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언론 유착이 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

권력과 언론 유착이 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

By | 2014-10-29T17:51:40+00:00 2014.05.23.|

공공정책 이론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을 국민에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상징이나 개념을 틀 또는 프레임이라고 한다. 이명박 정권 시절, 정부가 세금감면 등을 통해 대기업과 부자의 부를 먼저 늘리면 그 혜택이 중소기업과 소비자에게 돌아가게 된다는 논리로 기업 친화정책을 펼칠 때, 넘쳐흐르는 물이 바닥을 적시고 아랫목이 따뜻하면 윗목도 따뜻해진다는 표현으로 상징화되었던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가 대표적 사례다.

지금은 이 이론이 완전히 허구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당시 많은 국민들이 이 라는 개념을 ‘심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정부의 틀 짓기(framing) 전략이 먹힌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이 국민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려면 언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통상 보도자료 형태로 이루어지는 정부의 정책 방향을 국민들에게 납득시키려면 언론 매체가 그럴듯한 이야기(story)와 은유(metaphor) 등 다양한 콘텐츠를 활용해 잘 전파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론들은 보도 자료에 담긴 내용을 액면 그대로 기사화하진 않는다. 중립적 시각에서 건조하게 내용을 전달하는 경우도 있지만, 긍정적 혹은 부정적 해석을 담아 기사로 쓰는 경우가 많다. 언론이라는 매체에 의해 또 한 번의 틀 짓기가 이루어지는 셈이다. 권력과 언론의 관계 맺기는 각자가 어떤 성향과 세계관을 갖고 있는가에 따라 선명하게 갈라지게 되어 있다. 보수 성향의 정권이 들어서면 진보 성향의 언론이 뭇매를 가하고 반대로 진보 성향의 정치 세력이 집권하면 보수 성향의 언론이 정부정책을 강도 높게 힐난한다. 한 가지 정책을 놓고 정반대의 해석과 전혀 다른 성격의 틀 짓기가 이루어지고 국민들은 또 각자의 성향에 따라 자신이 선호하는 언론매체의 보도만을 읽고 정부 정책에 대한 관점을 정립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편협한 생각과 사고가 고착화되는 것이라고 할까. 우호적인 여론 조성… 정책 홍보의 핵심 애당초 정부의 정책 전달 과정에서 정책에 담긴 내용적 타당성과 합리성은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내용을 어떻게 잘 포장할 것인가, 어떤 방식으로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할 것인가 라는 것이 정책 홍보의 핵심이 된다. 그런 맥락에서 권력은 늘 언론을 통제하고 싶은 강한 욕구를 느낄 수밖에 없다. 언론이 정책홍보의 창구 역할을 잘 해주면 정부는 일하기가 훨씬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역대 어느 정권에서나 권력과 특정 언론과의 밀월관계 혹은 권언유착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귀결인지 모른다. 세월호 사고를 둘러싼 언론들의 보도 행태는 지금 우리나라의 권언유착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일부 친정부 성향의 언론들이 정부의 보도자료를 그대로 배껴쓰다가 오보가 나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객관적인 사실조차 제대로 전달하지 않고 축소, 왜곡하거나 정부에 대한 비판을 희석시키기 위해 사고의 책임을 선주인 유병언 일가와 일부 부패한 공무원들의 부도덕성으로 몰고 가는, 틀 짓기 전략을 구사하려는 경향 등 지난 한 달간 몇몇 언론들이 보여준 태도는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지금 보수 언론들은 이 사태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정부와 대통령에게 지우지 않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미 다수 국민들이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지만, 한국의 보수 정권이 늘, 언제나, 애용해 마지않는 틀 짓기의 대표적인 사례는 레드컴플렉스를 활용한 이른바 종북 프레임이다. 종북, 친북, 맹북 등 다양한 작명을 통해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세력들을 모두 북한 동조세력으로 묶어 국가의 존망을 위태롭게 하는 무리로 규정해버리는 수법. 심지어 ‘친노종북’과 같이 거의 형용모순(oxymoron)에 가까운 낱말들을 조합시켜 괴이한 틀 짓기를 시도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보수 언론들이 그 틀 짓기 전략에 훌륭한 스토리텔링 전문 수행기관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새삼 언급할 필요도 없다. 국민의 정부도 종북, 참여정부도 종북, 전직 대통령을 좋아해도 종북, 양 정부가 추진했던 대북정책도 종북, 전시작전권 환수도 종북, 한미FTA 재협상도 종북, 철도파업도 종북, 밀양 송전탑 반대도 종북 심지어 뉴욕타임스(NYT) 세월호 광고도 종북… 끝이 없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비판적이거나 반대하는 이들은 모두 종북이라는 꼬리표를 달아 매도한다. 이 논리대로라면 국민의 약 절반이 종북이라는 뜻인데, 이것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오죽하면 보수 진영에 속한 지식인들조차 이 지긋지긋한 프레임 전략에 신물이 나서 더 이상 국민을 분열시키는 종북 놀음을 그만두라고 이야기할까.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런 비상식적이고 비합리적인 틀 짓기 전략이 지금도, 여전히 상당한 효과를 발휘한다는 사실이다. 문재인 의원이 지난 대선에서 패배한 핵심 원인을 종북 프레임으로 진단한 것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안보를 둘러싼 ‘적색’ 트라우마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이 사회에 깊게 각인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이유로, 보수층을 결집시키는 데는 이만한 효과를 낼 수 있는 담론이 없기 때문에, 가용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정부 반대세력=종북’이라는 틀을 짜고 뒤집어씌우는 방법을 끊임없이 재활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보수 진영의 틀 짓기 전략은 단순히 프레임을 짜는 것에 머물지 않고 기존 판을 흔들어 완전히 새로운 틀로 전환하는 방식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해왔다. 