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펀치(570) 할인의 추억과 도서정가제

By | 2018-06-29T17:02:31+00:00 2017.08.02.|

GDP 비중으로만 따지자면 나라 경제에서 아주 작은 부분이라 아파트 가격은 물론 담뱃값 인상 인하 논란만큼도 화제에 오르지 못하지만, 일부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갑론을박이 뜨거운 문제가 하나 있다. 이름하여 도서정가제다.

결론부터 압축하자면, 도서정가제 반대 입장은 주로 시장적 관점에 기초한다. 상품 가격의 결정을 수요와 공급의 법칙, 공급자들 간의 가격 경쟁 등 보이지 않는 손의 작동에 맡겨 두자는 것이다. 반면 도서정가제 찬성 입장은 시장 원리보다는 독서 생태계의 보존과 발전을 중시한다. 이 두 가지 관점 또는 입장의 대립은 우리가 이미 익숙하게 보아왔던 것들이다. 골목상권 논쟁, 임대차보호법 개정 논쟁 그리고 쌀 시장 개방 문제 등에서 말이다.

도서정가제는 책 소매 가격을 정가 대비 10% 이상 할인하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제도로, 2003년부터 시행됐다. 도서의 과다 할인 경쟁으로 양서 출판이 위축되고 동네 서점이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자는 취지였다.

도서정가제 도입은 꽤 오래 되었지만, 일반 독자들의 피부에 실질적으로 와 닿기 시작한 것은 2014년 11월 개정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 전까지는 신간에만 적용하던 정가제를 구간까지 포함한 모든 도서로 확대했기 때문이다. 주로 온라인 서점을 중심으로 구간 도서 할인 판매에 익숙해 있던 소비자들로서는 달갑지 않았다.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 전에는 적게는 15%에서 많게는 50% 심지어 70~90%까지 땡처리나 다름없이 할인한 책들이 온라인 서점에 즐비했다.

온라인 서점들은 앞다투어 할인 판매 카테고리를 만들었고 소비자들은 최저가격순, 최대 할인율 순으로 할인 도서를 검색해 정가 대비 터무니없이 싼 가격으로 책을 구입할 수 있었다. 제값 주고 책을 사는 사람은 바보나 다름없고 정가 1만5천원인 책을 만 원 이하로 구입하는 것을 당연시하던 분위기에서 개정 도서정가제는 소비자로서의 권리, 쇼핑의 즐거움을 막은 것처럼 보인다. 소비자의 뇌리에는 할인의 추억이 진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일몰을 앞둔 도서정가제

이 개정 도서정가제는 3년만 한시적으로 시행하기로 한 것이어서 오는 11월이면 어떤 형태로든 개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다시 예전처럼 신간에만 정가제를 적용하는 방식으로 돌아가거나 또는 지금보다 더 강하게 할인 판매를 제약하는 쪽으로 개정될 수도 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어떤 개정 방향을 원할까? 자신의 입장을 먼저 가다듬어 보고 이하의 글을 읽는다면 이해당사자의 한 사람이 되어 도서정가제 논쟁이 한결 실감나게 다가올 것이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가 출판사, 서점 등과 협의체를 구성해 도서정가제 개선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는데, 이에 즈음하여 SNS 등에서는 도서정가제를 반대하는 소비자들의 목소리가 점증하고 있다. 일부 언론도 정가제로 책값 부담이 늘어나고 독서 인구가 줄어들었다는 논리를 펴면서 도서정가제 비판에 가세하고 나섰다.

재화를 싸게 살 권리를 요구하는 소비자의 목소리는 당당하다. 자본주의 시장 경쟁의 논리에 기반을 둔 일견 상식적이고 익숙한 주장으로 보인다.

그런데 소비자 여론이 도서정가제에 대해 썩 우호적이지만은 않은 데 비해 책을 공급하는 출판계나 골목상권에서 책의 소매를 담당하는 지역 서점들의 의견은 사뭇 다르다. 문체부가 도서정가제 시행 1년 후 출판 종사자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67%의 응답자가 현행 도서정가제의 유지 또는 강화에 찬성했다. 출판계나 지역 서점업계의 이러한 반응은 전형적인 자기 밥그릇 챙기기 식의 공급자 관점일까?

