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외환은행을 인수, 매각한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한국정부를 상대로 5조원 대 국가 소송을 제기했다. 이미 막대한 차익을 남긴 론스타가 상당한 액수의 손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한미FTA 협상 과정에서 최대 쟁점이 된 바 있는 투자자-국가-소송(ISD) 중재의 첫 사례가 되는 것이다.

소송의 결과에 대한 예상은 일단 미루어 두고 풍경을 스케치해 보자. 그 속에서 ISD가 갖는 위력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왜 한국이 아니라 워싱턴에서 열리는가?

이미 알려진대로 이번 소송은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가 위치한 워싱턴에서 이루어진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한국 법원의 관할권은 전혀 미치지 못한다. ISD 중재는 개별 국가의 법률이 아니라 국제투자협정-이번 경우에는 한.벨기에 투자협정-에의 적용 및 해석을 기준으로 하고 사법부가 아니라 세계은행의 관할 하에 단심으로 이루어진다. 한미FTA 체결을 반대하는 입장에서 법률과 헌법을 뛰어넘는 ‘초헌법’이 될 것이라고 본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14년에도 전 세계적으로 국제투자협정(IIA)은 광범위하게 체결되었다. 한-호주 자유무역협정(FTA)를 포함하여 전 세계적으로 총 27개의 국제투자협정이 체결되었는데 2주에 한 개 꼴이 된다. 이로써 전 세계적으로 국제투자협정은 총 3,268개에 이르게 되었다. 지금까지 107개의 IIA를 체결한 우리나라는 앞으로 점점 더 많은 ISD 소송에 휘말리게 될 것이다.

이번 소송에는 금융계의 내노라하는 전.현직 고위 공무원들이 워싱턴에 대거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 법정 앞에 서 있는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이미지는 상당히 나쁘다. 한 국가를 대표하여 각종 국제 행사에 참석했을 만한 이들이 ICSID 앞에서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모습은 자괴감을 느끼게 한다.

 

둘째, 국가의 독점적 권한이 민사소송의 대상이 된다?

이번 소송에서 론스타가 주장하는 것의 핵심은 한국정부가 매각과 관련한 승인을 늦춤으로써 손해를 입혔다는 것이다. 한미FTA 협상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ISD가 개별 기업의 이익에 반하는 공공정책의 추진을 막아 사회 전체의 이익을 후퇴시키는 해악을 가져올 수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론스타의 주장은 국가의 고유한 규제권한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UN의 보고서에 따르면 투자자 제소의 가장 빈번한 두 가지 유형은 ① 국가의 IIA 위반, 취소 유형과 ② 면허의 취소 또는 거부 유형에 따른 것이다. 이번 론스타 소송은 협정 자체의 위반유형이라기 보다는 두 번째 면허 규제에 관련된 유형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보통 국민들이 일상에서 만나는 면허 규제의 모습에는 국가의 행정권이 폭넓은 재량 범위를 갖는 것으로 보인다. 비록 관료 편의주의로 보이기에 충분할 정도의 행태가 종종 나타난다 하더라도 국가가 독점한 규제 권한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재량 범위가 축소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데 이번 론스타 소송이 우리에게 불리한 결과를 낳게 된다면 면허를 승인하고 취소하는 국가의 독점적 권한이 다국적 자본 앞에서 작아지는 선례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5조원 대에 이르는 막대한 금액 못지않게 이러한 선례가 남길 후유증도 막대할 것이다.

2014년에 전 세계적으로 시작된 투자자 제소 건수는 42 건이며, 그 전 해인 2013년에 59 건을 기록하는 등 점차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급증하는 소송 상황에서 우려할 만한 선례는 점점 더 많아질 것이 분명하다.

 

그림 1. 확인된(known) 투자자 국가 제소 소송 연도별 건수, 누적 건수 추이 (1987-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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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왜 이렇게 비밀스러운 게 많은 것일까?