틀 짓기 전략이 의도한 대로 먹히기 않을 경우 사용하는 두 번째 방법, 이른바 틀 갈아타기 전략이다. 흔히 ‘국면 전환’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이 새판 짜기 전략은 국민의 눈과 관심을 일시에 돌릴 수 있는 ‘확실한’ 카드를 뽑아드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국정원 선거개입 문제가 한참 회자되던 시점에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을 터뜨린 사례가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세월호 사고로 어려운 수세에 몰린 박근혜 정부가 새로운 카드로 국면전환을 시도할 것은 명약관화해 보인다. 사고 수습과정에서 보여준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끓어오르고 있고, 다분히 정권 심판 성격을 띤 지방선거가 코앞이며, 대통령과 집권 여당에 대한 지지율이 급락하고 있는 비상한 시점이라 정국의 향배를 그대로 두었다간 향후 정부의 중점 추진과제가 표류하게 될 것이라는 것쯤은 삼척동자도 알만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곧 있을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가 국면전환을 위한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참모진과 내각 개편을 포함해 강도 높은 국가 개조안이 담길 것이라는 후문도 들린다. 필경 보수 언론들은 개혁안이 담긴 대통령의 담화시기를 변곡점으로, 국면전환을 위한 콘텐츠를 대대적으로 만들어 뿌려댈 것이다. 충분히 반성하고 있고, 잘못이 무엇인지도 알았으며 그래서 이런 조치를 마련했다. 향후에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을 것이니 더 이상 국론을 분열시키는 말과 행동은 그만두고 경제가 어려우니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자는 식의 논리 말이다. 혹은 앞서 언급한 또 다른 종북 프레임이 시도될 지도 모르겠다. 세월호 사고 이후, 북한의 핵실험 사실을 애써 부각시키려 하고 ‘북한은 빨리 없어져야 할 나라’라는 식의 자극적인 발언을 일삼고, 제대로 확인도 않은 채 부서진 화장실 문짝을 북한 무인기라고 발표하는 해프닝을 연출하는 국방부의 ‘처절한’ 몸짓을 보라. 어떻게 하든 안보를 이용해 현재 국면을 돌파해보려는 꼼수가 애처롭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음모적 시나리오가 구상되고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사회과학자들은 정부의 틀 짓기 과정을 정치적인 현상으로 이해한다. 복잡한 사회구조 안에서 정부의 정책 의지를 국민에게 잘 납득시키려면 이해하기 쉬운 말과 이야기로 핵심을 잘 전달하는 것이 긴요할 것이다. 문제는 이 틀 짓기가 상식의 범주 안에 있고, 합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으며, 다수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이유와 명분을 갖고 있는가라는 점이다. 박근혜 정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모두 이 프레임을 동의한다고 강변할 텐가. 종북 프레임을 씌우는 자들과 틀 자체를 반대하는 자들 중 누가 국론을 분열시키는 세력일까.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만일 언론이 정부 정책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정부가 써준 내용을 앵무새처럼 따라 읽는다면 언론의 감시 및 비판기능은 사라진 것이나 진배없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언론의 잘못된 오보로 인해 살릴 수도 있었던 소중한 생명을 방치한 세월호 사고가 그 사실을 말해준다. 언론이 권력의 시녀로 전락하면, 국민들은 큰 고통을 겪는다. 하지만 국민들의 눈을 멀게 한 책임은 더 큰 차원의 응징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세월호 사고, 정부뿐만 아니라 언론도 경고 받는 이유 미디어 비평가인 제이 로젠(Jay Rosen)은 “보도의 진정한 가치는 그것이 얼마나 객관적인지의 여부가 아니라 독자가 없던 곳에 기자는 있었다는 사실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눈으로 보고 확인된 사실이 아니라면 쉽게 글을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모르는 언론인이 있을까. 그런 측면에서 이번 세월호 사고는 정부뿐만 아니라 언론에게도 엄중한 경고를 하고 있는 셈이다. 국민들은 묻고 있다. ‘지금 당신들은 국민들의 알 권리를 위해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라 라고. 결국 틀을 짜는 것도, 틀을 깨는 것도 언론의 몫이다. 정부가 짠 틀을 옹호할 수도 있고 비판할 수도 있다. 그것은 언론사가 판단해야 할, 고유의 영역이다. 그러나 사실을 숨기거나 왜곡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범죄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알리는 것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언론이 무슨 언론이란 말인가. 이런 상황에 기성 언론들의 보도를 믿을 사람이 과연 있겠는가. 지금 한국 저널리즘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는 진단은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을 억압하는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할 수 없고, 사실을 숨기고 진실을 왜곡하려는 이들과 미래를 도모할 수 없다. ‘상식과 정의가 통하는 사회가 도래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지는 이들이 많다. 이 질문은 단순한 바람이나 기대 수준에서 답할 성격의 것이 아니라 아무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그렇게 될 것이라는 전제 하에서 해법을 찾아야 하는 질문이다. 보수 언론의 지배력이 압도적인 현실에서도 진실을 전달하기 위해 눈물 나게 뛰어다니는 진짜 언론인들처럼, 지금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 필요할 때다. *본 글은 오마이뉴스에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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