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공원이라고 번역되는 영어 단어 파크(park)는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말 그대로 공원을 뜻하기도 하고, 스포츠 경기장을 뜻하기도 하며, 주차장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 인식으로 전혀 관계가 없을 듯한 위 개념들을 하나의 단어로 뭉뚱그릴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파크의 어원을 찾아 거슬러 오르면 고대 프랑스어 파르크(parc)를 거쳐 후기 라틴어 파리쿠스(parricus)를 만나게 된다. 이 단어들의 어원은 고대 서부 게르만어인 파룩(parruk)이다. 파룩은 울타리 등의 경계로 둘러싸인 공간을 뜻하는데, 특히 말들을 묶어 두던 장소를 의미한다. 이런 의미가 현대로 이어져 주차장을 뜻하기도 하고, 관중석으로 둘러싸인 운동장을 뜻하기도 하는 단어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파크가 왜 공원을 뜻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 공원의 유래를 조금 엿볼 필요가 있다.

서구의 공원은 중세 영국 왕족 등 귀족들의 사냥터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우세하다. 사슴, 토끼, 여우 등 사냥감을 넓은 울타리에 가두어 사냥을 즐길 수 있도록 조성된 공간을 헌팅 파크(hunting park)라고 불렀는데, 울타리로 감싼 공간이기에 파크라 부르는 것이 당연했을 것이다. 런던의 유명한 하이드 파크는 1536년 헨리8세가 사냥터로 만든 곳이다.

당시에는 귀족의 영지이기도 했거니와 계급이 유별했기 때문에 일반인의 출입은 제한되었다. 그러다가 근대로 넘어오면서 도시가 확대되어 여러 헌팅 파크 주변이 시가지로 개발되기 시작했고, 동시에 시민권이 성장하면서 일반에게 넓은 사냥터를 개방하여 공공공간(public space)으로 이용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현대적 공원의 시초이다. 즉 헌팅 파크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공공간이 된 시대상황에 따라 파크에 공원이라는 개념이 포함된 것이다. 지금이야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이용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도시공원의 등장은 앙시앵 레짐의 붕괴와 현대 민주사회의 도래를 상징한다.

19세기, 급속한 산업화와 인구성장으로 인한 극악한 도시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서구에서는 도시 안에 크고 작은 공원들을 배치하였다. 뉴욕의 사례를 살펴보면 1821년에서 1855년 사이 인구가 네 배 이상 증가하였는데, 덕분에 시민들은 극심한 공해에 시달리게 되었으나 이를 완화할 오픈스페이스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이에 시민들은 쾌적한 여가공간의 확충을 요구하였고 시당국은 1857년 315ha 규모의 공원을 조성하였는데 이것이 뉴욕 맨해튼의 센트럴 파크의 시초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현재 자유공원으로 명칭이 바뀐 만국공원이 1880년대에 인천 조계지를 차지하고 있던 열강들에 의해 건설되었다. 우리 정부에 의해 계획되고 설치된 최초의 공원은 1897년 옛 원각사 터에 건설된 탑골공원이다. 비록 공원 본연의 기능과 공공적 필요성이 아니라 신문물 도입의 일환으로 조성되었지만, 탑골공원이 1919년 3.1운동 당시 만세운동의 발상지가 되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공원과 민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듯하다. 사람들을 모으는 공공공간의 의의일 것이다.

루카이투-시데리스와 바너지(A. Loukaitou-Sideris & T. Banerjee)는 공저 「어번 디자인 다운타운(Urban Design Downtown)」에서 공원 등 공공공간을 포함한 공공영역(public realm)의 기능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첫째, 정치적 활동과 정치적 표현을 위한 포럼의 기능이며, 둘째, 시민이 서로 융화되는 사회의 상호작용과 의사소통을 위한 중립 또는 공동의 장으로서의 기능이며, 셋째, 사회적 학습, 개인의 발전 그리고 정보 교류를 위한 활동 무대로서의 기능이다.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로부터 쭉 이어져온 이런 해석에 대해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이런 기능을 하는 공공공간이 실제로 있기는 한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겠으나, 카모나(M. Carmona)를 비롯한 「도시설계: 장소 만들기의 여섯 차원(Public Places-Urban Spaces: The Dimensions of Urban Design)」의 저자들의 말을 빌리자면 “실제 공공영역이 이상적인 상태에 비해 얼마나 부족한지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겠다.

현대 도시계획에서 공원의 배치는 필수 요소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광역자치단체장은 10년 단위로 공원녹지기본계획을 수립하여 공원의 확충을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 도시지역 안에는 1인당 6㎡ 이상의 도시공원을 확보해야 하며, 구릉지 등 녹지지역을 제외한 도시공원이 1인당 3㎡ 이상이 되도록 관련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으로 인해 점차 도시공원이 늘어나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는, 법적기준은 충족할지 모르나, 주민들이 느끼는 공원의 양과 질은 절대부족인 상황이다.

우리 연구원 근처에는 예전 경의선 철로를 지하화하면서 공터로 남겨진 부지를 공원으로 조성한 경의선숲길공원이 있다. 동쪽의 용산문화체육센터(효창역 부근)에서 서쪽의 홍제천(가좌역 부근)까지 총 연장 6.3km, 폭 10~60m의 멋진 도시공원이 조성되었다. 전체 구간이 쭉 연결되었다면 더할 나위 없는 명소가 되었을 텐데, 공덕역 주변 등 일부 구간이 도시개발이나 넓은 차도로 인해 단절되어 매우 아쉽다.

점심을 먹고 대흥역에서 공덕역까지 경의선숲길공원을 따라 산책을 하곤 하는데, 햇볕이 따가운 한낮임에도 많은 주민들이 동료들과 담소를 나누거나, 유모차를 끌거나, 반려동물을 데리고 여유롭게 공원을 거니는 것을 볼 수 있다. 좀 늦은 시간 퇴근을 하면 대흥역에서 서강대역 방향으로 최근에 공사가 마무리된 숲길구간을 이용하게 된다. 얼마 전까지 밤에는 으슥하여 긴장한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이 간간히 보일 뿐이던 골목길이었는데, 지금은 밤이 깊도록 마실 나온 주민들로 가득하다. 웃음을 머금고 동행과 담소를 나누며 숲길공원을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기도 하고, 괜스레 도시계획 전공자인 것이 뿌듯해 우쭐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예전 같으면 경의선 부지에 들어서는 것이 공원이 아니라 빽빽한 빌딩이었을지도 모른다. 경의선의 원래 폭이 지금의 서너 배였다면 지금 쯤 공덕에서 서강대까지 아파트가 줄지어 선 살풍경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하겠다는 정부정책에 별다른 비판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숨통을 틔울 공공장소를 조성하기보다 고밀도의 도시개발이 우선할 위험은 언제나 존재한다. 개발이 더 경제스럽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개발은 그것을 통해 이득을 본 사람만 미소 짓게 할 뿐이다. 경의선숲길공원을 이용하는 수십 만 명의 미소와 비교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들은 땅을 뺏으려고 이웃 땅의 경계표를 옮기고…가난한 자를 길에서 몰아내고, 외로운 이들을 짓밟으려고 음모를 꾸민다. 남의 밭에서 곡식을 거두고, 주인에게서 빼앗은 포도밭을 수확하며…성에서는 사람들이 부르짖고 병든 이들이 신음한다.…” 시카고의 절망적인 도시환경을 보면서 제인 제이콥스가 인용한 욥의 절규를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를 보면서는 떠올리지 않도록 우리 스스로 경계와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옛 경의선 선로에 가득한 웃음꽃을 보면서,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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