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 중단을 선언해 논란의 중심에 섰던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이번에는 저출산 관련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최근 홍 지사는 한 종합채널방송에 출연해 우리 출산율이 낮은 이유가 여성의 지위가 높기 때문이라 말했다. 그의 말을 더 이어가면, 여성들이 경제적으로 독립하게 되면서 결혼을 안 해도 되는 사회분위기와 자녀 없이 살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된 때문으로 사안을 바라보고 있다.

홍 지사는 새누리당 보수혁신위원회 자문위원 직함도 가지고 있는 여당의 차기 대권후보선상에 있는 핵심이다. 그러나 그의 최근 논란은 저출산의 문제를 여성 개인 탓으로 돌리는 기존의 가부장적 틀에서 벗어나 있지 않아 여성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게다가 박근혜 정부가 꺼냈다 대중의 뭇매를 맞은 ‘싱글세’ 등의 파장도 컸다. 일련의 논란들을 겪으며 여당과 정부의 인식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새삼 드러나고 있다. 결혼 안하고 아이도 안 낳는 이들에게 세금을 더 매기고, 여성을 가정에 머물도록 묶어두면 저출산 문제는 해결될 거라 전망하고 있는 것이다. 믿기 어려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정부, 의지도 책임도 ‘뒷전’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이 마련된 게 2005년이다. 저출산에 대한 위기의식이 사회적으로 높아진 때 대통령 직속으로 이 위원회가 세워졌고, 5개년 계획을 마련해왔다. 내년인 2015년까지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이 짜여있다. 그러나 실질적인 역할을 해오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위상은 이명박 정부와 현 박근혜 정부를 이어오면서 계속 추락하고 있다. 올해에는 대통령이 회의에 참여한 적이 없으며, 사업본부 수장이 공석이 된지 오래라는 소리도 들려온다. 정부 일각에서는 싱글인 대통령 때문에 대놓고 홍보도 못해 그렇다는 안이한 평가도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10월에 마련된 제2차 저출산기본계획을 보면, 일가정 양립은 물론, 결혼과 출산, 양육지원, 아동의 건전한 성장환경 조성 등에 100여개 이상의 사업이 나열되어 있긴 하다. 그러나 집행되는 예산의 80%이상이 보육료 등 양육비지원이나 휴직제 개선 등의 현금지원에 쏠려 있고, 가족친화 사회 환경 조성이나 가족을 이룰 여건 조성, 아동 교육비 부담 등과 관련한 사교육비 문제나 교육개혁의 내용은 포함되어 있지 못해 그 한계가 뚜렷하다. 상당수의 사업들이 과제별로 쪼개져있는 상황에서 위원회의 역할도 미미한 지금, 이 문제를 여성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게 우리 정부의 현주소다.

가까운 일본도 저출산 문제로 골머리를 앓으며 ‘저출산 위기 탈출’을 목표로 ‘대기아동 제로’ 정책을 선보이며 호응을 얻고 있다. 싱가포르는 신혼부부에게 임대주택을 줘 주거안정 보장에 적극적이며, 스웨덴은 양성평등의 관점에서 저출산에 대응하고 있다.

일과 가정 양립? 이제는 ‘포기’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근 저출산과 관련해 한국 상황이 모순적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2003년 기준 1.17명이었던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지난 몇 년 간 소폭 상승했으나, 2013년에는 1.19명으로 떨어져 10년 전 수준으로 퇴보했다. 이는 OECD 국가 평균 1.7명과 비교해도 한참 밑도는 수치이다. 여성 고용률 역시 OECD 평균 60%를 하회하는 53.5% 수준으로 제자리걸음인데, 최경환의 발언은 이와 같은 상황에 따른 해석일 터다.

그러나 이 현상은 지극히 현실에 기반해 있다. ‘결혼-연애-출산’을 포기하는 청년세대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가계소득은 오르지 않고, 전세가는 고공행진을 하는 마당에 결혼과 자녀계획은 ‘언감생심’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전까지만 해도 일과 가정의 양립은 적어도 ‘선택’의 영역에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그 수준을 넘어 ‘포기’의 상태에 이른 듯하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의 위기 대응력은 그야말로 제로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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