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등록금 문제에 관해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아래 정 후보)가 부정적인 발언을 하여 논란의 중심에 섰다. 아들의 ‘미개국민’ 발언에 이은 후속편이라 불러도 좋을 법한 충격적인 발언이다. 야당은 물론 시민단체와 누리꾼, 심지어 교수들까지 나서는 등 비판이 쇄도하고 있다.
그러나 당사자인 정 후보 측은 사과가 아니라,발언 취지가 왜곡되었다면서 해명에 나서는 모양새다. 각종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정 후보가 지난 20일 서울 숙명여대에서 열린 서울권 대학언론연합회와의 간담회에서 한 발언은 이렇게 요약된다. 우선, 반값 등록금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최고 교육기관으로서의 대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떨어뜨리고 대학 졸업생에 대한 사회적 존경심을 훼손시킨다, 학생 부담이 줄어드니 좋지만, ‘반값’이라는 표현은 최고의 지성에는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고 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단순히 ‘반값’등록금이라는 표현상의 문제를 지적한 것처럼 보인다. 정말’반값’이라는 표현에 대한 지적뿐이었을까그러나 박원순 새정치민주연합 서울시장 후보가 서울시장 재직 중 서울시립대 등록금을 반값으로 줄인 것에 대해 비판하는 대목에서 정 후보는 “시립대 교수를 만나보니 대학 재정도 나빠졌고 교수들도 연구비와 월급이 깎여 좋아하지 않더라”면서 명백하게 반값 등록금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음을 밝혔다. 더 나아가서 “등록금보다는 기숙사 문제를 해결해주고 장학금을 더 주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며 “(등록금이 비싼) 미국의 대학들은 좋은 평가를 받고 있고 대학의 힘으로 나라를 이끌어간다”고 주장했다.

결국 서울시립대와 같은 등록금 인하 정책에 반대하고, 나아가 등록금 인하 대신 다른 방안을 선호하고 있으며, 등록금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의 경우가 참조할 만한 사례라고 지적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정 후보는 대학 등록금 인하 정책과 효과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관련 언론보도를 왜곡이라고 볼 수 없는 이유다. 그런데 정 후보 발언의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바로 대학교육을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나 서비스로 간주하고 있으며, 등록금을 그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시장 가격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모든 것들을 시장에서 거래하는 상품으로 만들어서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정해지면 그것에 순응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생각하는 시장주의자의 전형을 기업가 출신 정 후보에게서 보게 된 것이다. 마치 할인을 하면 싸구려 인상을 받게 되고, 상품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마음을 그대로 읽을 수 있다.고등학생 70% 이상이 진학하는 대학을 포함하여 국민들이 받는 전반적인 교육이 각자의 경제력에 따른 구매 대상이 아니라 ‘국민의 권리’라는 관념이 정 후보의 머릿속에는 들어설 틈조차 없어 보인다. 정 후보만 빼고 대부분의 국민들이 다 아는 우리나라 헌법 31조 1항에는 이렇게 명시되어 있다.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대학 교육은 가장 잘못 매겨진 상품 가격사실 교육만이 아니다. 인간이 사는 세상에는 수요 공급에 따라 상품을 거래하는 시장 말고도 공공영역을 포함하여 대단히 광범위한 사회의 공간이 존재한다.

