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공간이나 사람과 만나는 3월은 설레기 마련인데,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속이 탄다. 부모 소득과 상관없이 아이들의 건강과 보육을 책임지겠다던 박근혜 대통령의 ‘무상보육’ 공약이 1년 뒤도 내다보지 못하는 ‘한해살이’로 추락했기 때문이다.

지난 연말에도 가시밭길 예산 전쟁을 치르면서 무상보육 논란이 재연됐다. 마치 같은 영상을 무한 반복해 돌려보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다. 박근혜 대통령의 제1호 공약인데도 국가 예산을 짤 때마다 무상보육 예산이 위태한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국민들이 많다. 답은 명쾌하다. 약속은 박 대통령이 했는데, 그 책임은 지방정부가 떠안는 ‘허울뿐인 공약’이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기획재정부가 2015년 국가예산안을 올리면서 만 3~5세 누리과정 공약은 물론 방과후돌봄 등의 교육 복지예산을 고스란히 빼버렸다. 그 비용을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떠넘겨버려, 안 그래도 불경기에 세수마저 줄어든 지방교육재정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이에 교육 재정을 책임지는 전국 교육감들은 올해 재정 부담을 키우는 어린이집 누리과정 지원을 ‘보이콧’하고 나섰다.

정부의 반응은 의외였다. 정부는 근본 대책인 국고 지원은 손을 놓고, 오히려 자율 예산으로 집행하는 무상급식 문제를 거론하며 전국에 포진한 ‘진보 교육감’을 탓했다.

정부가 ‘큰 아이 밥그릇을 빼앗아 작은 아이 보육을 시키자’는 식의 무책임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지난해 예산 결정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불만족스러운 합의가 이뤄지긴 했다. 올해 지방정부가 부담해야 하는 어린이집 누리과정 순증가분 일부를 목적예비비 4730억원으로 우회 지원하고, 부족한 예산에 한해 지방정부가 지방채를 발행할 경우 이자 333억원가량을 정부가 보전해 총 5064억원을 배분하기로 했다. 이 약속마저 지방재정이 바닥을 드러내는 임계점에 이르렀는데도 깜깜무소식이다.

정부 일각에서는 4월 국회에서 지방채 발행을 위한 지방재정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약속한 목적예비비 집행이 가능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한편에서는 협의 중이라 이조차 불확실하다는 입장이 혼재되어 있다.

누리과정 지원을 위한 지방재정법 개정만 되면 된다는 식으로 비춰지지만, 속내는 복잡하다. 우선 빚에 허덕이는 지방정부가 다시 빚을 내어 국가 교육사업을 감당해야 하는가에 대한 합의 부분이다. 이는 분명 후대의 빚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지방이 감당해야 하는 교육 복지 여력이 좋아지리란 전망도 나오지 않는 마당에 한계가 분명하다. 이는 정부가 교육 복지에 더는 재원을 쓰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하는 과정일 뿐이다.

정부는 3월초 재정개혁위원회를 열고 지방 세출의 강도 높은 개혁을 예고하고 있다. 다시 말해 지방재정의 면면을 감사하려는 모양새다. 이는 오는 4월 국회에 제안될 지방재정법 개정 방향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지방정부가 더 이상 정부의 최우선 사업에 반발하지 못하게 하는 근거로 사용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무상보육은 분명 대통령이 국민과 한 약속임에도 예산에는 뒷짐지고 있다. 지방재정 전문가들은 국가의 교육복지 사업 예산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는 지방정부의 재정 여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지방재정교부금률을 지금보다 3~5% 높이는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는 지방재정 효율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지방정부의 씀씀이를 단속한다고 부족한 재정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설사 4월 목적예비비가 배분되더라도 박근혜 정부에서는 똑같은 현상이 매년 되풀이될 뿐이다. 지방재정부터 공고히 해야 자신의 공약도 지킬 수 있음을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아 답답할 뿐이다.

 

* 이 글은 경향신문에 공동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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