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케티 논쟁과 국세청

피케티 논쟁과 국세청

By | 2014-10-29T16:56:43+00:00 2014.06.24.|

지난 5월 23일 목 빳빳하기로 유명한 영국 <파이낸셜타임즈>의 경제에디터 크리스 질즈(Chris Giles)가 칼을 빼들었다. 금년 초 미국에서 번역본이 출간된 후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의 책 <21세기 자본>이 표적이었다.머지 않은 미래에 우리 아이들이 ‘레미제라블’이나 ‘왕자와 거지’의 시대처럼 극심한 불평등을 겪을 것이라는 피케티의 암울한 예언은 전 세계의 보수 언론과 주류 경제학자들을 자극했다.
하지만 여태 나온 비판은 기껏 ‘색깔 칠하기’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피케티의 비장의 무기인 장기 통계 자체를 문제 삼았으니 과연 <파이낸셜타임즈>답다.질즈는 무려 9쪽에 걸쳐 피케티가 통계를 뻥튀기하거나 비교 연도를 잘 못 골랐으며 자기 마음에 드는 수치를 일부러 뽑아 썼다고 밝혔다. 그 중 결정적인 대목은 영국의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기는커녕 오히려 완화되었다는 주장이었다.에 실린 피케티의 연구 오류를 지적하는 기사.” src=”http://www.pdjournal.com/news/photo/201406/52404_43528_4221.jpg”>▲ 지난달 23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즈>에 실린 피케티의 연구 오류를 지적하는 기사.그는 신뢰할만한 통계로 영국 정부의 ‘부와 자산 조사’(Office of National Statistics, Wealth and Assets Survey)를 꼽으면서 이 통계에 따르면 상위 10%에 집중된 부는 44%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피케티의 71%에 비하면 현저하게 적은 수치다. 세계의 언론들은 이 주장을 받아썼고, 경제학자들도 이 기사를 인용해서 피케티에 대한 불신을 부추겼다.일주일 뒤 피케티는 겸손한 어투로 10쪽에 이르는 반박문을 실었다. 핵심은 질즈가 불평등에 관한 시계열 통계를 작성하면서 과거의 수치는 세금 자료를 사용하고 최근 수치는 ONS의 센서스 자료를 이어 붙였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소득을 직접 물어보는 센서스 자료는 부자들의 소득을 과소평가하기 마련이다. 예컨대 최상위 구간이 ‘10억원 이상’이라면 50억원의 소득을 올리는 사람이나 100억원 이상의 억만장자도 이 구간에 체크할 수밖에 없고, 일반적으로 부자들은 자신의 소득을 줄여서 대답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세금환급자료는 국세청의 사후 검증이 있기 때문에 훨씬 정확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통계의 앞부분은 세금자료를 이용하고 뒷부분은 센서스 자료를 이용한다면 당연히 불평등은 한결 완화된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 기실 센서스 자료와 세금자료를 동시에 고려해서 통계를 작성해야 한다는 것이 피케티의 핵심 주장이었다. 영국의 경우엔 앤소니 애트킨슨(Anthony Atkinson, 옥스퍼드대) 등과 함께 이 방법으로 10여년에 걸쳐 통계를 만들었다. 피케티와 동료들은 논문을 출판하면서 모든 자료를 인터넷에 액셀파일로 공개했다. 자신들의 오류가 있다면 지적해 달라는 것이고 다른 나라도 동일한 통계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계층별 재산소유 상태를 알 수 있는 통계는 한국은행, 통계청, 그리고 금육감독원이 2012년부터 발표한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가 유일하다. 이 통계에 따르면 2013년 우리나라의 상위 10%는 45%의 순자산을 소유하고 있다.<파이낸셜타임즈>가 밝힌 영국의 수치와 비슷한데 이 역시 센서스 자료이다. 재산세 자료를 이용하면 한국의 이 수치도 70%를 넘어설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세청이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 한 우리가 이 의문을 풀 길은 없다.고무적인 일도 있다. 지난 6월 16일 한국은행은 피케티 비율 중 하나인 β(=W/Y, 민간 순자산의 가치를 국민소득으로 나눈 값)의 통계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부의 불평등과 관련한) 논의가 합리적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숫자를 만드는 우리가 시계열 자료를 만들어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친절한 설명도 뒤따랐다.하지만 β는 국민소득 중 자산(자본)이 가져가는 몫을 보여줄 뿐, 계층별 불평등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예컨대 β값이 제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모든 국민이 부동산과 금융자산, 그리고 산업설비를 똑같이 소유하고 있다면 부의 분배는 평등한 것이다.계층별 불평등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한은 등의 센서스 자료와 함께 국세청의 자료가 공개되어야 한다. 국세청이 한국은행과 같은 마음을 먹으면 얼마나 좋으랴. 실태를 알아야 논의를 하고, 필요하다면 뭔가 대책을 세우지 않겠는가.*본 글은 PD저널에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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