교육과 보건, 주거, 환경, 공동체 등 서울시가 당면한 주요 사안들은 하나같이 시장으로만 풀 수 없는 영역이기도 하다. 서울시와 같은 공공기관이 상당부분 떠안아야 할 과제라는 말이다. 때문에 대학교육을 경제력에 따라 구매하는 대상으로 보고 대학은 이를 판매하는 기업으로 볼 경우 커다란 함정에 빠지게 된다. 시장 논리로 해석해 볼 때, 사상 최악의 상품에 사상 최고의 가격이 매겨진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바로 대학 교육이기 때문이다. 대학 4년 동안 부모의 지원으로는 턱없이 모자라서 아르바이트와 대출까지 받아서 수천 만 원을 지불하고 구매한 대학 졸업장. 그런데 그 상품의 가치가 과거에 비해 현저히 나아졌는가. 확답하기 어렵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 체감하는 사실이다. 시장 가격의 메커니즘이 전혀 원형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제 대학졸업장은 더 이상 정 후보가 걱정하는 ‘사회적 존경심’의 상징이 아니다. 대학 졸업장은 졸업 후 취업과 일자리를 전혀 보장해주지도 않는다. 이처럼 사회적 지위도 일자리도 보장해주지 않는데, 왜대출까지 끼고 수천만 원의 돈과 그보다 더 아까운 젊은 시간을 바쳐서 대학교육을 구매하는가? 이는 시장 논리로는 설명할 길이 없다.일반 상품은 가격만 비싸고 효용가치가 없으면 구매하지 않는다. 그러면 가격이 내려가거나 공급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 우리 사회는 등록금 가격이 끊임없이 오른다고 대학 진학을 포기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효용 가치가 거의 없는데도 구매할 수밖에 없게 내몰리고 있다. 시장의 수요, 공급 논리가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정 후보가 모르는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미국 대학이 최고 대학? 미국 대학생은 최고 빚쟁이!과도한 대학 등록금이 단지 대학뿐 아니라 청년세대 전체, 그리고 사회전체의 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는 것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미국이다. 이 점에서 정 후보는 그 사례 국가를 제대로 짚었다. 단 최악의 사례를 최고의 사례로 들었다는 것만 빼고. 정 후보가 정확히 지적한 것처럼, 우리나라와 1, 2위를 겨룰 정도로 대학 등록금이 비싸다고 소문난 미국의 학생들도 우리나라 학생들처럼 빚을 내서 등록금을 내야 했다. 그 결과 정 후보가 상상하듯이 미국이 최고의 대학이 된 것이 아니라, 미국의 대학생들이 최고의 빚쟁이가 되어야 했다. 미국 소비자금융보호국에 따르면, 2013년 현재 연방 학자금 대출금은 이미 1조 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민간 대출까지 포함하면 1조 2천억 달러 이상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 규모는 도대체 어떤 정도일까? 이는 미국 전체 자동차 대출이나 신용카드 대출 수준을 넘는 것은 물론 최대 규모인 미국 모기지 대출하고 유사한 엄청난 규모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이 2010년에 1조 달러, 2013년에 1조3천억 달러이니 경제규모 15위 국가인 우리 국내총생산 금액을 미국 가정이 학자금 대출로 안고 있는 셈이다.대략 학생 1명당 평균 약 2만5천 달러(한화 약 2500만 원) 정도의 부채를 가지고 있는 셈인데, 학자금 상환을 3개월 이상 연체하고 있는 청년들도 10%를 넘어가고 있다. 심지어 학자금 수혜자의 40% 이상은 아직 상환을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신규 졸업생의 40%가 주택이나 자동차 등 주요 소비를 연기하고 있고 이는 미국경제의 회복을 가로막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더 나아가 부채 상환 압력에 시달리는 미국 청년들이 결혼을 미루는가 하면, 빚을 갚기 위해 자신의 경력에 도움이 안 되는 임시직을 전전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한 마디로 전체 세대의 문제, 나아가 사회 문제로 비화되고 있는 중이다. 이 문제가 국가적 중대 사안으로 떠오르면서 오바마 정부가 일부 면제조항과 분할상환제도를 도입하는 등 고심하고 있지만 대책이 쉽지 않은 형편이다.정몽준의 진심, 그 철학이 더 위험하다. 이런 상황은 미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의 식자들이 우려스런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정 후보는 등록금 문제와 관련해서 미국 대학을 닮아야 한다고 하니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다른가? 전혀 다르지 않다. 그래서 지난 2012년 대선에서 당시 박근혜 후보조차 반값 등록금을 주장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자체 선거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이 시각에도 성남시와 경기도를 필두로 ‘학자금 대출 이자 부담이라도 줄여주자’고 나서고 있는 중이다.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유감스럽게도 정 후보의 등록금 발언은 왜곡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그의 뼛속 깊이 내면화되어 있는 철학과 신념에서 비롯된 문제다. 교육을 포함하여 세상의 모든 활동을 시장의 상품 거래로 해결할 수 있다는 기업인 출신의 사고 관념에서 발원한 문제다. 시장이 정해준 상품 가격에 손대지 말자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시장이 정해준 등록금 가격을 반값으로 할인하면 위신과 존경심이 훼손된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이 아마 진심일 것이다. 하지만 서울시와 우리 사회가 지금 안고 있는 가장 절박한 문제들은 그런 관념으로는 풀 수 없다. 세월호 참사가 지금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본 글은 오마이뉴스에 기고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