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펀치 409호 : 브라질 월드컵, 누구를 위한 축제인가도시빈민이 청소해야 할 ‘불순물’이라고?

지난 22일 새벽, 우리나라와 알제리의 축구 경기가 열렸다. 2002년의 열기보다야 뜨겁지 않겠지만 집집마다 경기를 관람하는 사람들의 함성이 들렸고, 이튿날 식탁에도 경기이야기를 찬 삼아 이런저런 이야기 꽃이 피어났다. 세월호로 온 나라가 심란하던 차에 사람들은 모처럼 즐거울 길 없던 마음을 달래려는 것 같다. 사실 이것이 스포츠의 역할이기도 하다. 스포츠는 민족, 종교, 인종, 정치적 불화를 해소하고 사회 분열을 예방해 통합을 이끄는 데 기여하며, 국가는 언제나 이러한 스포츠를 정치에 잘 활용해왔다. 그런데 브라질에서 들리는 월드컵 소식이 그리 편치만은 않다. 월드컵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며칠 전 SNS를 통해 접한 그림이 자꾸만 머릿속에 떠오르기 때문이다. 아이는 브라질 축구 유니폼을 입고, 무너진 자기 집 옆에 황망히 서서, 멀리 축구경기장 하늘에 반짝거리는 환한 폭죽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게 대체 무슨 그림이냐고?”넝 케레모스 아 코파”(N?o Queremos a Copa) !” – “우리는 월드컵을 원하지 않는다.” ‘축구는 삶’이라고 이야기할 만큼 축구에 열광하는 브라질 사람들은 언젠가부터 이렇게 적힌 팻말을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왜일까? 2014년 월드컵 유치는 2007년에 브라질로 확정되었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 2008년부터 브라질에서는 대대적인 ‘도시 정화’가 시작되었다. 상파울로 9만명, 리우 데 자네이루 10만명, 브라질의 12개 도시에서 약 25만명이 강제퇴거 명령을 받았다. 주민들은 오래 살던 곳을 떠나 먼 교외로 이주해야 했지만 대부분 시가의 2-30%에도 못 미치는 주거 보상금만을 받았다. 무엇보다 그곳 사람들은 자신들이 ‘식물’과 같다고 말했다. 그들은 4-50년을 그곳에 뿌리내리고 살았는데, 그러한 삶의 터전에서 강제로 ‘뽑혀서’ 살 수 없는 환경에 아무렇게나 던져지고 있다는 것이다. 상의도, 타협도, 협상도 없이 통보와 무차별 집행만 있는 잔인한 ‘이식’이었다.

사실 국제적 스포츠 축제와 함께해온 강제퇴거의 역사는 비단 어제 오늘의 일도, 브라질 만의 일도 아니다. 이 잔인한 축제는 항상 대규모 도시개발을 정당화하는 데에 단골처럼 등장해 최고의 명분이 되어 주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무려 72만명의 도시빈민 강제퇴거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400명의 빈민 강제 감시와 차별1996년 아틀랜타 올림픽. 인종청소의 장. 흑인공공주택단지를 쓸어버리고 9000명의 홈리스 체포2000년 시드니올림픽. 집단거주시설과 임대주택 거주민 강제 이전2004년 아테네올림픽. 2700명의 주민 강제 이전2008년 베이징올림픽. 150만명 강제 이전. 25만명은 강제퇴거. 저항할 경우 협박과 폭행. 고문2012년 런던. 430명 이상 주민들 강제퇴거. 100년된 마을, 콘크리트 도로로 개발국가는 늘 거대한 축제 전에 목욕재계라도 하듯 강제퇴거를 강행해 왔다. 타국인을 맞아들일 준비로 ‘아름답고 깨끗한 도시를 위한 불순물 청소’를 한다는데 ‘불순물’이란 과연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일까 생각해보면 아찔해진다. 국가에게 빈민이나 가난한 사람들은,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돌보아야 할 국민이 아니라 치워버리고 숨겨야 할 부끄러운 찌꺼기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청소의 한 편에는 어김없이 부동산과 관련된 자본, 그 자본을 위한 대규모의 개발이 있다. 국가와, 국가의 비호를 받는 기업들에게 이 축제는 절호의 기회이다. 개발을 향한 사람들의 반발을 ‘지구촌 대통합을 위한 세계적 축제’라는 보기 좋은 명분에 잠재울 수 있다. ‘국제적 행사를 개최한 세계 도시로 거듭나고 만방에 나라를 알리자’는 민족주의적 감동도, 이 축제의 또 다른 포장지이다. 혹시나 있을지 모를 경계의 시선조차 박진감 넘치고 흥분 가득한 경기장 안으로 돌릴 수 있다. 허나 조별 경기일정은 훤히 꿰고 있으면서도 지금껏 개최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다 하여 너무 부끄러워 하지 마시라.
사실 그것이 바로 스포츠의 정치적 역할이다. 스포츠는 탈 정치적이(라고 여겨지)며 강력한 사회통합기제이고 암울한 현실을 위로하는 달콤한 초컬릿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잠시 환호를 멈추고 경기장 밖으로 눈을 돌려보는 것은 어떨까. 푸른 잔디, 선수들의 매력적인 육체와 아름다운 공의 포물선에 넋을 뺀 사이, 다른 누군가의 육체는 평생 살아온 집에서 쫓겨나, 차고 딱딱한 바닥을 공처럼 나뒹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2014 FIFA 월드컵 때문에 브라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한 영상을 첨부한다. 경기의 1/4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지만 경기보다 긴 여운이 남을지도 모르겠다.※ 영상 재생 시 우측 하단의 자막 버튼(왼쪽에서 두 번째)를 누르고 감상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