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나 시의 힘을 빌리지 않고 지역 안에서 활동하는 단체와 주민들이 스스로의 고민거리를 하나씩 들고 이야기하는 판이 벌어져 눈길을 끈다. 최근에 마포 지역의 활동과 지역 현안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2015년 마포 로컬리스트 컨퍼런스’가 열렸다. 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마포구에서 활동하는 54개 단체와 단체 안팎에서 활동하는 95명이 마음과 돈과 시간과 장소를 내어 전체 27개의 주제로, 진지한 동네잔치가 여기저기에서 벌어졌다. 이야깃거리도 생활기술, 문화예술지원, 지역공유지, 민관협력, 경의선숲길, 망원시장, 마을교육플랫폼, 석유비축기지, 마을공화국, 소통과 갈등, 공동체경제, 돌봄, 베이비부머 세대, 빈곤, 동 주민센터, 에너지자립마을 등 어디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이 시대 화두들이다.

마포 지역의 활동과 이에 대한 평가도 주민들의 경험에 의존하다 보니 한계가 있을 법도 하다. 그럼에도 마을 안에서는 개인들의 ‘주관적’인 평가나 역사도 소중한 자원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정부가 밀어붙이는 국정화 교과서의 논리가 좌파들이 쓴 ‘주관적’ 역사라고 꼬집는 문제와 겹쳐지면서, 마을의 지혜가 눈에 띄었다.

지역 자원들과 어떻게 연대할까?

“지역사회와 로컬리티-우리는 마포에서 무엇을 하려 하는가” 심포지움으로 마포 컨퍼런스의 첫 포문을 열었다. 마포지역 활동에 대해서 스스로가 주는 점수는 다소 박했다. 마포구에 많은 단체와 사람들이 활동하지만 정작 이들을 엮는 네트워크나 사업이 지지부진한데 따른 답답함을 호소했다.

사실 외부자의 시선으로 보면, 마포구는 성미산마을을 위시한 마을공동체의 으뜸 사례로 손 꼽히는 곳 중 하나다. 2000년대 초부터 성미산마을을 중심으로 공동육아가 시작되고, 동네 주민들이 나서서 성미산 지키기 운동을 벌이는가 하면, 자발적인 정치참여의 통로로 마포연대를 결성하기도 했다. 진보정당이 분열된 직후에도 마포구에 공동선거운동본부를 꾸려 당파를 떠나 공동후보를 내는 정치 실험도 이어갔다. 그리고 마포연대가 해산된 후 그 공백을 민중의집이 채워가면서, 이전과 다른 방식의 문화연대와 지역 현안에도 공동대응하며, 생협 등 거점 공간을 활용한 생활형 커뮤니티도 확대되었다(“2015년 마포 로컬리스트 컨퍼런스” 자료집, 2015). 그야말로 주민 주도형 자치가 15년의 역사 안에서 실험되고 만들어진 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결코 짧지 않은 풀뿌리 역사 안에서 마포 지역은 큰 현안들로 여러 차례 주목을 받기도 했다. 2001년 성미산 지키기운동-2009년 홍대 두리반 철거 반대 문화예술인 결집-2010년 마포지역 선거 공동대응-2013년 마을공동체와 사회적경제 생태계 조성-2015년 젠트리피케이션 공동대응 등의 지역 현안에 머리를 맞대며 같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 과정에서 마포구 풀뿌리 활동의 저력은 켜켜이 쌓이고 있다.

로컬리티(locality)’의 힘

지역 활동으로 관계 맺은 사람들을 아우를 말이 없을까 고심하다 ‘로컬리스트’란 용어를 차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현실에서는 기존의 풀뿌리운동이나 공동체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지역 활동과 사람들이 생겨나 고민하던 중 미국의 ‘Be a localist!(로컬리스트가 되자)’ 캠페인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 컨퍼런스에 내건 로컬리티, 로컬리스트 등의 외래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로컬리티를 주제로 인문학 연구를 10여년 지속한 차철욱 교수도 ‘로컬리티’ 개념에 대한 합의를 이뤄내지 못했다고 한다. 연구자의 머리카락이 빠질 정도로 다양했다고 하니, 어쩌면 지역의 대표 개념으로 합의하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차 교수는 ‘로컬리티’의 유용성을 거든다. 그는 중앙과 지방 혹은 지역이라는 수직적 위계 구도와 다르게 ‘로컬리티’는 과거와 현재로 이어지는 삶터로써 지역과 그 안의 사람들의 경험과 기억, 가치를 찾아주는 데 유용하다고 밝혔다.

마포 지역 내 활동가들의 이러저러한 고민도 ‘지역’에 천착해 있기는 마찬가지다. 지역은 각자의 활동무대이자, 발 딛고 사는 삶터이자, 관계망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 안에서 스스로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할 재주는 있는지, 먹고 살 수는 있을지를 고민하며 지속가능한 사회의 크고 작은 실험들을 펼쳐야 한다는 무게감마저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높은 임대료와 치솟는 전세가로 떠돌아다녀야 하는 사람들에게 ‘지역’이라는 공간의 의미는 점점 흐릿해져가고 있다. 그러나 크지도 않은 구 단위 지역에서 주민들이 주도한 이번 공론장은 나와 우리의 요구를 말하고 해결할 수 있는 ‘장’으로서, 지역의 필요성에 다시금 눈뜨게 하는 중요한 시도였음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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