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장 뜨거운 이슈는 국정감사도 새누리당 당대표의 단식도 아닌 백남기 농민의 사망진단서 건이다. 300여일 넘게 사경을 헤매다가 돌아가신 것도 억울하거늘 서울대학교병원 측은, 아니 서울대병원의 백남기 농민 담당 의사 백선하씨는 잘못된 사망진단서를 발급했고, 이는 유족들이나 국민들뿐 아니라 학교 선후배들까지도 분노하게 만들고 말았다. 결국 서울대학교 의대생들, 전국 의과대학 학생들이 성명서를 냈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동문들도 뜻을 같이 하기에 이르렀다. 어디 그뿐인가? 국정감사 이전에 급하게 만들어진 서울대병원·서울대의과대학 합동 특별조사위원회(특위)에서조차 위원들 모두가 사망진단서의 문제를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백선하 신경외과 교수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같은 의사인 나는 기자회견 내용을 몇 번이고 보면서 절망감을 느꼈다. 비단 나뿐일까? 회견 내용을 보면서 한탄했을 의사들이 많았을 것이다. 백남기 농민의 사망 원인이 동료인 의사들의 공분을 일으킨 게 아니다. 전문가로서의 자세에 대해서 한탄을 했을 것이다. 나도 그랬기에…..

사망 원인은 분명 소위 물대포에 맞아 쓰러지면서 외상성 뇌출혈을 일으켰고, 예견할 수 있는 치명적인 합병증으로 인해 사망에 이르렀다는 것은 이미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므로 더 이상 논하지 않겠다. 내가, 아니 동료 의사인 우리가 분노하는 것은 어떻게 300일 넘게 치료를 담당한 의사가 그렇게 무책임한 사망진단서를 작성할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의과대학생도 심각한 오류투성이라는 것을 지적했고, 웬만한 의사들이라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사망진단서였다.

사회적 문제가 되니까 서울대학교 병원장은 “… 이번 백씨 사망진단서에는 담당의사의 철학이 들어가 있다”라고 에둘러 말했다. 철학… 사망진단서는 누가 말했듯이 고인에 대한 마지막 예의라고 했고, 그 진단서는 과학적 판단 아래 명확하게 써야 하는 것이거늘 ‘철학’이 들어갔다고?

게다가 기자회견에서 담당의사 백선하씨는 급성신부전에 투석이 필요했는데 가족들이 연명치료를 거부했기 때문에 못해서 사망에 이르렀다, 라고 변명을 했다. 연명치료란 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서 심장만 뛰게 하면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이다. 엄연히 법으로도 연명치료는 무의미하기에 가족들의 동의로 거부할 수 있게끔 되어 있다. 살아서 움직일 가망성이 1%도 없는 노인을 살리겠다는 거룩한 결심이라도 했었다는 건가? 그럼 그 당시 가족들과 싸워서라도 투석을 했어야지 않는가? 아니면 경찰에 고발이라도 했어야 했다. 살아날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다고 말이다.

나는 서울대학교병원장의 ‘담당의사의 철학’ 이라는 표현과 백선하씨의 기자회견에서 면피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참담함을 느꼈다. 이것이 오늘 글을 올리는 이유인데 본론까지의 글이 길어지고 말았다. 그 두 의사를 보면서 전문가 정신이란 것을 새삼 되뇌어 본다.

‘Professionalism’이라고도 하는 전문가정신은 경영이나 사회학에서 이용하는 용어인데,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습득해서 사회에서 활용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다른 이들과 구별되는 중요한 기준인 그 ‘전문성’이 사회에 건강하게 영향을 주어야 한다고 학자들은 얘기한다. 즉 나의 전문가로서의 진면모는 사회에 투영되고 좋은 영향을 주면서 발휘된다는 뜻이다.

책임자의 위치에서 직원을 감싸려고 하는 관료적 모습의 서울대학교 병원장 얘기는 차치하고, 전문가로서의 백선하 의사가 백남기 노인을 성심껏 치료했다고 치자. 하지만 마지막 가는 길에 작성된 사망진단서는 분명히 전문가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전문가로서 과학적이지도, 규칙에 맞지도 않았으며 특위에서는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까지 보였다. 그래, 여기까지는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가냘픈 마음이라고 해두자. 하지만 다른 동료 대부분이 문제를 지적했다면 백선하씨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돌이켜 생각을 해보면서 수정 의사를 밝힐 수 있어야 한다. 끝까지 수정 의사가 없음을 강변하는 것은 전문가로서의 모습이 아닌, 개인의 고집에 지나지 않는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생들이 성명서에서 “전문가란 오류를 범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오류를 범했을 때 그것을 바로잡을 줄 아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듯이 전문가 정신이란, 자존심이나 아집으로 우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동료들의 얘기와 반대 목소리도 경청하면서 받아들일 줄 아는 것을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는 것이다.

의사들은 전장에서 만난 적일지라도 환자라면 응당 치료를 해야만 한다. 의사의 사명에는 사상이나 주의가 들어있을 수 없다. 백선하 의사도 노인이 쓰러졌던 이유와 과정에 반대되는 의견을 가지고 있든 그렇지 않든 그것에 상관없이 300여 일 동안 어르신을 정성껏 치료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어르신과 유족들을 생각하며 사망진단서를 다시 한 번 들여다 봐 주기를 권한다. 서류 작성 원칙에 어긋났다고 인정된다면 과감히 아집을 버리자. 더욱이 당신의 오류가 돌아가신 분과 그 가족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누를 끼칠 것이라면 밤을 새면서라도 고뇌하기를 바란다.

백선하 의사가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고 오직 환자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2500여 년 전 히포크라테스의 말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같은 길에 서 있는 동료 의사들과 장차 의업을 이어갈 후배들을 위해서 전문가로서의 정신을 다시 한 번 돌이켜 보기를 간절히, 정말 간절히 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