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펀치 (514) 위험의 외주화 속, 운 좋게 살아남은 오늘

By | 2016-07-06T10:41:07+00:00 2016.07.06.|

광고판 뒤에 가려진 죽음

지난주 SBS의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5월 28일에 발생한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를 다루었다. 그 사고가 난 지 불과 며칠 전에 구의역에 다녀왔던 터라 뉴스매체를 통해 사고 소식을 접하고 굉장히 놀랐던 기억이 난다. 심지어 사고의 피해자가 19살, 소년과 청년의 언저리에 있는 하청업체 직원임을 알고는 청년 노동문제를 작년부터 집중해서 다루었던 입장에서 더욱 감정이입이 되어 분한 마음이 일었다.

그러나 슬프고 분한 것이 지나고 나자 묘한 기시감이 들며 몇 년 전에도 이런 사고가 있지 않았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바로 2013년 성수역 사고와 2015년 강남역 사고이다.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이 세 건의 2호선 스크린도어에서 발생한 사고를 모두 다루며 왜 같은 사고로 희생자가 지속해서 발생하는지에 대해 상세히 전하였다.

방송에서 지적한 부분은 크게 3가지였다. 첫 째, 비현실적인 안전규칙과 노동자에게 위험한 작업장 환경. 둘 째, 부실 공사 및 기계의 예민함으로 잦은 고장이 지속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개선되지 않는 안전문제. 셋 째, 위험과 책임을 하청업체에 떠맡겨 원청이 갖는 적은 책임, 비용절감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안전에 대한 투자의 절대적 부족.

이익과 비용절감에만 집중된 구조 아래에서 안전문제는 중요시 되지 않았다. 원청이 외면하는 구조 속에는 살아있는 노동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생명은 고스란히 위험에 노출되었다.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은 이 위험은 예방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각 지하철역마다 스크린도어에 대형 광고판이 설치되어 있는데, 사실 그 뒤에는 도어 센서가 부착되어 있었다. 센서에 이상이 생겼을 경우 광고판이 없는 방향은 플랫폼에서 문을 열어 작업이 가능하나, 광고판이 있는 쪽은 고장이 생기면 지하철이 들어오는 선로 내부로 들어가서 작업을 해야 했던 것이다. 그 센서를 관리하는 업체는 대부분이 서울 메트로가 아닌 하청업체였고, 선로 내부로 들어가는 기술자는 하청업체에서 파견 나온 노동자였다.

세 건의 사고 모두 광고판이 있는 쪽에서 작업을 하다가 발생하였다. 사고 이후 과중한 업무 부담으로 끼니도 챙겨먹기 힘든 작업 환경과 지하철이 증량되어 오고 있는 상황도 모른 채 일해야 했던 직원들의 상황이 부각되었다. 지하철에 고장이 생기자 주말임에도 달려와 자기 일에 책임을 다했던 세 노동자를 떠나보내고 나서야, 이러한 문제점들은 부각되었다.

비정규직이 가진 고용위험, 그리고 생명위험

작년 6월 한국동사회연구소의 노동포럼에서 일본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 상황과 과제에 대하여 일본의 전문가를 초빙하여 직접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포럼은 일본의 사례를 통해 하청관계가 갖는 문제의 심각성을 알려 주었다. 일본에서 하청업체의 관리의 문제가 제기되었던 사건은 후지미시 공공 수영장에서 벌어진 어린이 익사 사고였었다.

위 수영장은 공공수영장이었으나 반복되는 위탁계약과 치열한 가격경쟁 속에서 가장 낮은 임금을 제시한 업체를 선발한 것이 가져온 참사였다. 당시 담당 업체는 낙찰 된 가격으로는 운영 및 안전에 충분히 투자를 할 수 없었기에 자격이 되지 않은 고등학생을 안전요원으로 고용하였다. 안전과 관련된 교육은 없었고 노동자는 아니었지만 이용자의 사망사고가 발생하고야 말았다. 안전에 대한 투자와 교육이 없는 것은 노동자의 목숨도 위협하지만 이용자 및 사회구성원의 생명도 위험하게 할 수 있다.

김군 방지법, 구의역 방지법

작업장에서의 안전사고는 하청업체 소속의 파견 노동자들에게 제일 많이 발생한다.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고 도망가듯 원청업체는 하청업체의 관리부실이나 노동자의 과실로 책임을 묻고, 안전장치 미비로 인한 사고에 어느 정도의 벌금을 내는 것 외에는 큰 부담을 갖지 않는다. 사고를 낸 하청업체와 계약관계를 해지하거나 문제가 될 만한 직원을 해고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험한 작업장에서의 노동에는 사회 및 노동시장 취약계층이 깊숙이 들어와 있다. 봄이 오면 길가에 무수히 심어진 꽃들은 고령자 및 취약계층의 고용증진을 위해 지자체에서 고용해 ‘눈에 띄는 형광색 조끼’ 한 벌만을 안전수단으로 주고 심어진 꽃들이다. 여름이 되어 보기 좋게 정돈된 길가의 가로수도 마찬가지로 관리 업체에 고용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근처 전깃줄의 단선 없이 진행한 위험천만한 가지치기의 결과이다. 우리는 이렇듯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의 결과물들 곁에서 생활하는 것이다.

비용 절감과 이익 중심이라는 무서운 괴물들은 그 어떤 안전 상황도 개선하지 않은 채, 위험을 숨기고 몸집을 키워 노동자를 해쳤다. 오늘 날 우리는 불안정노동과 파견노동이 범람하는 현실를 무시할 수 없는 사회에 서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생명을 잃을 정도의 위험은 자신의 곁에 오지 않을 것으로 여긴다. 우리를 지키기 위한 스크린도어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갈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안전요원이 있으므로 큰 사고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어쩌면 우리 노동자 혹은 이용자들은 코앞까지 다가온 위험을 인지하지 못한 채로 매일 ‘운 좋게 살아 남은 것’ 일지도 모른다.

안전은 결코 개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개인의 부주의도 대부분 과중한 업무로 인한 과로로 인지능력이 떨어져 발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한 파견업체 노동자에게 작업장에 대한 위험요소에 대해 세세히 가르쳐 주는 곳은 거의 없다. 실제로 효용성이 있는 사고 방지법, 일명 ‘김군 방지법, 구의역 방지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다. 김군이 겪은 비참한 사고는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었던 사고임을 사회적으로 인지한 움직임이라고 생각한다. 단 하루짜리 아르바이트를 해도 안전을 숙지하고 일 할 수 있는 사회를 희망해 본다.

   댓글을 달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