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

프롤로그: 기묘한 반복

1. 쉽게 풀리지 않는 난제들

2. 사람 중심 정책

3. 사람 중심 산업

4. 사람 중심 경영

5. 패러다임의 완전한 전환

6. 사회적 합의 기반의 실행 전략

7. 결론을 대신하며

 

프롤로그: 기묘한 반복 

2012년 초 나는 『자본주의 그 이후』란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책이 다룬 중요한 주제 중 하나로서 ‘창조경제’가 있었다. 지식과 감성, 상상력으로 구성된 인간의 ‘창조력’이 가치 창출의 주요 원천으로 부상함에 따라 기존 산업사회와 성격이 다른 창조경제가 도래했음을 기술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박근혜는 기회 있을 때마다 창조경제를 역설했다. 한 동안 창조경제는 박근혜의 발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용어가 되었다. 그로 인해 나는 엉뚱한 피해를 입어야 했다. 적지 않은 진보 인사들이 내가 창조경제를 언급할 때마다 왜 박근혜가 사용하는 말을 당신이 쓰느냐며 불쾌한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지극히 비과학적 태도였지만 창조경제론을 먼저 피력했던 나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박근혜는 수많은 이벤트를 연출하며 창조경제 프로젝트를 추진했지만 결과는 완벽할 정도의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가장 큰 원인으로서는 박근혜 자신을 포함해 정부 관계자들이 창조경제에 대한 개념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점을 꼽을 수 있다. 개념 파악이 안 되다 보니 발전 전략이 제대로 마련될 턱이 없었다. 창조경제는 모험을 속성으로 함에도 모험과는 거리가 먼 대기업들에게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맡도록 한 것은 그 단적인 현상이었다.

지난 2016년에는 『선언』이라는 제목의 책을, 2017년에는 『한국혁명』을 연이어 출간했다. 두 책이 다루고 있는 핵심 주제는 ‘사람 중심 경제’였다. 내 입장에서 창조경제와 사람 중심 경제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결론적으로 창조경제가 제대로 되자면 자본의 이윤 추구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자본 중심 경제’에서 ‘사람 중심 경제’로 전환해야 한다. 굳이 마르크스의 분석 도구를 빌리자면 창조경제는 생산력 발전 단계를 표현하는 개념인데 반해 사람 중심 경제는 생산관계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한국혁명』이 출간된 지 몇 달 후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이번에는 문재인 정부가 한국 경제 패러다임 전환의 불가피성을 역설하면서 그 해답으로 ‘사람 중심 경제’를 내걸었다. 그동안 나는 주변 지인들에게 늦어도 2~3년 안에 사람 중심 경제가 대세를 형성할 것이라는 발언을 자주 해 왔다. 그런데 생각보다 빨리 그러한 흐름이 형성될 수도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물론 반드시 긍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문재인 정부가 죽을 쑤어 버리면 도리어 사람 중심 경제에 대한 불신과 냉소가 팽배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선택은 반드시 성공을 거두어야 한다. 그것은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지만 나를 위해서도 중요했다.

사람 중심 경제에 대한 문재인 정부 입장은 지난 2017년 7월 25일 국무회의에 제출된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에서 대략적인 윤곽을 드러냈다.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은 제목 그대로 향후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 방향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보고서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겠지만 이론적 기초가 충분히 갖추어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앞으로 함께 극복해 나가야할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론적 기초가 부실하면 정책이 일관성을 갖지 못하고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표류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본 연구는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의 유의미성을 최대한 긍정하고 존중하면서도 그것이 지닌 몇 가지 약점을 보완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사람 중심 경제에 대한 포괄적 인식 체계 정립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교한 정책 개발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사람 중심 경제에 대한 인식의 기초부터 다지는 것이 필요하다. 부디 이 연구가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성공을 뒷받침 수 있는 작은 밑돌 하나가 되기를 바란다.

