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에서 모범생으로 불리던 남자아이에게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 그 아이는 선생님이 안 보일 때면 갑자기 화를 내거나 때렸다. 부모님이나 선생님께 알리면 죽여버리겠다는 말에, 아무에게 알리지 못 했다. 그때는 정말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교에 가는 길이 무서웠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후에야 괴롭힘은 멈췄다. 대신 내게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도 그랬다. 선생님도, 부모님도, 나를 괴롭히던 남자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가 나를 좋아해서 그런 거라고, 남자 아이들은 원래 좋아하면 괴롭히는 거라고 했다.

이십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여전히 그때 기억이 선명하다. 그런데 이런 경험은 나만 겪은 특별한 경험이 아니었다. 남자 아이들이 가슴을 만지고 도망가거나, XX년, 병신과 같은 말을 여학생들에게 쉽게 했다. 최근 보도되는 학교 기사를 보면 섬뜩할 때가 많다. 선생님에게는 포르노에 나오는 대사를 날리며 성희롱 하거나, (친구)엄마를 모욕하는 것을 쿨한 것처럼 여기며 패륜드립을 한다. 여학생에 대한 외모평가나 강간모의는 남학생들만 있는 채팅방에서 흔히 벌어진다. 인정하고 싶지 않더라도 학교 안팎에서 생산되는 폭력이 여학생, 여선생님, 엄마 등 주로 여성을 향해 있다.

얼마 전, 온라인에서 ‘#우리에겐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하다’ 해시태그 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은 지난 7월 말, 초등학교 선생님이 학교에도 페미니즘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한 것에서 시작한다. 인터뷰에서 선생님은 여자아이들도 남자아이들처럼 학교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신체적인 활동”을 하면 좋겠다는 고민을 말했고, 어린 여자 아이들이 성장해서도 크게 웃고 발랄하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을 표현했다. 그리고 비판적 사고 능력을 기를 수 있는 도구로서 페미니즘은 좋은 교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그런데 얼마 후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남혐(남성혐오)과 동성애를 가르친다는 비난과 공격이 이어졌다. 선생님 얼굴을 캡쳐해서 온라인에 유포하고, 신상도 공개했다. 소속 학교며, 교육청에 민원을 넣는 이들도 있었다. 결국 그 선생님은 학교를 쉬어야 했다. 해시태그 운동은 선생님에 대한 무분별한 공격을 멈추라고 말하기 위해, 학교에서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지지하기 위해 일어났다.

페미니즘은 남성혐오 이데올로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남성혐오나 동성애를 권하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뿐만 아니라 인권과 평등을 가르치는 도구로서 페미니즘이 거부될 이유는 없다. 성교육은 되면서, 성평등교육에 반대하는 것이 모순이다. 마찬가지로 인권과 평등을 지향하면서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일은 납득하기 어렵다. 오히려 페미니즘은 불평등한 젠더권력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성평등을 지향하기 때문에 모두에게 이로울 수 있다. 페미니즘에 대한 맹비난은 여성(여학생)은 남성(남학생)과 결코 동등하거나 평등해져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꼴이다.

학교에서 페미니즘이 논쟁거리로 등장했다는 것은 그동안 학교라는 공간이 성차별적이고, 반인권적이고, 안전하지 않은 공간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런 논쟁은 반가우면서도 씁쓸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서울시에서는 교육청, 마을, 민간단체가 모여 성평등 학교 만들기를 시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비록 단기적인 커리큘럼이지만 중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최대 5회까지 성평등 수업을 진행한다. 특이한 점은 선도학교 5곳과 신청학교 26곳을 우선적으로 진행하는데, 신청학교에서는 혐오표현을 사용하는 문화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신청했다고 사유를 밝혔다.*

학교 내에 만연화된 폭력과 혐오가 불편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그리고 폭력을 방치하는 건 교육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교육이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지속성이 중요하다. 이벤트성으로 이루어지는 성평등 교육 대신 가까운 곳에서 선생님을 통해 접하는 교육이 더 효과적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에겐_페미니스트_선생님이_필요합니다. 아니, #우리에겐_더_많은_페미니스트_선생님이_필요합니다.

* 출처: 장일호 기자, 여성 혐오, 교실을 점령하다, 시사IN, 2017년 9월 4일(제52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