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이제 한국사회를 97년 경제위기 이전과 이후로 구분하는 것은 상식이 되었다. 그렇지만 이른바 포스트-1997 한국사회의 본성이 정확히 무엇이며, 앞으로 어디로 향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 경제위기 이후 지금까지 우리가 겪은 급속한 사회적 변화의 성격과 바람직한 개혁의 방향에 관해 많은 논쟁들이 뜨겁게 펼쳐져 왔지만, 97년 위기의 원인에 대해서조차도 합의된 설명을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 보수와 진보, 좌우, 민주 대 반민주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이른바 ‘87년 체제’가 형성한 대립적 진영 사이의 이견 뿐 아니라, 진보진영 내에서도 현격한 인식의 차이를 드러내왔다.

그동안 진보진영에서는 2003년에 있었던 대안연대와 참여연대 사이의 논쟁을 시작으로, ‘자유주의 경쟁시장 규율의 확립’과 ‘국가주도 성장기제의 복구’라는 두 가지 담론이 중심을 이루며, 97년 경제위기의 원인, 포스트-1997 개혁의 성격, 이후 바람직한 개혁의 진로 등에 관한 여러 논의들이 펼쳐져 왔다. 이 두 중심 담론은 아직도 접점을 만들지 못하고 있으나, 다음 몇 가지 포스트-1997 사회경제적 현상에 대한 공통된 인식은 마련되었다. 첫째, 한국경제가 고투자-고성장 체제에서 저투자-저성장 체제로 전환했다. 둘째, 경제성장이 전반적으로 둔화된 가운데 소득불평등과 분배의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노동소득의 불평등뿐만 아니라 자본소득의 불평등도 심화되었고, 가계와 기업의 자산가치가 집중되는 현상도 전보다 훨씬 심각해졌다. 셋째, 성장은 되더라도 그에 따른 고용창출 효과는 이전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이른바 ‘고용 없는 성장’ 현상이 나타났다. 넷째, 그나마 이루어지는 고용창출도 대부분 저임금-비정규직-파트타임 일자리로, 고용의 질이 떨어짐과 동시에 고용의 불안정성도 크게 증대했다.

97년 위기 이후 불거져 온 이러한 사회경제적 문제들 위에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심화된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겹치면서, 보수진영도 이른바 ‘중진국 함정’, ‘샌드위치 경제론’ 등을 부각시키며 그들 나름대로 개혁의 필연성을 설파하고 있다. 지난 대선 때 새누리당이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라는 진보진영의 화두를 대선공약에 포함시킬 수밖에 없었던 사실은 그만큼 위에 언급한 사회경제적 문제들이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음을 보여준 것이다. 최근에는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른바 ‘초이노믹스’를 내세우며 진보진영의 소득주도성장 담론을 차용하기도 했다.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사회경제적 문제들에 접근하는 관점은 다르겠지만, 보수와 진보의 대립구도를 넘어, 일용직 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에서 시작해서 재계와 정계의 상층에 이르기까지 온 국민이 ‘이대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냈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현재의 한국사회경제체제가 지속가능하지 못하다는 실정이 경제성장과 분배의 지표로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사회안전망과 복지제도의 확립 과정을 거치지 않고 개발독재형 동원체제에서 약육강식적 신자유주의체제로 이어지는 성장만능주의 사회로 진화하면서, 우리국민들은 극도의 생존적 불안감과 삶의 피폐화를 느끼고 있다. 지금 서서히 가시화되고 있는 지속불가능성의 공감대는 극에 달한 삶의 황폐화에서 나오는 인간적 반발에 기반한 것으로 보인다. OECD 최상위에 속하는 장시간의 노동시간으로 삶을 돌볼 수 있는 여유가 없는데다가, 땀 흘린 시간과 보상이 비례하지 않고 돈이 돈을 벌거나 학연·혈연·지연 등 연줄과 줄서기가 출세와 치부를 결정하는 현실에서 심한 박탈감과 무기력감을 느끼고 있으며, ‘이태백’, ‘삼팔선’, ‘사오정’ 등 자조 섞인 유행어에 배어 있듯이 상시적인 삶의 불안감을 안고 산다. 높아지는 GDP가 삶의 질을 개선하기는커녕, 우리 삶에 드리우는 그늘만 점점 짙어지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모순된 사회경제적 현실은 지난 40여 년 간 한국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OECD 국가 중 가장 높았지만, 아동·청소년의 삶의 만족도 꼴찌, 산재사망률 1위, 노인빈곤률 1위, 자살률 1위라는 통계로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지표들은 우리가 그동안 “자살 친화적 성장”이라 불리는 참혹한 경로를 따라왔음을 절감하게 해준다.