도서정가제를 둘러싼 이 두 관점의 차이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 먼저 정확히 할 사항이 있다. 도서정가제의 취지는 도서 가격의 단일가 확립이지 높은 책값을 유지하는 데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책을 사는 독자들은 물론이고 출판 종사자들 중에서도 이를 혼동하거나 오해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단일가란 전국 어느 서점에서 책을 구매하건 가격이 동일하다는 뜻이다. 충청도 괴산의 어느 작은 숲속 책방에서 책을 사건,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사건 책 가격이 같아야 한다. 왜 그럴까. 온라인서점이나 대형서점, 온라인쇼핑몰 등과 같은 거대 유통서점들이 도서 가격을 임의로 조정함으로써 지역 서점들의 존립 근거를 허무는 일을 방지하자는 것이다. 규모에서 밀리는 동네 책방들은 가격 경쟁에서 절대 버텨낼 수가 없다.

온라인 서점의 등장으로 이런 상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지역 서점들은 하나둘씩 문을 닫아 2003년 2250개에 달하던 서점은 지난해 1559개로 줄어들었고 그만큼 책은 독자들의 눈과 생활권에서 멀어져 갔다. 동네 작은 책방은 대형서점이나 온라인 서점과 이미 체급부터 다르다. 그런데 가격마저 불리하다면, 게임은 해보나 마나 아닌가. 지역 서점들이 최소한 경기 룰이라도 불리하지 않도록 어디에서나 책값을 동일하게 받아야 한다고 규정한 것이 도서정가제의 핵심이다.

 

10년 된 휴대폰과 10년 된 책의 차이

 

wepun570(in)

 

어라, 그런데 단일가를 위해 할인을 못하게 하니 결국 책값 부담이 늘어나는 것 아닌가?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 도서정가제는 이미 매긴 책 정가를 함부로 낮추어 팔지 못하게 할 뿐이지 정가 책정 자체에 관여하지 않는다. 만일 시장 수요에 비해 정가가 높다면 그 책은 당연히 팔리지 않는다. 출판사가 정가를 책정할 때는 제조 원가를 고려하여 초판을 팔아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는지 여부와 함께 반드시 시장 수요를 검토한다. 경쟁도서에 비해 값이 비싸지는 않은지, 해당 도서 수요층의 구매력에 비추어 적절한 가격인지 판단하는 과정에서 자연히 정가는 수요에 부응하는 정도로 조정된다. 도서정가제가 있다고 해서 출판사가 시장 원리를 거슬러서 일방적으로 높은 책값을 매길 수는 없다는 말이다.

우리나라 도서 시장은 서점 수보다 출판사 숫자가 월등히 많은 공급 과잉 시장이다. 게다가 영화, TV, 핸드폰에 점점 더 독자를 빼앗기면서 독서 인구는 갈수록 줄어들어 책값은 물가 상승률조차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한국 출판계는 2천여 군소 출판사가 동일 시장을 놓고 경쟁하는 완전 자율경쟁시장이라 보아도 무리가 없다. 즉, 정말로 부당하고 높은 가격을 매기는 출판사는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실제로 개정 도서정가제 이후 책값은 낮아지고 있다. 문체부 조사에 의하면 개정 도서정가제 이후 발행도서의 평균 정가는 그 전해에 비해 6.2% 하락했고 특히 가계 부담이 큰 유아와 아동도서의 경우 평균 정가가 18.9% 하락했다. 할인의 추억이 워낙 강하게 남아 독자들 입장에서는 정가대로 사는 게 매우 비싸다고 느끼지만, 초판을 다 팔아도 손익을 맞추지 못하는 수준에서 정가가 결정되는 경우가 더 많다.

