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세월호’의 절망에 빠져 있는 동안 바다 건너에선 세계의 아이들 수십억명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라는 ‘묵시록’이 화제다. 이제 마흔을 갓 넘긴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21세기의 자본>이 그것이다. 문체는 발랄하고 스스로 자신의 얘기는 묵시록이 아니라 낙관의 메시지라고 말하고 있지만…. 피케티에 따르면 자본(이 책에서는 모든 자산, 즉 토지자산, 금융자산, 산업자산)의 수익률(r)은 자본주의 역사 내내 4~5%였다. 심지어 로마시대에도 그랬단다. 이런 상황에서 성장률(g)이 떨어지고, 자본/소득 비율(현재의 자산이 국민소득의 몇배인가)마저 올라가면 r-g가 커져서 부(자산)의 집중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 얘기는 경제학의 정설을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다. 리카도, 마르크스 등 고전적 정치경제학자들은 물론 쿠즈네츠의 역U자 가설, 모딜리아니의 평생저축 가설, 베커의 인적자본론, 그리고 경제학의 기초 중 기초라고 할 만한 한계생산력설, 심지어 시장실패론까지 피케티의 화살을 피하지 못했다. 아마도 지금 생물학계에서 ‘집단선택이론’을 놓고 대혼란이 벌어지고 있듯이 경제학계도 한동안 시끄러울 것이다. 어떤 이론을 들이대든 부의 집중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피케티는 ‘글로벌 자본세’(전세계가 모든 자산에 대해 세금을 매긴다)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앞에 글로벌이 붙은 것은 자본을 향한 각국의 경쟁적 구애 때문에 어떤 한 나라가 나홀로 세금을 매기지 못하는 상황 때문이다. 피케티 스스로 “유토피아적”이라고 수식어를 붙일 만큼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참여정부 초기에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 이정우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이 상위 1%에만 해당하는 종합부동산세를 제시했을 때 당시 한나라당과 언론, 심지어 당시 수도권 민주당 의원들까지 “세금 폭탄”이라며 반대했다는 걸 기억하는가? 글로벌 자본세는 그보다 훨씬 더 강력할 수밖에 없는데 언론을 장악하고 있는 세계의 상위 1%가 가만히 있을까? 우리는 사회적 경제가 부의 집중을 막고 사람들의 창의성을 북돋는 또 하나의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경제는 기본적으로 자산의 공유에 기초한다. 특히 개인의 자산이 되어서는 안 될 자연자원을 공동체가 소유하고 거기에서 나오는 수익을 모두가 똑같이 누린다면 부의 집중을 막는 것은 물론 다음 세대를 위해 자연을 보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 역사상 딱 한번 자산의 재분배가 성공적으로 이뤄졌는데 그건 두 번의 세계전쟁과 대공황을 겪은 뒤였다. 이런 비극을 거치지 않고 사회적 합의에 따라 자산 재분배를 할 수 있있다면 그 나라야말로 선진국이라 불러 마땅할 것이다. * 본 글은 한겨레신문에 기고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