽혀있는 구성원들의 집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동체의 각 구성원들은 서로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더라도 물리적으로 분산되어 있다. 더군다나 물리적 거리를 좁힌다고 해도 생각을 완전히 공유하기는 어렵다. 즉, 물리적·사상적으로 개개인이 나뉘어 있다. 공동체 구성원이 외로운 이유이다.

인류의 진보는 이러한 외로움을 끊임없는 소통과 공감을 통해 극복한 결과이다. 혼자 뛰어난 성취를 이루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 전해지지 않으면 당대를 끝으로 소멸될 것이다. 즉, 지식의 축적과 연구를 통한 과학의 발전은 모두 소통과 공감의 산물이다(Lévy, 2002; Rifkin, 2010).

이슈해결을 위한 전통적 소통방법은 세미나 또는 포럼이다. 세미나는 특정 과제에 관하여 여는 연수·강습·연구회이며, 포럼은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이 발표를 하고, 그에 대해 질의하는 토론회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비교적 단순하고 명확한 분야의 긴 호흡을 지닌 학술연구에는 적합하지만, 동시에 다양한 주제를 다루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마을현장에서는 이슈의 도출과 해결을 위한 새로운 소통방법으로 ‘집담(collective conversation)’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집담이 이뤄지는 월드카페나 커뮤니티 캠프와 같은 집담회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모여 관심사와 정보를 공유하는 장이 되는데, 구성원의 규모에 비례하는 이슈의 도출이 가능하고 ‘당사자가 최고의 전문가’라는 의의에 부합하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이 연구는 집담회를 활용한 ‘공동체 특성에 맞는 집단학습(연구) 모델’의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하여 경기도 내 마을공동체 실무자과 집담을 나누고 마을공동체 및 중간지원의 이슈 또는 해결과제를 도출해 보는 것에 목적이 있다. 관계로 얽혀 있지만 모일 시간이 부족한 상황을 감안하여 2017년 11월 7일과 11월 11일, 두 차례에 거쳐 고양, 부천, 안산, 수원, 화성, 경기도의 마을공동체 중간지원조직 실무자 8명과 총 6시간에 걸쳐 집담을 나누었다.

그리고 제10회 마을만들기전국대회 in 진안(2017.9.7~9, 전라북도 진안군), 2017 지속가능도시 주간(2017.9.25~27, 경기도 수원시), 2017 전국 마을박람회·안산 마을공동체 한마당(2017.10.18~20, 경기도 안산시), 제1회 화성시 마을공동체 한마당(2017.10.19~21, 경기도 화성시), 2017 경기도 따복공동체지원센터 활동전시회(2017.12.6~7, 경기도 수원시) 등에 직접 참여하며 지역의 상황과 중간지원조직의 고민을 살폈다.

다양한 경로로부터 나온 얘기들은 중간지원의 개념, 마을평가, 지원조직융합, 과중한 업무, 광역센터, 지원조직구성원, 주민주도사업, 공공주도사업, 연구사업으로 분류하여 정리하되 집담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대화의 내용을 최대한 원형 그대로 전달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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