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저의 낙은 산에 가는 것입니다. 답답한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벌써 1년이 다 되어가는 세월호 문제에서부터 대선 불법선거개입 의혹, 그리고 청와대의 인사 난맥 등 어느 하나라도 국민들의 마음을 속 시원하게 해주는 것이 없으니 말입니다. 이 밖에도 주택난과 각종사건사고, 그리고 생활고에 허덕이다 목숨을 끊는 이들의 속출까지… 현재 대한민국은 조심스레 한 발 한 발 디뎌 살아가는 것조차 두려울 정도입니다.

물론 지금껏 포기 없이 버텨왔다는 사실만 해도 칭찬 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자부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불합리한 체제를 뒤엎고 협동과 신뢰의 사회를 좀 더 앞당겼더라면 작금의 참혹한 사태는 미리 방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자조 섞인 반성도 하게 됩니다. 인간은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는 존재임에도 그러한 본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경쟁의 도그마 속에 들어가다 보니 자연스레 불안한 삶을 살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보니 변화가 절실함을 느끼면서도 선뜻 새로운 사회를 향한 발걸음을 내딛지 못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고 타성에 젖어있으면 새로운 변화의 모습 또한 더디게 찾아올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 이후 어느새 2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그동안 공약은 이미 폐기처분되었고, 소통은 못해도 나라의 살림살이는 좀 나아지지 않을까했던 국민들의 공연한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하는지 감조차 잡을 수 없을 정도로 국정 전 분야가 깊은 소용돌이 속에 빠져버렸습니다. 국가운영의 철학이 보이지 않음은 물론, 경륜과 능력도 자취를 감추고 오로지 문고리 권력의 전횡과 권위주의로 국정을 농단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권력과 힘을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았으므로 그 힘의 방향이 국민을 향하고 있어야 함에도 불구, 박근혜 정권이 국민에게 보여준 것은 사리사욕과 편견에 빠진 위정자의 민낯뿐이었습니다.

요즘 총리후보자의 각종 편법과 의혹사건을 보면서, 그리고 이러한 사태가 국정수행능력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는 새누리당의 공식입장을 접하면서 착잡한 심정을 감출 길이 없었습니다. 고전에서 공자는 이런 말을 했더군요. “公生明(공생명) 廉生威(염생위)”, “공정하면 밝고 청렴하면 위엄이 나온다.” 즉, 위정자의 본성은 공정과 청렴이라는 뜻입니다. 작금의 정치 상황을 보노라면 옛말은 그저 식자들의 유희밖에 되지 않겠다는 심정입니다. 지식인 중 누구 하나 이를 지적하고 추상같이 엄명하는 사람도 없으며 간간이 흘러나오는 눈에 띄는 발언도 결국은 당리당략 속에 허우적대는 말들뿐이니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가 심히 걱정될 뿐입니다. 국민은 정치를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고 하는 것처럼 비판 없는 비난만 할 뿐이고, 정치권은 그들만의 리그에서 자기 욕심과 자기만의 성을 경쟁적으로 쌓고 있으니 말입니다.

정치가 국민들로부터 저만치 멀어져 있는데 경제 살리기에 희망을 품기란 당연히 어려운 일입니다. “증세 없는 복지”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를 방향성 없는 정책 기조에 다시금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희망과 비전이 없는 2015년, 이와 같은 박근혜 정부의 실정은 오롯이 국민들에게 돌아와, 많은 사람들의 삶은 이정표를 잃고 표류하며 점점 늪 속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답이 없고 탈출구도 안보이고 깃발도 안보입니다. 새로운 정치세력의 출현도 난망합니다. 안철수 현상도, 국민 모임도, 새정치민주연합의 혁신도, 그리고 진보정당의 재구성 역시 힘겨우며, 국민의 눈높이에 차기도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이렇게 별다른 대안 없이 또다시 선거철이 다가오면 울며 겨자 먹기 심정으로 지지를 호소하리라 예상됩니다. 상대편의 헛발질에 의지하는 자살골 정치는 단결의 국면에선 어느 정도 먹힐 수 있겠지만 87년 체제가 아닌 외환위기 이후 새로운 시대를 도모하는 정치세력에게는 독이 든 사과일 뿐이며, 혁신과 단결에의 방해요소가 될 뿐이라고 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저는 요즘 힘들고 지칠 때마다 산에 가곤 합니다. 산자수려한 대한민국의 명산들은 우리에게 의지와 희망과 새로움을 가르쳐 줍니다. “물질이 개벽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말처럼 먹고살기가 잘 되어야 민주주의도 보호되고 유지된다는 사실을 자각해봅니다.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는 결코 양립할 수 없으며 서로 필요, 충분조건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되새겨봅니다. 민주주의의 정치세력은 국민이 먹고 마실 수 있는 확고한 경제체계를 바로세우고, 국민들과 함께 토론하면서 대안 가능한 집권 플랜의 깃발을 만들어야하겠습니다. 희망과 미래로 전진해나가기 위해 과거의 유산인 전쟁과 이념의 트라우마를 자극하기 보다는 민족민주의 주체를 새롭게 성찰하고, 민생을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두며, 경쟁보다는 협동과 신뢰에 의한 새로운 주체형성이 가장 시급한 과제들이라 감히 제안해 봅니다.

‘민주주의, 그리고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에 대해 민주 진보세력의 기탄없는 토론회를 백가쟁명 식으로 진행해보기를 촉구합니다. 나만 잘살면 된다는 마음이 사회도처에 산재해 있는 요즘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차별하고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폭력은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의 전리품이며, 사회 환경에 의한 이러한 폭력은 대물림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폭력의 행사는 인간의 고귀한 성품을 말살하고,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여 인간 본연의 이타적인 심성을 거세시키는 주요 전략임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자기 자신과 경쟁하고 타인과 협동하는 관계가 건강한 사회를 향한 지름길임을 확신합니다. 자기 자신의 오랜 과거로부터 나온 옛 습관과 싸움을 통하여 새로운 자신을 세우는 노력 또한 간단없이 진행되어야 하며, 인간의 마음 仁(인)의 수양과 아울러 義(의)를 향한 사회적인 참여를 서로 고립되지 않게 진행한다면 대동사회와 복지국가에로의 길은 더욱 밝아지고 가까워 질것입니다.

따뜻한 마음과 공정 사회, 그리고 평화적인 동아시아 공동체를 향한 대장정의 출발을 향하여 다 함께 다시 시작하십시다. 흐트러진 마음과 전열을 가다듬고 깃발을 세우고 터전을 만들어 희망과 승리의 메시지를 전달합시다. 함께 하는 설날, 새해 새로운 날을 만들어갈 가슴 벅찬 꿈을 꾸시고 웅비의 붉은 기운이 한반도를 휘몰아치는 도약과 승리의 역사를 만들어가셨으면 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2015.2.18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장
정경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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