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펀치(565) 마을에서 연구하기

By | 2018-07-02T16:36:04+00:00 2017.06.28.|Tags: , , |

얼마 전에 한 지자체에서 마련한 주민참여연구의 발표 심사회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이런 연구를, 지자체에 따라 조금 다르지만, ‘연구에 대한 조금 다른 생각, 작은연구’라고 일컫는 경우가 많다. 몇 년 전에 처음 ‘작은’ 연구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직접 수행할 주민들의 부담을 덜고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서는 ‘작다’는 표현도 할 수 있겠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요즘에는 드는 생각은 ‘작은연구’라고 쉬이 받아들인 것이 자칭 연구자의 오만함은 아니었는지 반성을 하게 된다. 연구는 숙련된 연구자가 하는 것이라는 그릇된 인식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마을을 연구하고 마을주민을 만날 때 스스로 이렇게 다짐하곤 한다. ‘아는 척 하지 말자. 나대지 말자.’ 처음에는 어려운 여건에서도 꿋꿋하게 마을살이를 이어가는 주민들에 대한 존중에서 비롯된 태도였지만, 마을현장을 접하면서 ‘정말 아는 것이 없다’는 걸 깨닫고 난 후에는 신념이 되었다. 현장의 역동성과 방대한 정보에 압도되어 마치 문외한이 되는 느낌은 어떤 상황에서도 척척박사여야 하는 전문가에게는 두려움이다. 아마도 이런 기분이 싫어서 많은 학자나 전문가들이 현장보다는 잘 정돈된 이론에 천착하고, 현학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남들이 알아보기 어려운 건 소통을 방해하고 사회진보를 더디게 하는 걸림돌일 뿐이다. 뿌듯함의 근거도 아니고 경외의 대상이 될 이유도 없다.

외국의 상황은 잘 모르겠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연구가 경외의 대상인 듯하다. 뭔가 심오하고 복잡하고 어려운 일, 똑똑하고 공부 많이 한 사람들의 영역으로 존중받는 것 같다. 연구자로서 이런 존중이 싫지만은 않지만, 딱히 연구가 다른 일에 비해서 ‘더’ 존중받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연구가 특별히 더 어렵지도 않을 뿐더러 심오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연구를 뜻하는 서구의 대표적인 단어는 스터디(study)이다. 우리가 의무적으로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해온 익숙한 공부가 연구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실제로 연구와 관련된 어휘들을 추려보면 탐구, 궁리, 조사, 검사, 연마처럼 익숙한 단어들이 등장한다. 어렵다기보다는 다소 끈기를 요하는 일들임을 알 수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일에는, 심지어 놀이에도 궁리나 연마가 필요하다. 누구나 일상적으로 하는 일들이 연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끈기를 갖는 게 쉬운 것만은 아니지만, 막연히 연구가 어렵다고 느끼는 것과는 결이 다르다.

연구가 본질적으로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연구의 ‘대상’이 복잡하다면 연구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연구에 대한 풍부함 경험을 지닌 숙련된 연구자가 아니면 접근하기 어려운 연구주제도 당연히 존재한다. 하지만 집단지성이나 인터넷 정보의 발달로 인해 해당 분야의 전문가만 다룰 수 있었던 연구주제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물론, 그래봐야 여러 전문분야 사이의 융합이 이뤄지는 것이니 연구는 연구자의 몫이라는 전문가 진영의 반론도 있을 수 있겠다.

요즘 《우리는 미래에 조금 먼저 도착했습니다》라는 책을 읽고 있다. 핀란드에서 자라 미국인과 결혼하여 미국에 이주한 언론인인 아누 파르타넨이 지은 책인데, 서로 다른 노르딕 문화와 미국 문화를 두루 경험하고 비교하고 있어서 우리나라에서도 관심이 많은 북유럽 모델에 대해서 많은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책의 내용을 관통하는 주제 중 하나는 ‘사랑에 관한 노르딕 이론’이다. 여기에서 사랑은 남녀 사이의 연정만을 뜻하기보다는 좀 더 넓게 ‘아끼고 베풀며 따뜻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은이는 ‘사랑에 관한 노르딕 이론’을 “진정한 사랑과 우정은 독립적이고 동등한 개인들 사이에서만 가능하다”라고 요약한다. 노르딕 시민에게 인생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과의 관계 면에서 개인의 자족과 독립이라는 것이다. 수십 년에 걸친 노력을 통해 이 이론을 사회정책에 반영한 결과가 현재의 북유럽 모델이 되었다는 것이 지은이의 설명이다.

지은이에 따르면 “노르딕 사회의 원대한 야망은 경제를 사회화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목표는 개인을 가족 및 시민사회 내 모든 형태의 의존에서 자유롭게 하자는 것이었다. 가난한 자들을 자선으로부터, 아내를 남편으로부터, 성인 자녀를 부모로부터, 노년기의 부모를 성인 자녀로부터. 이런 자유의 명시적인 목적은, 숨은 동기와 필요에서 벗어나 모든 인간관계가 완전히 자유롭고 진실해지도록 그리고 오직 사랑으로만 빚어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쉽게 이해하자면 누구도 마음의 빚을 지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마을에서 이뤄지는 ‘작은연구’도 이러한 노력의 연장선에 있다고 여겨진다. 마을주민이 소위 똑똑한 사람들에게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첫걸음으로.

간혹 마을주민들과 얘기를 나누다보면 “우리들의 하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 누군가가 이론적으로 해석해줬으면 좋겠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서두에도 밝혔듯이 현장의 역동성을 따라 잡기도 버거운 연구자들이 수행하기에는 ‘어려운’ 주제이다. 이런 연구를 가장 잘 할 수 있는 주체는 현장의 주민들이라 믿는다.

당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 당신이 다른 사람들처럼 선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 당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 당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낫다고 확신하지 마라. / 당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 마라. / 당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 당신이 뭔가를 잘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 다른 사람들을 비웃지 마라. / 누구든 당신한테 관심을 갖는다고 생각하지 마라. /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얀테의 법칙>

마을을 연구하는 전문가에게 필요한 덕목은, 지은이가 악셀 산데모세의 ‘도망자, 자신의 자취를 가로지르다’에서 인용한 ‘얀테의 법칙’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주민들의 노력에 사회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조용히 보조를 맞추는 것. 마을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전문가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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