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모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PEACE MY WISH FOR THE GIRL’이라고 적힌 분홍 티셔츠를 입은 참가자를 보고 ‘오랜만에 응원할 만한 사람이 나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 알다시피 이 문구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지지하는 메시지이며 티셔츠 판매 수익은 전시성폭력 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나비기금의 조성에 쓰인다. 흐뭇한 마음에 이전 경연곡까지 하나하나 찾아서 듣게 되었다. 나만 좋아한 것은 아니어서 준우승까지 차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심사위원 중 한명의 “노래보다 메시지가 먼저 들려서 우려스럽다.”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곱씹어 들을 만한 신념이 부담스러웠는지는 모르겠으나, 함께 하겠다는 소속사를 오래도록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게시글을 보게 되었다. 그 글에는 “걔는 메갈인데 어떤 소속사가 데려가나?”라는 댓글이 달려 있었다. 그 밑의 댓글을 훑어보니 메갈은 메갈리아를 말하는 것이고, 메갈리아는 여성들의 일베라는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메갈리아라는 사이트는 알지 못했으나 일베라는 단어에 주춤하게 되었고, 또 하나의 극우가 등장한듯하여 걱정이 되었으며, 가사 하나하나 가슴에 꽂히는 노래를 부르던 사람이 ‘왜 그런 사이트에서 활동을 했을까?’라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동안 메갈리아를 잊고 지냈다. 내가 관여할 바 아니라 여겼다.

하지만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무관심했던 사건이 심각한 사회갈등의 표출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메갈이라는 이유로 직장을 잃는 여성이 생겼으며, 그 여성을 옹호하던 정당은 ‘남성’들의 뭇매를 맞고 어정쩡하게 입장을 바꾸다가 더 심한 비판을 받았다. 그리고 모 주간지는 나무위키 사이트의 메갈리아 항목에서 드러나는 남성들의 심성을 들여다 본 기사를 냈다가 많은 독자들이 구독을 끊는 사태에 직면하기도 하였다. 충격적이었다. 그 잡지는 꾸준히 진보적 시각을 견지하였으며, 독자들은 그러한 노력을 지지하기 위해 일부러 구독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보수를 두둔한 기사도 아닌 단순한 사실관계를 확인한 정도의 기사에 보인, 스스로 진보라 여길 독자들의 반응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노를 산 기사의 제목은 ‘정의의 파수꾼들?’이다. 기사의 요지는 나무위키의 메갈리아 항목을 분석하니 남성들의 심정은 ‘착한 또는 정의로운 나를 왜 공격하는가?’로 요약된다는 것이다. 화풀이를 하자니 두 가지 명분이 필요하다. 첫째는 메갈리아에서 제기되는 여성차별 및 혐오는 존재하지 않거나 과장되었으며, 둘째는 왜곡에 근거한 일반 남성에 대한 공격은 일베와 같은 악의적 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런 명분이 충족되면 메갈리아에 대한 공격은 정의를 수호하기 위한 행위로 포장될 수 있다.

당혹스럽다. 일부 몰지각한 사람의 편견이라고 애써 외면했던 주장들이 실제로는 언론, 정당, 기업을 압박할 정도로 사회 저변에 깔려 있는 일반적 인식일 수 있다는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든다. 메갈리아가 여성들의 일베라는 얘기를 처음 접했을 때 무관심했던 이유는 우리사회의 모순이 충분히 그런 대응을 일으킬 만 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정당에서 탈퇴하고 구독을 끊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소리나 지껄이는 꼴통이 아니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다고 성별에 따른 역할의 고착화나 편견을 지니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예전에 흡연하는 사람의 성별에 따라 드는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있다. 내 옆에서 담배 연기를 뿜는 사람은 짜증난다. 그런데 여성의 흡연을 보면서는 새삼스레 흠칫한다는 것을 알아챈 순간 내 의식 속에 잠재해 있는 끝 모를 성차별을 깨닫게 되었다. 생각이 유전되지는 않으니 필시 사회에서 형성되어 이식되었을 것이다. 이후로 의식하지 못했던 성차별을 깨닫게 되는 많은 경험을 하였다.

이런 얘기를 하면 “여성이 생리적으로 흡연에 취약하다.”는 식의 답변이 돌아오기도 한다. 여성흡연이 더 위험하니 당연히 더 끔찍하게 여겨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다. 하지만 차이가 보호의 이유가 될 수는 있어도 차별의 구실일 수는 없다. 이런 주장은 본질을 가리고 논점을 흐리는 물타기에 지나지 않는다.

얘기를 들어보면 성차별을 자아내는 사회구조가 여성들에게 끔찍한 공포를 안겨주고 있기도 하다. 외모가 품평되는 것은 다반사이고 혐오나 물리적인 성폭력의 대상이라는 공포를 일상적으로 안고 생활하는 고통은 남성으로서 가늠하기 어렵다. 메갈리아의 남성혐오로 인해 이런 공포를 느끼는 남성은 없을 것이다. 왜? 인정하든 안하든, 남성은 수천 년 동안, 그리고 여전히 우리사회의 강자이고 기득권이기 때문일 것이다.

페미니즘의 뜻을 알기 위해 이제야 사전을 뒤지고, 젠더 문제에 큰 관심이 없었던, 하지만 민주주의의 실현을 소망하는 40대 남성으로서 메갈리아의 티셔츠 문구로 쓰인 ‘GIRLS Do Not Need A PRINCE’는 매우 훌륭한 문구이다. 사람에 따라서 달리 읽힐 수 있겠으나 ‘PEOPLE Do Not Need A HERO’와 같은 말로 들리며, 주권재민을 환기시키는 좋은 구호로 여겨진다. 어떤 지점에서 분노를 촉발했는지 알지 못하겠다. 이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로 직장을 잃는 사태는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문구가 문제가 아니라 티셔츠의 판매수익이 메갈리아의 수많은 악행을 뒷받침하는 재원으로 쓰이는 것이 문제라 할지 모르겠으나, 남성혐오가 명예훼손이나 위협으로 느껴지지 않는데 딱히 반응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단순히 불쾌한 문제라면 기피하면 그만이다. 먼 훗날 남성혐오가 실질적인 위협이 되는 사회가 도래한다면 남성들의 권익을 위한 투쟁에 동참하여야 할지 모르지만, 지금은 분명히 아니다. 이 사안으로 탈당을 감행하고 절독을 하는 것은 스스로 이 사회의 주류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봉건적 모순의 일부라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 아닐까.

지금까지 큰 관심도 없었고,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를 다루는 것이 부담스럽지만, 애써 글로 담은 이유는 성차별에 대한 남성들의 둔감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이 아닐까라는 우려 때문이다. 그리고 당사자가 아니라는 핑계로 중립을 외치거나 무관심한 것 또한 사회모순을 키우는 악행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나는 정의롭다.’는 생각에 갇히지 말고 스스로를 돌아보고 핍박받는 약자 곁에 서야 할 때가 아닐까. 우리는 스스로 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하는 주권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