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펀치(518) 성과주의, 공공부문을 ‘망하게’ 하는 방법

By | 2018-06-29T17:02:50+00:00 2016.08.03.|

#1.

작년 초 모 대학 경영학과 교수와 담소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이런저런 얘기가 오가던 중 재밌는 농담을 들려주겠다면서 “잘 나가는 친구의 회사를 망하게 하려면 어찌 해야 할까요?”라면서 웃음기 띤 채로 묻기에 “어떻게 해야 되는데요?”라면서 호기심을 담아 되물었다. “경영컨설팅을 받으라고 제안하고 KPI를 도입하도록 하면 반쯤은 성공이죠.”라는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KPI(key performance indicators)는 2000년대 들어 우리나라 여기저기 퍼지기 시작한 목적경영(management by objectives; MBO)을 이루기 위한 방법론의 하나이다. 경영학에서는 ‘미래성과를 측정하기 위한 핵심지표들을 묶은 평가기준’이라 가르친다고 들었다.

목적경영은 피터 드러커가 1954년에 발표한 저서 <경영의 실제(The Practice of Management)>에 소개되면서 세간에 널리 알려지게 된 개념이다. 효율적인 경영을 위해서는 분명하고, 측정가능하며, 누구나 쉽게 동의하고 추구할 수 있는, 현실적인 목적을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는 성과경영(management by results; MBR)이라고도 불리는 듯하다.

경영학에서 일반화된 방법이 어떻게 기업을 망칠 수 있느냐고 물으니 “핵심성과지표는 계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다보니 일반인이 보기에도 우습기만 한 지표들이 버젓이 쓰인다. 예를 들어 보고서 작성 개수, 업무회의 진행 건수, 구매자 면담 건수 등이다. 이런 것이 진정한 성과가 아니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지 않겠나.”라는 답이 돌아왔다. 돈으로 환산하지 못하는 기업가치, 조직원 및 고객의 충성도 등이 지표로 표현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연이어 “더 심각한 문제는 핵심성과지표를 도입하는 순간 조직원 전체가 단기적인 성과만을 추구할 우려가 있다. 기업에서 내부평가는 1년 단위로 이뤄진다. 어떤 직원이 현재의 평가를 염두에 두지 않고 장기적인 목표에 매진하겠는가.”라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 기법을 고안했던 학자들조차 이런 한계를 인식하고 성과측정의 보조수단으로 사용할 것을 권장했는데 국내에 들어오면서 기업구조조정의 절대적 기준처럼 인식되고 있어서 우려스럽다는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이런 경영학계의 우려가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아 마냥 웃기만 할 수 없었다.

#2.

외환위기에서 막 벗어나기 시작한 2000년 무렵, 우리나라 행정 부문의 뜨거운 이슈는 기존의 ‘품목별 예산제도’를 ‘성과주의 예산제도’로 전환하는 예산체계의 혁신이었다. 품목별 예산제도는 예산과목을 장, 관, 항, 세항, 목으로 구별하고 이 중 목, 즉 비목 중심으로 예산을 편성하는 방식이다. 급여, 연금, 수당, 여비, 재료비, 공과금, 제수수료 등이 바로 비목에 해당한다.

품목별 예산제도에서는 각 부서별⋅품목별 예산이 결정되면 그것을 벗어나는 지출이 있는지 여부만 따지면 되므로 관리가 수월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그 부서에서 추진하는 여러 사업과 예산이 어떻게 연계되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달리 말하자면 예산서만 보고는 그 부서가 무슨 활동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

결국 품목별 예산제도에서는 어떤 사업에 얼마의 예산을 투입하여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판단할 근거가 없기 때문에 이전 연도에 예산이 얼마였으니 다음 연도에도 얼마를 배정한다는 식의 비합리적⋅비과학적 방식으로 예산이 수립될 수밖에 없다. 각 부서의 입장에서는 예산지출의 합법성만 지키면 사업성과에 대한 어떤 책임도 추궁당하지 않는다. 자칫 방만한 재정운영이 될 우려가 높을 수밖에 없다.

