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寓話)

나랏님이 ‘갑’에게 “이곳에서 ‘을’들에게 편한 쉼터를 제공하여라.”라며 독점권을 주었다. ‘갑’은 ‘을’들에게 쉼터를 제공하며 값을 높게 받았다. 독점이라 눈치를 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구실 저 구실을 대며 점점 값을 높이니 ‘을’들이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갑’이 너무 값을 높게 부르니 살 수가 없소. 제발 적당히 하도록 말려주시오.”라고 ‘을’들이 나랏님에게 고하니, 나랏님이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하니 방책을 강구함이 어떠한가?”라고 ‘갑’에게 말하였다. ‘갑’이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말씀을 듣자오니 ‘을’들의 어려움이 큰 거 같사옵니다. 하오니 저에게 거두는 세금을 낮추어주시고 땅을 좀 더 내어 주시면 값을 낮추는 것을 고려해 보겠나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실화 1

2015년 3월 4일 국회의원 10인이 ‘조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제안하였다. 제안이유는 “현행 「조세특례제한법」은 기숙사를 건립할 경우 국립대학 기숙사는 2015년 12월 31일까지 공급하는 것에만 한정하여 부가가치세 영세율을 적용하고 있으며, 행복기숙사는 2014년 12월 31일까지 실시협약이 체결된 사업에만 한정하여 부가가치세가 면세됨에 따라, 동 조항이 일몰될 경우 민간투자사업 방식으로 건립된 기숙사는 기숙사비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었다.

부가가치세는 소비자가 부담하는 간접세이므로 면세가 되거나 감면되면 일반적으로 소비자에게 이득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기숙사의 공급에 있어서 소비자는 학생들이 아니라 사학재단이나 국⋅공립대학이며 건설업체나 민간운영업체가 공급자이다. 원래 공공의 영역인 교육시설의 건설과 운영을 민간사업자에게 위탁하여 공급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부가가치세를 부담하는 것은 사학재단이나 국⋅공립대학이다.

애초에 기숙사뿐만 아니라 공공기능인 교육서비스에는 부가가치세를 면세하므로 학생들은 기숙사를 이용할 때 부가가치세를 부담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위 제안이유를 보면 “(면세가 안 되면) 민간투자사업 방식으로 건립된 기숙사는 기숙사비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궤변을 펼치고 있다. 자신들이 부담해야 할 것을 학생들에게 떠넘기려는 위법을 천연덕스레 드러내는 셈이다.

설령 기숙사를 건설하거나 운영하는 과정에서 사학재단이 부가가치세를 부담한다고 하여 학생들에게 그것을 부담시킬 수 없다. 입법부를 이루는 국회의원들이 이런 기본적인 규정조차 무시하고 보호해야 할 학생들이 아닌 사학재단의 이익만을 대변하려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실화 2

2012년 8월 3일 국회의원 10인이 ‘한국장학재단 설립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제안하였다. 제안이유는 “… 비용이 적게 드는 기숙사를 공급하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이나 … 땅값(이) 높아 … 건립에 어려움이 많다. 기숙사현행법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국유재산이나 공유재산을 한국장학재단에 무상으로 대부하거나 사용⋅수익하게 하고 있으나, 기숙사 설립을 위한 부지확보를 위해서는 국유재산이나 공유재산을 무상으로 양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장학재단은 법률에 따라 설치되는 공공기관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국⋅공유재산을 무상으로 양여하는 것에 대해 검토해볼 수는 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현 규정으로도 무상으로 대부가 가능하므로 구태여 양여가 필요하지는 않다. 오히려 한국장학재단의 기숙사 부지에 대한 무상양여가 도입될 경우 나중에는 사학재단에 대해서도 무상양여를 해달라는 주장이 있지는 않을지 우려스럽다.

위 제안이유에서 드러나는 또 다른 문제점은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기숙사가 비싸다.’는 잘못된 인식이다. 기숙사의 이용료가 천정부지로 치솟은 이유는 이미 많이 알려진 바와 같이 기숙사를 민자유치방식으로 짓기 때문이다. 민간자본이 투자를 하는 이유는 이윤이다. 몇 %의 투자이익이 남는가가 투자 여부를 결정한다. 공공이나 대학에서 직접 지을 때는 고려할 필요가 없는 이윤이 끼어드니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

그나마 과거에는 민자유치에 대한 투자위험을 투자자가 어느 정도 부담하였으나 최근에는 BTL(build-transfer-lease)방식이 도입되면서 투자자의 이익을 가능한 한 보장해주고 있다. 과거 많이 쓰인 BTO(build-transfer-operate)방식에서는 시설 건설 후 공공에게 소유권을 이전한 후 투자자가 일정기간 운영권을 획득하여 그 기간 동안 자기책임으로 운영하면서 건설비를 회수하였지만, BTL방식에서는 시설 건설 후 소유권은 공공이 가지지만 일정기간 동안의 시설사용⋅수익권을 투자자가 가지면서 그 기간 동안 시설을 공공에 임대한다. 공공이 소유권을 지니면서도 그 것을 다시 빌리는 기형적인 구조인데, 공공이 일정 기간 동안 꼬박꼬박 투자자에게 임대료를 지불하므로 투자위험이 전혀 없다.

사학재단이 BTL에 따라 투자자에게 지불을 약속한 비싼 임대료 때문에 기숙사 이용료를 높게 책정한 것이 학생들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원인이다. 이런 부조리를 위 법안의 제안자들은 당연시하고 있는 것 같다. 교육기관은 비영리로 운영되어야 하며, 교육은 이윤이 목적일 수 없다. 이 간단한 이치를 사학재단, 국회의원, 민자사업에 혈안이 된 일부 공무원들이 외면하고 있으니 개탄스럽다.

 

실화 3

2014년 3월 18일 12인의 국회의원은 ‘사립학교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제안하였다. 제안이유는 “4년제 사립대의 건축적립금은 3조6,556억 원에 달하나, 대학들은 기숙사를 확대하려는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①학생의 기숙사수용률이 100분의 25 미만인 대학은 건축적립금을 추가로 적립하거나, 기숙사 등 학생주거시설을 제외한 시설의 신축·증축을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②교육부장관은 학교법인의 재정상태, 교육여건 및 학생복지 등을 감안하여 적립금의 적립여부·적립규모 및 적립기간 등에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앞의 두 안에 비해서 훨씬 논리적이고 실제로 학생들의 부담을 줄여줄 이 개정안은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남은 이야기

위에 등장하는 국회의원 중 어떤 이들이 이 나라에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될까? 실화1과 실화2의 대표제안자들은 장관을 역임하였고 대통령의 오른팔이라는 한 분은 이번 총선에서도 이변이 없는 한 당선이 확실시 된다. 실화3의 제안자들 중 많은 사람은 경선에서 떨어지거나 공천을 받지 못하여 다음 국회에서는 보기 어려울 것 같다.

당원이 아니라서 각 정당 내부의 사정을 잘 모르니 참견하기는 어려우나, 위와 같은 구체적 입법 활동을 근거로 후보도 뽑고 투표도 할 수 있어야 민주정치가 아닐까. 정치가 보이지 않아서 답답하니 제발, 어찌하면 좋을지 주권자에게 제대로 물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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