 

1. 쉽게 풀리지 않는 난제들 

경제 분야에서 문재인 정부가 직면했거나 직면할 수밖에 없는 만만치 않은 난제들이 있다. 이 난제들은 향후 한국경제의 패러다임 전환과 관련해 대단히 중요한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다. 그 메시지를 파악하자면 그것들이 왜 난제인지 원인을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

성장 동력의 소진

성장 동력 확보는 경제 제일의 과제이다. 성장 동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그 어떤 문제도 제대로 해결할 수 없다. 성장 동력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분배도 여의치 않다. 성장 동력이 확보되지 못했거나 소진되면서 불황기가 이어지면 1, 2, 3차 분배 모두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기업은 추가 소득이 부족한 상태에서 1차 분배 수단인 임금 인상을 꾀하기가 쉽지 않다. 증세도 어려워진다. 불황기에 증세를 하자면 기업은 투자를, 개인은 소비를 줄여야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2차 분배 수단인 증세가 어렵다 보니 3차 분배 수단인 복지 확대도 쉽지 않게 된다.

성장 동력이 확보되었다고 모든 문제가 잘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성장 동력이 확보되었다 하더라도 분배 악화로 양극화가 심화되면 원활한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다. 서민은 낮은 수득 수준에서 부채 상환 압력까지 더해지면 소비를 최대한 억제할 개연성이 크다. 소비 시장이 위축됨에 따라 부자들의 투자 여지도 함께 줄면서 돈이 돌지 않는 금융경색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 결과 시장이 더욱 위축되면서 서민 소득을 압박하는 악순환 고리가 형성될 수 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성장 동력을 확보한 조건에서 분배와 성장이 선순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경제가 성장하는 환경에서 소득 분배 개선이 한층 효과적으로 추진될 수 있다. 소득 분배 개선은 성장을 원활히 지속시키는데 기여한다. 일반적으로 부유층에 비해 서민의 소득 대비 소비 지출 비율이 월등이 높기 때문에 분배 개선이 시장을 확대시키는 효과를 낳는 것이다.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 볼 때, 일반적인 성장 동력으로 기능했던 것은 ‘신산업 출현’, ‘생산성 증가’, ‘교역의 확대’ 등 세 가지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60년대까지 선진국을 중심으로 펼쳐졌던 자본주의 황금기는 세 가지 성장 동력이 고르게 작동한 경우라 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군수 분야에서 축적된 기술이 민간 부문으로 이전되면서 전기전자와 화학 등 분야에서 신산업이 연속적으로 창출되었다. 2차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노동생산성이 지속적으로 증가하였다. GATT(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체제 아래서 교역이 꾸준히 확대되었다.

이 시기 성장 동력 관리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인 정당이 있었다. 좌파 성향의 스웨덴 사회민주당(사민당)이었다. 사민당은 성장 동력 관리를 위해 세 가지 전략을 구사했다. 첫째 지속적인 산업구조 고도화를 통해 부가가치가 한층 높은 신산업을 연속적으로 창출했다. 둘째 협력적 노사관계를 확립함으로써 노동생산성을 꾸준하게 끌어올릴 수 있었다. 셋째 철저한 개방 경제를 추구함으로써 교역을 지속적으로 확대시켜 나갔다.

스웨덴 사민당은 성장 동력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면서 복지국가 건설에서도 모범적인 기량을 과시했다. 덕분에 분배·성장 선순환 관계를 가장 오랫동안 지속시킬 수 있었다. 결과는 사민당의 40여 년 장기 집권으로 이어졌다.

역사적으로 성장 동력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분배 개선만으로 성장을 지속한 예는 여간해서 찾아보기 어렵다. 도리어 성장 동력이 소진되면 분배 구조 유지조차 힘들어진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계속)

 

*표와 그림을 포함한 보고서 전문을 보시려면 아래의 pdf 파일을 다운 받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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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사람중심경제’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