먼저, 이번 소송의 주체인 론스타의 국적이 애매하다. 론스타는 미국계 사모펀드(private fund)로써 자금을 운영하는 주체이며 원래 주인인 소수의 개인 투자자는 누구인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국내에서 활약하는 많은 외국계 사모펀드들의 실제 투자자가 한국계인 것으로 의심하고 이를 두고 ‘검은 머리의 외국인’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론스타는 아직까지 미국계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론스타는 미국계인데도 불구하고 특이하게 벨기에에 소재하고 있다. 벨기에는 법인세율이 미국보다 월등히 낮은 ‘조세피난처’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또한 론스타의 자본 성격이 애매하다. 론스타는 산업자본인가, 금융자본인가, 아니면 단지 투기꾼일 뿐인가? 언론에서는 국내 전문가들 가운데 론스타가 산업자본이었던 적이 있었음을 지적하면서 이번 소송에서 국내법 상의 금융-산업자본 분리 문제를 쟁점화시켜야 승소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다만 이 경우 한국 정부가 외한은행 매입 자체를 승인하지 않았어야 하기 때문에 ‘자기 실수를 인정해야 하는 딜레마’가 발생한다. 어쨌든 론스타 입장에서는 스스로가 산업자본인지, 금융자본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많은 이익을 남기면 되는 것이었고 그렇다면 투기꾼의 행태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정말 비밀스러운 것은 ISD 제도 자체이다. 이 소송 자체가 진행되는 과정과 결과는 철저히 공개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심지어 소송이나 중재 절차가 열린다는 사실조차 공개되지 않는다. 세계은행 등도 ISD 건수를 알려진 것만 집계할 뿐인 실정이다. 이 때문에 ISD의 비밀스러움을 제거하고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은 ISD 태풍에 대비해야 한다

최근 ISD 소송에서 나타나고 있는 주목할 점은 투자자들이 중진국과 선진국 국가들에 대한 제소를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ISD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투자자들이 제3세계 국가 정부를 대상으로 주로 사용해 온 칼이었다. 예컨대 투자자 국적은 미국, 네덜란드, 영국, 독일가 순서대로 많고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체코, 이집트 정부 순으로 피제소 건수가 많다.

그런데 2014년 통계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28%에 머무르던 중.선진국 정부 피제소 비율이 40%로 껑충 뛰었다. 투자자들은 보다 공격적으로 ISD를 활용함과 동시에 자국 또는 인접 선진국 정부들 앞에서 더 이상 주저하지 않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2013년 EU에서 발생한 ISD 건수를 보니, 무려 42%가 지역 내 투자자-국가 사이의 분쟁이었다는 점도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아마도 초부유층은 이미 글로벌 시민이 되었나 보다.

 

그림 2. ISD에 제소한 투자자들의 국적 분포 (2014년 말까지 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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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이제 ISD라는 태풍의 영향권 안에 들어섰다. 이번 론스타 외환은행 매각 사건 하나로 끝나지 않을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ISD 피제소에 걸려 들지 않도록, 걸려 들더라도 피해를 입지 않게할 시급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론스타와 같은 정체가 애매한, 혹은 투기 성격이 강한 해외자본에 대한 통제와 대응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ISD에서 확실하게 정부에 우호적인 판정이 내려진 경우는 약 37%로 집계된다(2014년 말까지의 누적 기준). 앞으로 한국 정부가 이 비율을 더 높이는 데 기여할지, 아니면 국제적 투기꾼 앞에 무방비로 놓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론스타에 승소할 지의 여부와 함께 이런 위기를 관리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 또한 궁금하다.

이와 동시에 ISD의 비밀주의를 걷어내기 위한 국제적 공조에 보다 적극적이어야 한다. 효과적인 국제적 공조를 위해서는 비밀주의에 젖은 관료들이 아니라 시민사회가 더 폭넓은 참여의 기회를 보장받아야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ISD가 갖고 있는 주권침해의 성격을 완전히 제거하거나 ISD 자체를 폐기하여야 할 것이다.

※이 글에서 인용된 데이터들은 모두 UNCTAD, Feb. 2015, “Recent trends in IIAs and ISDS” in IIA issue note가 출처임을 미리 밝힙니다.

 

이 글은 뉴미디어 언론 ‘칼라밍’에 공동게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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