세월호 사태는 ‘대한민국호’의 전조이다. 여기서 경로를 변경하지 않고, 기존의 경로를 따라간다면 우리사회 전체가 난파되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방향으로 미래의 진로를 변경할 것인가? 현 사회경제체제의 지속불가능성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진보진영에서는 그동안 다양한 대안 담론을 제시하였다. 이른바 ‘자본주의 고쳐 쓰기’라는 테두리 안으로 대안담론을 제한한다면, 주요 논의들은 표1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동반성장론과 재벌활용 복지국가론 사이에 존재하는 재벌에 관한 대립적 입장을 제외한다면, 거의 모두가 복지와 성장의 선순환 구축, 지식기반과 혁신 강화를 통한 성장을 도모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또한 미국식 자유주의 시장경제체제의 강화를 주장하는 동반성장론을 빼면, 대부분 스웨덴과 독일로 대표되는 유럽 쪽의 ‘자본주의 다양성’ 모델을 지향한다고 볼 수 있다.

대안담론들의 지향 자체는 대등소이 하지만 단일한 정치적·정책적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지는 못한 실정이다. 의견그룹들이 공동의 조직적 틀을 만들지 못하고 있고, 담론을 온전히 받아는 정치세력도 없으며, 개혁의 동력이 될 사회세력도 아직 형성되어 있지 않다. 게다가 진보진영의 대안담론들을 현실화 하는 데에는 매우 커다란 객관적 걸림돌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유럽의 사민주의적 사회경제 모델들이 만들어진 역사적 경로와 한국의 사회경제모델의 형성 경로 사이에 존재하는 현격한 거리이다. 그로인해 동경심이 유발되지만, 동시에 실현가능성이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다시 말해, 경로의존성 탈피가 쉽지 않다. 그래서 어느 방향으로 갈지를 정하는 것만큼 경로를 바꿀 수 있는 동력을 지금 우리 현실에서 찾아내야하는 과제도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서있는 위치가 어디쯤인지 정확한 좌표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 다양성 모델들 간의 거리

자본주의가 이상화된 자유시장의 원리에 따라 다양한 발전경로를 거칠 수 있다는 주장은 찰머스 존슨(1981)의 일본 연구 이후 여러 학자들에 의해 동아시아 개발국가모델 이론으로 정립된 바 있다. 이후 신자유주의 지구화가 세를 떨치면서, 세계적으로 사회경제 제도가 하나의 모델로 수렴된다는 혹은 수렴되어야 한다는 이론이 확산되었다. 이에 맞서, 영미식 신자유주의 체제는 하나의 특수한 형태에 불과하며, 지역적으로 다양한 자본주의 모델이 존재하고, 나아가 그 제도적 다양성이 지속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세계 진보학계에서 활발히 논의되었다(Crouch & Streeck, 1997; Hall & Soskice, 2001; Amable, 2004; Pontusson, 2005). 학자들마다 자본주의 유형 분류의 핵심 기준이 조금씩 차이가 나고, 그에 따라 분류되는 국가 목록이 약간씩 달라지지만, 일반적으로 홀과 소스키스가 제시하는 노사관계, 직업훈련과 교육, 기업지배구조, 기업 간 관계, 조정형태 등을 중심으로 크게는 영미식 자유시장경제, 유럽형 조정시장경제, 동아시아 모델로 나누고, 좀 더 세분화 하여 유럽형 조정시장경제를 대륙형 부문별 조정시장경제, 북유럽형 전국적 조정시장경제, 남유럽형 조정시장경제 모델로 구분하면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김인춘, 2007; 임현진,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