신간은 그렇다 치고 출간된 지 몇 년이 지난 책들은 투입 비용을 충분히 회수했으니 할인을 해줘야 마땅한 것 아닌가? ‘10년 지난 휴대폰을 출시 가격에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라며 구간 할인 금지를 비판하는 글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세월이 지나면 기능이 떨어지는 전자제품과 달리 책은 5년 10년이 지난다고 가치가 대폭 달라지지 않는다. 물론 실용정보서 등을 제외한 이야기다.

<논어>, <데미안> 같은 책의 가치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또한 오래된 구간을 무조건 출시 가격으로만 팔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구간에 대해 정가를 다시 책정하여 합리적 가격에 내놓을 수 있는 도서 재정가제가 도서정가제와 함께 실시중이다. 처음 출시할 때 2만원이던 책을 18개월이 지난 후 1만원으로도 5천원으로도 조정할 수 있는 것이다. 해마다 수천 종의 책이 이렇게 재정가 도서로 판매된다. 물론 이런 재정가 도서도 일단 정가를 정하면 도서정가제의 취지에 따라 할인율은 제한된다. 이렇게 보면 도서정가제로 책값 부담이 늘어났다는 주장은 절반 이하의 진실이라고 할 수 있다.

 

책과 지식 생태계 빈곤의 악순환

만일 개정 도서정가제 이전으로 돌아간다면 독서 생태계에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대폭 할인한 구간 판매가 주를 이루는 상황에서 양서나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책, 최신 정보를 담은 신간을 내는 일은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다. 가격으로만 경쟁하려다 보니 독자가 선호하는 비슷한 주제의 책들이 대거 양산될 것이고 콘텐츠 질의 저하를 피할 수 없다. 책의 다양성이 줄어들면 다양한 저자가 발굴되지 않는다. 저자층이 얇은 것은 한국 독서 생태계의 큰 문제점 중 하나이다. 읽을거리가 풍부하지 않으므로 독자들은 책을 외면하고 출판계는 더욱 장사가 되는 책에만 몰려들 수밖에 없다. 신진 저자를 세상에 알릴 기회는 더욱 줄어든다. 빈곤의 악순환이다.

뿐만 아니라, 단일가가 무너지면 지역 서점, 동네 책방들의 입지는 급속히 위축된다. 이미 경쟁력을 상실한 작은 책방들이 하나둘 문을 닫는 일은 도서정가제 이후에도 계속되었지만, 그래도 정가제가 실시되면서 새로운 의욕으로 개성을 살린 동네 책방들이 전국에 백여 곳 넘게 새로 생겼다. 이 서점들은 단순히 책을 전시하고 팔 뿐만 아니라 지역민에게 좋은 책을 추천해 주고 저자들을 초대해 강연회를 열고 온라인서점에서 잘 눈에 띄지 않던 독특한 색깔의 책들을 조명하는 등 독서 생태계를 풍성하게 만드는 역할을 수행하는 중이다. 단순한 서점이라기보다는 지역 독서 문화의 허브인 것이다. 지금도 동네 서점이 책을 팔아 한 사람의 월급을 제대로 가져가기는 쉽지 않은 실정이다. 정가제가 폐지되면 이런 긍정적 시도들은 다시 자취를 감추게 된다.

소비자 자본주의라는 말이 시사하듯이 이 사회에서 소비자의 권리는 대단히 중요하고 막강한 힘을 지닌다. 도서정가제를 시장 논리로만 보자면, 모순점이 분명히 존재하는 제도이다. 그런데 싸게 살 권리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양질의 제품을 지속적으로 살 수 있는 권리이다. 시장 논리에도 불구하고 골목상권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 수입 농수산물이 아무리 싸더라도 최소한의 식량 주권만큼은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이유, 더 싸게 살 수 있음에도 공정무역 제품을 고르는 이유가 있듯이, 지식정보화의 원천인 독서 생태계를 보존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도서정가제는 그러한 노력 가운데 하나이다. 개선해야 할 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개선 방향이 시장 논리에만 기울어서는 곤란하다. 독서 생태계는 저자, 출판계, 유통업계, 소매서점, 도서관, 독자로 이루어진다. 주체들 전체가 공생하고 발전할 수 있는 개선 방향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절실하다.

   댓글을 달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