외환위기 와중에 IMF가 우리 정부에 요구한 것은 흑자재정, 즉 긴축재정이었다. 지출을 줄이라는 것이다. 결국 복지부동이라는 공공조직의 좋지 않은 이미지와 맞물려 여론도 예산제도를 혁신해야 된다는 주장에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성과주의 예산제도의 논의와 도입은 급물살을 타게 된다.

성과주의 예산제도는 예산을 기능⋅활동⋅사업계획에 근거를 두고 편성하고, 예산지출과 그에 따른 사업의 효과간의 관계를 분명히 하는 제도이다. 예를 들어 공공임대주택 확충사업에 얼마의 예산을 배정한다는 식으로 편성하고, 그에 따라 저소득층의 주거빈곤율이 얼마나 낮아졌는지를 효과로 측정한다는 식이다.

이런 예산제도를 운영하면 누구라도 예산서만 보고 공공기관이 어떤 사업을 중점적으로 추진하려는지 확인할 수 있다. 공공의 예산을 직접 감시하고자 하는 욕구를 지닌 시민단체들이 성과주의 예산제도를 반대할 이유가 없다.

의회 입장에서도 행정부가 어떤 사업을 명분으로 예산을 요구하는지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의원 스스로 밀어주고 싶은 사업에 신경 쓰기가 편하다. 의회도 성과주의 예산제도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당시도 그렇고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의 주류인 신자유주의 진영의 입장에서는 비효율성이 지배하던 공공부문에 효율성을 이식할 수 있는 성과주의의 전파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그들의 지상과제는 작은 정부이니 혹여 비효율적인 공공사업이 발견되기라도 하면 공공부문을 압박할 수 있는 얼마나 좋은 빌미이겠는가.

명칭에서도 알 수 있지만, 성과주의 예산제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과’를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공공부문 성과측정에 쓰이는 방법론이 바로 핵심성과지표이다. 최근에는 고객, 내부절차, 조직혁신, 재무 등의 관점을 반영하는 균형성과표(BSC; balanced scorecard) 방식과 연동되어 그럴듯하게 포장되어 있다.

그런데 수익을 내는 것이 기본 목적이라서 공공기관에 비해 비교적 목적설정이 수월한 민간경영에서도 핵심성과지표에 대한 반성과 우려가 높은데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공공정책 성과측정의 ‘핵심’으로 삼아도 괜찮을까?

의외로 핵심평가지표와 자신들의 사업이 궁합이 잘 맞는다고 여기는 부서도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주택재개발사업을 담당하는 부서라면 관련 정책에 따라 노후주택비율이 얼마나 줄고, 새로운 아파트가 얼마나 늘었다는 실적을 쉽게 자랑할 수도 있다. 하지만 주택재개발이 진행되는 동안 저렴한 안식처나 정들었던 마을을 잃은 힘없는 서민들의 고충은 측정되지 않는다.

교육이나 사회복지 영역에 핵심평가지표를 도입하는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관련 정책의 성과가 드러나기까지 짧게는 10여 년, 길게는 수십 년이 걸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1년 만에 효과를 낼 수 있는 교육정책이나 사회복지 정책이 존재하기는 할까?

물론 과거처럼 공공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제도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합리주의로 포장한 비합리적인 방식을 근거로 공공정책을 재단하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공공정책은 빈곤과 사회적 배제, 차별, 바른 교육, 자주적 시민의식, 풀뿌리 민주주의, 마을공동체, 지역의 역사성, 생태환경, 기후변화 등 숫자로 가늠하기 어렵거나 단기적인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무수한 사회적 요소와 연관되어 있다.

진정한 성과주의가 구현되려면 이러한 요소들을 종합적이고 장기적으로 가늠하기 위한 노력이 뒷받침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는다면 지난 10여 년간 공공부문을 휩쓴 성과주의 열풍이 행정혁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의도로 기획된 것이 아닐까라는 의심에 직면할 것이다.

혹시라도 혁신이나 선진화라는 미명하에 공공예산을 기득권세력에 유리한 쪽으로 돌린다거나, 공공영역을 쪼그라뜨리고 그에 따라 떨어져 나오는 공공서비스 영역을 거대자본의 돈벌이 수단으로 갈취하도록 기획된 거대 사기극은 아닌지 눈 크게 뜨고 지켜봐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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