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복지 모델의 명암, 그리고 사회적경제

By | 2014-03-10T09:59:02+00:00 2014.03.10.|

한 석달여 프로젝트를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었다. 한 광역지자체의 사회적경제 발전 모델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우리나라 복지서비스 실태 전체를 훑어 보는 기회가 되었다. 주마간산의 덕일까, 복지 전공자들에겐 상식일지도 모르는 공통점이 눈에 들어왔다. 각 서비스가 다소간 모두 안고 있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선 필수 복지에도 이르지 못할 수 있다.고도의 경제성장과 빠른 사회 변화는 복지수요 또한 무더기로 만들어냈다. 과거엔 가족이, 그리고 지역공동체가 어떻게라도 해결했던 일이 이제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국가는 그때마다 재정이 허용하는 대로 수요 보조금을 주는 제도를 만들었다. 건강보험, 아동수당, 노인요양보험, 각종 생계보조금, 그리고 최근의 바우처 제도 모두 소비자 보조를 뼈대로 한다.국가가 확보해 준 수요에 대응해서 민간 공급은 짧은 시간에 대폭 늘어났다. 예컨대 2005년 210개에 불과하던 노인요양병원은 2012년 5월 1014개로 7년 만에 5배 가까이 증가했고 의료비 청구액도 5배 증가했다. 육아나 의료 역시 마찬가지였다. 즉 국가가 새로운 시장을 열어 자본의 신속한 유입을 유도한 것이다. 빠른 시간 내에 복지시스템을 만드는 데 이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눈부신 성공이다.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생기게 마련이다. 사회서비스의 양극화는 대표적인 그늘이다. 대규모 자본을 끌어들일 수 있는 민간 공급자는 고수익을 노려 고급서비스를 만들어냈다. 쾌적한 시설과 필수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면 추가로 돈을 내려는 소비자가 생기기 마련이다. 예컨대 의료 부문에선 건강보험에서 보장하지 않는 비급여부분이 늘어났다. 고급 장비에 의한 검사라든가, 상급 병실 등이 그것이다. 이런 양극화 현상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보육과 노인요양, 그리고 교육에서도 나타났다. 불행하게도 현 정부는 영리자회사를 허용하여 아예 이런 서비스를 장려하고 있다.반면 소규모 민간 공급자들은 나머지 수요를 놓고 피 튀기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불법적 소비자 유치 경쟁을 벌이는 한편으로 노동자의 임금이나 노동조건을 악화시키기 일쑤다. 그 결과 보건과 사회서비스 영역에서 비정규 저임금 노동자가 양산되었다. 서비스의 질은 떨어지고 심지어 성희롱까지 노동자들의 인권이 유린되고 있다. 툭하면 비효율적이라고 비난받던 국공립 시설의 대기자 줄이 길어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그렇다고 국공립 시설을 늘리거나 규제를 강화하는 것도 그리 만만치 않다. 민간 공급업자들의 카르텔이 어느덧 막강해졌기 때문이다. 예컨대 참여정부가 국공립보육원을 늘리는 정책을 발표하자 원장들이 장관실을 점거했고 국회의원들은 지역유지들에게 굴복했다. 설상가상으로 이 영역의 전문직 역시 수익성의 노예가 되었다. 고급 서비스 기관은 자기 기관의 평판을 위해 고급 인력 스카우트 경쟁을 벌였고 이들의 임금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그러니 투자한 만큼 돈을 벌어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같은 전문직 윤리는 내팽개쳐진 지 이미 오래다.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우리 모두 동의할 수 있는 원칙은 적정 서비스를 적정 가격에 공급하는 것이다. 의료, 보육, 노인요양, 의료 복지 원래의 의미에 충실한 적정 서비스를 요구해야 한다. 나아가서 우리 스스로 그런 서비스 수급체계를 설계해서 운영할 수도 있다. 최근에 일고 있는 공동육아 협동조합이나 의료 사회적협동조합 운동이 그것이다.정부는 적정 서비스에 한해서 공급 보조금을 주어야 한다. 이들 서비스가 관계형인 만큼 지역공동체의 안정된 서비스 공급망은 소비자들의 정보를 축적해서 질병이나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모두에게 골고루 적정 서비스를 제공하면 오히려 비용도 줄어든다. 이제 정부에 그저 수요보조금을 늘리라고 요구할 때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적정 서비스를 요구하고 그에 가장 걸맞은 공급 형태를 선택하고 조합하는 지혜를 발휘할 때다. 이에 맞춰 전문직의 윤리가 회복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본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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