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냥 잘 나가던 사회단체나 기업, 국가 등이 몰락의 길을 걷는 이유는 여러 가지일 수 있다. 그중 하나로 ‘자만’을 꼽을 수 있다. 자만은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다. 한 때 세계 시장을 호령하던 절대 지존들의 운명은 이 점을 생생하게 입증한다. 소니와 노키아 두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자.

일본의 대표적인 전자업체였던 소니는 1950년대에서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소니는 1950년대 자신들이 최초로 개발한 트랜지스터 소형 라디오로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소니는 불과 5년 만에 미국 트랜지스터 라디오 시장을 평정했다. 1960년대 이르러 소니는 독자 개발한 브라운관을 내세워 컬러TV 시장까지 석권했다. 1980년대에 와서는 이동하면서 들을 수 있는 휴대용 음향기기 워크맨을 출시해 새로운 신화를 창조했다. 워크맨은 오랫동안 경영학에서 기존 시장 판도를 뒤바꾸어 놓는 ‘와해성 제품’의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되었다.

소니가 1983년 필립스와 공동 개발한 CD는 기존 LP를 퇴출시키며 음향 매체의 새로운 표준으로 떠올랐다. 자신감을 가진 소니는 1991년 CD마저 대체할 미니디스크(MD)를 출시하는 면모를 과시했다. MD는 여러 가지 점에서 CD를 압도하는 장점이 있었다. 먼저 MD는 크기가 CD의 절반도 안 되었다. 이는 MD를 장착한 휴대용 음향기를 더욱 소형화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MD는 CD에 없는 녹음 기능까지 있었다. 사용자가 원하는 음악을 녹음한 뒤 이동하며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제작비용도 CD에 비해 훨씬 저렴했다. MD의 대박 성공은 확정적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MD플레이어는 시장에서 찬밥 신세가 되고 말았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결정적 요인은 음악 시장이 급속하게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화했다는 데 있었다. 199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PC가 일반화되고 초고속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음악을 듣는 형태가 혁명적으로 바뀌었다. LP나 CD, 카셑 테이프 등 아날로그 매체를 재생해 듣던 것에서 음악 파일을 재생해 듣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휴대용 MP3플레이어가 출시됨으로써 변화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소니의 MD는 아날로그 관점에서 보면 분명 최고의 기술력을 보여준 것이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디지털 시대에 필요한 네트워크 기능이 없었다. MD는 시대에 뒤떨어진 고물딱지에 불과했던 것이다.

요즘은 기억에 가물가물할 정도로 존재가 희미해 있었지만 노키아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세계 IT업계의 절대 강자였다. 1989년 미국 모토로라를 재치고 1위 자리에 오른 노키아는 1990년대 전 세계 휴대전화 시장의 50퍼센트 이상을 점유했다. 초창기 스마트폰 분야에서도 노키아의 심비안 플랫폼은 40퍼센트 이상 점유율을 자랑하고 있었다. 노키아는 자신감이 넘쳐났다.

바로 그 자신감이 노키아의 발목을 잡았다. 노키아는 휴대전화는 싸고 잘 터지기만 하면 잘 팔릴 것이라고 하는 사고에 푹 젖어 있었다. 그 결과 스마트폰으로 대세가 전환되는 것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심비안 기반의 스마트폰으로 초기 기세를 올렸으나 여전히 하드웨어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스마트폰의 경쟁력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인 플랫폼 기반에 있음을 충분히 파악 못한 것이었다. 노키아의 약점은 2007년 애플의 아이폰이 등장하면서 여지없이 드러났다. 낡은 심비안은 터치식 UI에는 맞지 않았고, 자체 앱 시장인 오비(OVI)스토어는 애플 앱스토어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애플 플랫폼의 강력한 대항마로 구글 안드로이드가 등장했으나 삼성처럼 안드로이드로 재빨리 갈아타는 민첩성도 발휘하지 못했다.

노키아의 구식 휴대전화는 스마트폰에 밀려 일거에 시장을 상실했다. 심비안 플랫폼의 세계시장 점유율도 2009년 4분기 44.4페센트에서 2011년 2분기 22퍼센트로 내려앉았다. 다급해진 노키아는 플랫폼을 MS의 윈도로 전환했으나 도리어 치명타가 되었다. 결국 노키아는 2013년 휴대전화 사업을 MS에 매각했다.

지나친 자신감은 자만을 낳고 자만은 해 왔던 대로 하려고 하는 관성을 낳는다. 관성은 급격히 방향이 바뀌는 시기에 기존 방향을 고수하게 함으로써 치명적 결과를 낳는다. 소니와 노키아가 바로 그런 운명을 겪었다.

자만이라는 병에 걸려 몰락 위기에 직면한 가장 최근 사례로서 한국의 보수 세력을 들 수 있다. 한국의 보수 세력은 열악한 조건에서 산업화를 성공으로 이끌었다고 하는 강한 자부심을 품어 왔다. 그러한 자부심은 조선, 전자 등 많은 분야에서 일본을 넘어섬으로써 한층 증폭되었다.

조선 분야는 일본이 50여 년간 부동의 세계 1위를 지켰던 분야였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세계 가전 시장은 일본의 소니, 파나소닉 등이 한손에 쥐고 흔들고 있었다. 당시 한국의 업체들이 그러한 일본 업체들을 넘어선다는 것은 상상 자체를 허락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와 한국 업체들이 일본을 넘어선 것이다. 한 때 세계 조건업계 1위에서 7위까지를 한국 기업들이 독차지하기도 했다. 메모리 반도체, 휴대전화, TV 등 핵심 가전분야에서 한국 업체들이 일본을 재치고 세계 1위를 질주하기도 했다. 덩달아 일본에 주눅 들어 살던 한국 사회 분위기가 일본쯤이야 하는 것으로 확 바뀌었다. 외신 기자들 눈에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일본을 우습게 보는 나라로 비쳐졌다. 보수 세력은 자신감이 넘쳐났다.

한국 경제는 정점을 찍는 바로 순간부터 고강도 혁신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가령 한국은 2010년대 접어들어 R&D투자 세계 1위를 기록했지만 정작 생산성은 33위로 바닥을 기고 있었다. 무언가 구조적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보수 세력은 둔감했다. 그 이상 어려운 시절도 다 헤쳐 나왔는데 이 정도는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매사를 대했다. 보수 정치권은 새로운 비전을 찾기보다 박정희의 정치적 유산의 의지해 연명하려 했다.

결국 경제는 보수가 강하다는 통념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보수 세력 전반에 동요가 일기 시작했다. 최순실 사태가 엄습해 오자 흔들리던 보수는 급속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과연 진보개혁 세력은 이러한 보수의 붕괴로부터 충분한 교훈을 얻고 있는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