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황 그 이상”

“대공황 그 이상”

By | 2014-10-29T11:49:00+00:00 2014.09.01.|

“대공황 그 이상(The Greater Depression)”. 버클리대학의 들롱 교수가 쓴 며칠 전 칼럼의 제목이다.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붕괴에서 촉발된 2008년 금융위기는 “대침체(The Great Recession)”라고 불린다.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진 1929년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이 미국이나 유럽 사람들에게 ‘D자 공포’를 심어줬기 때문에 애써 공황이라는 말을 피한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로 발생한 미국의 실업은 5년이 지나서야 해소됐다. 전후의 어떤 경제위기와 비교해도 2배 이상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나마 시간제 저임금 일자리가 대폭 늘어났다.
6년째인 금년 초, 국제기구들은 이제 세계 경제가 본격적인 회복 국면에 들어서리라 장담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도 채권을 무제한 사들이는 “양적완화”의 규모를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있다. 하지만 금년 상반기의 경제 실적은 온통 잿빛이다. 미국의 경우 1분기 마이너스 2.1%를 경험한 후 2분기에는 4% 가까이 반등했지만 상반기 전체로 보면 겨우 1%에 불과할 뿐이다. 아베노믹스에 환호하며 1분기에 6.1% 성장했던 일본 경제는 소비세 인상의 여파로 2분기에 6.8%나 후퇴해서 평균 0.3% 성장에 그쳤다. 유로존의 위기는 독일과 이탈리아로 확산돼 두 나라는 2분기에 마이너스 성장을 했고 프랑스는 제로 성장에 머물렀다. 들롱 교수는 적어도 2011년경에는 이런 현실을 받아들여 “좀 나은 대공황(The Lesser Great Depression)”이라고 불러야 했으며 이제라도 제대로 명명을 해야 할 때가 된 게 아닌지 묻고 있다. 공자도 그러지 않았는가? 정명(올바로 이름 붙이는 것)이야말로 모든 일의 시작이라고.전후의 여느 위기와 달리, 왜 이렇게 경제는 회복되지 않는 것일까? 경제학자들은 “대차대조표 위기”라는 표현을 쓴다. 쉽게 얘기하면 빚이 너무 많아서 웬만해선 투자나 소비를 늘리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소득이 조금 늘어나도 빚을 갚으려 할 테니 돈은 도로 금융기관으로 돌아가고 이런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를 한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할 테니 말이다. 지난 30년 동안 금융완화 속에서 “부채주도성장”을 한 결과다. 더 심각한 문제는 지난 30년 동안 자산과 소득의 불평등이 극도로 심해졌다는 점이다. 그리고 지난 5~6년 동안 돈을 퍼부어 거둔 성장의 과실은 전부 상층에 돌아갔기 때문에 빈부격차는 더욱 악화됐다. 정치와 경제정책 기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불평등과 저성장의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상황이 이러니만큼 나는 확대정책에 반대하지 않는다. 아니 최경환 부총리가 인사청문회에서 “가계소득의 증대”에 의해 새로운 방향의 성장을 꾀하겠다고 했을 때, 실제로 “소득주도성장”을 정책기조로 삼는다면 그의 팬이 되겠다고까지 했다.
하지만 지난 한 달 최 부총리는 “부채주도성장”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상층으로 돈을 몰아줘서 이들이 부동산 경기의 불씨를 살리면 중산층이 빚내서라도 이를 뒤따라 올 것이라는 얘기다. 장기적으로는 서비스산업의 모든 규제를 풀어서 대기업들에 투자 기회를 주겠다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도 재확인했다. “소득주도성장”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아래로 돈이 내려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민주화와 보편복지, 그리고 사회적 경제가 바로 그런 정책들이다.
하지만 대통령, 부총리, 총리가 돌아가면서 담화를 발표하면서까지 이 정부는 정반대의 길로 국민을 몰아가고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스펜스 교수는 최근에 이렇게 얘기했다. “소득 불평등의 심화는 정책결정자들이 위험한 길로 들어서도록 유혹한다. 소비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부채를 늘리는 정책을 쓰는데 이 정책은 때로 자산버블과 결합되어 있다.” 어쩌겠는가? 국민들에게 호소하는 수밖에…. 아무리 집값이 들썩거린다 해도 절대로 빚내서 투기 대열에 동참하지 마시라. 현재의 경제 상황에서 그 거품은 앞으로 1~2년 내에 꺼질 수밖에 없다. 그때는 지금도 잔뜩 끼어 있는 거품까지 한꺼번에 걷힐 가능성이 높다.*본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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