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저 멀리서 한 남자가 걸어오는데 어딘가 이상하다. 한 쪽 팔을 머리 주변으로 휘휘 내저으며 계속 앞으로 걷는 모양을 보니 제정신인가 싶다. 한참을 그렇게 팔을 내저으며 이쪽으로 걸어오더니 탁! 하고 자기 목을 친다. 아, 벌에 쏘일까봐 팔을 내젓다가 결국 쏘인 거구나! 이제야 남자의 이상해보였던 행동이 이해가 된다. 어쨌든 나와는 관계가 없는 일이니까…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몰래 슬쩍 웃다가 고개를 돌리는데, 아차! 나도 벌에 쏘였다.

자크 타티 감독의 영화 ‘축제의 날’의 한 장면이 지금 한국을 사는 우리의 상황을 비유하기에 더없이 적절하다고 느낀다. 많은 노동자들이 일을 하다 죽고 그 책임을 노동자에게 개인에게 전가하는 모습을 반복해서 지켜보았던 우리는, 지난 5월 28일, 자기의 생일 하루 전에 일을 하던 중 사고를 당한 열아홉 살 청년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서 각별한 반응을 나타냈다. 그가 열아홉 살이었고 가방에서 컵라면이 나왔기 때문이라고들 하지만 단지 그것이 이유였다면 이처럼 비통해하고 분노할 수 있었을까! 일을 하다 백혈병에 걸리는 이가 있어도, ‘계속 일 하고 싶다’고 싸우다 좌절하여 자살을 하는 이가 있어도 한국인들은 참 담담했다. 그러다 우리의 미래를 가두고 거꾸로 수몰되는 배를 생중계로 지켜보게 되었고, 이번에는 우리가 타고 다니는 배가 또 하나의 미래를 뭉개는 걸 보았다. 쏘이는 걸 보고 고개를 돌리다 결국 쏘인 기분이다. 이제 어떤 벌이 그들을 쏘고 우리도 쏘았는지 알아봐야 할 때이다.

지난 5월 28일의 사고를 많은 이들이 청년의 문제로 보았던 까닭은 피해자가 ‘하필 우연히 청년’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청년이기에 당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모기에 잘 물린다고 하면 간혹 혈액형이 어떻게 되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특정 혈액형이 모기에 더 잘 물린다는 그들의 생각처럼, 청년은 모순이 집약된 시스템이라는 벌레의 희생양이 되기 쉬운 집단이라고 하면 이해가 될까?

 

청년,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다

그림1은 연령별 평균 시간당 정액급여를 나타낸 그래프이다. 시간당 정액급여란 월급여를 총 노동시간으로 나눈 것이 아니라 근로계약 할 때 약속한 기본급과 고정적 수당의 합인 정액급여를 소정 노동시간으로 나누어 계산한 것이다. 주 15시간 이상 일하며 만근한 노동자에게 하루치 유급휴일을 부여하도록 하는 주휴수당을 고려하여 계산한 경우와 고려하지 않고 단순하게 계산한 경우를 모두 나타냈는데, 평균적으로 주휴수당을 고려하여 제대로 된 시간당 정액급여를 계산하면 15%정도 더 낮게 계산된다. 주휴수당을 계산하여 15% 더 낮게 도출된 시간당 정액급여가 실제에 더 가깝다. 그렇지만 어느 경우이든지 우리 사회의 임금구조의 가장 아래쪽을 받치고 있는 집단은 나이가 어린 청년임을 알 수 있다. 55세를 지나면 이 임금곡선은 급격히 하락하는 듯 보이지만, 고령자 임금이 아무리 낮아도 평균적으로는 청년의 임금이 더 낮다. 65세 이후 평탄구간의 임금 수준을 기준으로 하면, 25세 미만 청년 집단이 한국 임금구조의 가장 밑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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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믿기지 않는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한국은 노인빈곤이 OECD 국가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나라라는데 이대로라면 청년의 삶은 그보다 덜 팍팍하지 않다. 청년들에게 당신들의 눈이 높은 게 문제이니 눈을 낮춰 취업문을 두드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얼마나 더 낮추란 말인가?

 

생애주기별 임금구조와 그에 따른 소득-소비패턴

65세 이상 노인에 비해 25세 미만 청년의 평균 임금 수준이 낮게 나타나는 이유는 그림2에서 보듯이 노인의 임금구조의 폭이 더 넓게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노인 중에는 높은 임금을 받는 사람들도 있지만 청년들은 너나할 것 없이 낮은 수준에 쏠려있다. 낮은 임금을 받게 만드는 청년의 특성이라도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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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세 미만의 청년 노동자들이 주로 종사하는 일자리와 65세 이상 노인 노동자들이 주로 종사하는 일자리는 상이하다. 단, 표2의 노인 일자리 지도에서 나타냈듯이 노인 노동자는 단순노무직에 심각하게 편중되어 있고, 청년 노동자는 서비스직, 특히 숙박음식점업에 종사하는 서비스직 일자리에 집중된 것으로 보인다(표1 참조). 그리고 표3의 일자리 임금 지도에서 보듯이 두 직종의 임금이 가장 낮다. 즉, 서비스직이나 단순노무직은 임금구조의 가장 밑을 받치고 있다. 두 일자리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숙련이 적게 필요하므로 다른 노동력으로 쉽게 대체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점이고, 차이점은 최종 서비스의 구매자 입장에서 서비스직이 가시적인 노동이라면 단순노무직은 대개 비가시적이라는 점이리라. 게다가 청년의 젊음은 그들이 높은 수준의 숙련을 쌓고 노동시장에 나온 것이 아님을 드러낸다.

임금구조의 가장 아래를 받치고 일하면서도 청년들이 노동시장에 참가하여 얻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청년들이 자신의 노동으로부터 인간다운 삶, 생활이 더 나아질 가능성을 기대하지 않게 된다면, ‘무조건 도전하라’, ‘일단 눈을 낮추고 입직하라’라는 조언을 한들 소용이 없을 것이다. 차라리 노동시장 바깥에 남는 선택이 합리적일 수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청년들이 자신의 노동으로 얻는 대가는 단지 생존하는 것 이상이어야 하고, 더 나은 생활을 꿈꾸기에 충분해야 한다. 그러나 혹시 우리 사회는 이러한 청년들의 꿈을 이용하고 있기만 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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