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펀치(586) 우리 안의 신자유주의

By | 2018-07-02T14:42:17+00:00 2017.11.29.|

블랙 프라이데이가 한창이다. 일 년에 한 차례 싼 값에 물건을 내놓아 소비자들이 대거 구매하게끔 하는 것을 의미하는 블랙 프라이데이는 일반소비자로 하여금 미국의 사이트에 직접 들어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게 하는 효과가 있어 상당량의 소비로 이어질 전망이다. 그러나 블랙 프라이데이를 보면 나는 전혀 다른 프리미엄 프라이데이가 떠올랐다.

프리미엄 프라이데이는 일본정부가 소비 진작을 위해 금요일 퇴근 시간을 오후 3시로 정해놓을 것을 말한다. 금요일 퇴근 시간이 빠르면, 그만큼 소비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에서 나온 정책인데, 실제 어느 정도로 소비 진작효과가 있는지 모르지만 일본 정부의 디플레이션 종식 노력이 이 같은 아이디어를 현실화 시키는 데까지 닿아 있다는 것은 흥미롭다. 우리 정부도 올해 초 일본의 프리미엄 프라이데이를 도입하려 시도한 적이 있다. 한 달에 한번 금요일 퇴근 시간을 앞당겨 마치 일본에서 한 것처럼 소비를 진작해보겠다는 것이었으나 전격 도입되지는 못했다.

현재 일본은 “일손 부족, 실질 임금 정체”로 요약되는 문제를 안고 있다. 과감한 유동성 공급을 통해 성장의 결실을 기대했으나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장애에 비하면 훨씬 나은 조건이다. 몇 년 전만하더라도 일본 경제의 앞날은 캄캄했다. 1990년대 헤이세이 공황을 시작으로 끝 모를 장기침체가 30년 넘게 지속되고 있어 결국 일본호도 침몰하는가라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 보이는 일본경제의 호조세는 놀랍기만 하다. 노동공급의 부족문제가 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으나 여전히 일본의 경제성과는 날로 새롭다.

유효구인비율이 이미 100을 넘었다. 우리언론에도 많이 보도된 것처럼 일본 4년제 대학생 중 취업을 희망하는 75% 학생의 취업실적은 100%를 넘었다. 이것이 일본 기업이 서울에 와서 취업박람회를 여는 이유이다. 따라서 일본 정부는 노동공급에 각별히 애쓰는 모습이다. 최근 중위원 선거이후 일본 정부의 노동시장 정책은 과연 아베 내각이 보수 많나? 라는 의문을 품기에 충분했다. 일과 보육의 양립을 보장하는 여성 인력 취업 조건 개선, 정년을 연장하여 고령층 인력 확보 시도, 동일노동/동일임금 등 우리사회에서는 진보진영에서나 볼 수 있는 정책들이 보수 우익 아베정권에서 추진 중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고용 정책 때문에 심한 몸살을 앓고 있는 중이다. 과거 신자유주의 때문에 비가 온다는 말이 유행을 정도로 신자유주의는 사회의 온갖 비정상적인 작동의 원인으로 간주되어왔다. 그러나 현 정부가 인천공항을 방문하면서 시작된 노동시장 유연화의 완화 기조는 노노간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미 예견된 일이었을지 모른다. 그만큼 오랜 동안 신자유주의에 길들여져 있고 이미, “우리 안의 신자유주의”라고 불러도 이상치 않을 만큼 내재화 된 것으로 보이는 갈등들이 터지고 있다.

최근 인천공항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놓고 내부 공청회를 벌였다. 그러나 노노갈등의 수위가 만만치 않다. 이미 전교조 내에서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 반대움직임이 상당한 수준으로 이어져 결국 실패한 사례에서 보았듯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생각보다 쉽지 않은 문제이다. 이는 보수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 때문이 아니다. 그동안 열심히 일한 취준생 및 신입사원의 반발이 가장 거세다고 할 만큼 여론이 좋지 않은 게 문제이다. 인천공항의 경우 비정규직 1만 명이 정규직화 되더라도 현재 정규직 직렬과 완전히 다른 직종과 임금체계를 갖기 때문에 현 정규직의 임금이 삭감되거나 복지 예산 및 수혜가 줄지 않을 것임에도 정규직위주의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다.

“결과의 평등 NO, 기회의 평등 YES”, 인천국제공항공사 노조가 내걸었다는 현수막은 놀라울 따름이다. 사측의 현수막이 아니라 노조의 것이다. 정규직의 고용과 임금 그리고 처우개선에 전혀 부정적 여파를 낳지 않는 1만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정부와 공사 측이 의지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규직화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잘못된 노동시장정책을 우리는 신자유주의 때문이라고 여겨왔다. 그러나 이 같은 생경한 장면을 목도한 지금 오히려 염려해야 하는 것은 ‘우리 안의 신자유주의’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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