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6일은 고 황유미씨의 7주기이다. 황유미씨는 삼성반도체 직업병 첫 피해 제보자이자 산재 판정자이다. 7년 전 23살의 봄에 백혈병으로 숨을 거뒀다. 그녀의 마지막 짧은 봄날도 지금처럼 햇살이 좋았을까?최근 시민들의 응원 속에 상영관을 늘려가고 있는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황유미씨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국민 기업 삼성. 하지만 삼성 반도체 공장의 노동자들이 연이어 백혈병, 뇌종양, 림프종 등의 질병으로 죽어가도, 삼성과 근로복지공단은 이들을 산재로 인정하지 않는다. 삼성이 산재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는 영화 속에도 잘 묘사되어 있듯이, 귀찮아지지 않으려고 고장 난 부속품을 갖다 치우는 모습이다. 대체 삼성은 어찌 저리 거만할까? 우리에게 기업은 무엇일까? 기업이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흔히들 기업의 목표는 수익극대화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기업의 수익은 누구의 것인가? 우리는 좀 더 정확히 표현해야 한다. 기업의 목표는 자본가의 수익극대화이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의 근로조건, 소비자의 안전, 환경파괴를 막기 위한 노력 등은 수익극대화를 가로막는 비용이 되어버린다. 왜냐하면 기업의 주인은 자본을 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장님일수도 있고, 주주일수도 있고, 투자자일 수도 있다. 어쨌든 자본을 투자한 사람들을 위해 대부분의 기업은 돌아간다. 그들의 자본을 지켜주고, 그들의 자본을 불려주기 위해서. 자본을 투자한 사람이 기업의 주인이라는 생각의 바탕에는 그래야만 기업이 가장 효율적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합리적인 판단이 있었다. 적어도 경영학의 초기 이론에서는 말이다. 자신의 자본을 투자했으니 그만큼 기업의 중요 결정사항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고 책임감있게 결정할 것이라는 논리이다. 즉, 기업의 존망이 자신의 이익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 사람이 투자자이고, 그래서 그들이 기업의 주인이 되는 것이 맞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현실을 보자. 투자자의 대표적 형태 중 하나인 주주, 과연 주주들이 기업의 존망을 자신의 이익과 일치시켜 생각하는가? 아니다. 기업이 위태로워질 때, 가장 먼저 빠져나가는 사람들, 가장 먼저 손을 털고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주주이다. 반면 기업이 망해도 끝까지 빠져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노동자들이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에게 기업의 소유권과 결정권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자본가들에게는 전제 수익 중 자본의 비율만큼 월급을 주면 되지 않을까? ‘자본가를 타도하고, 노동자들이 공장을 운영하자!’는 ‘과격한’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것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기업의 주인은 과연 누가 되어야 맞는가? 나아가 기업의 목표는 과연 (자본가의) 수익극대화인 것이 맞는가? 이러한 생각의 전환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 협동조합이다. 협동조합도 기업이다. 그런데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이 출자금을 내고, 조합원들이 최고 의사결정 주체이다.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이익을 추구하는 동시에 지역사회에 공헌하고, 다른 협동조합과 연대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의 적극적 참여 없이는 굴러가지 않는다. 아직은 한국사회에서 협동조합이 주류가 될 수는 없지만, 협동조합으로 시작한 기업이 국민기업으로 성장한 해외 사례를 보자면,협동조합과 같은 기업도 주류가 되는 것이 가능하다. 즉,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기업의 소유, 기업의 역할에 대해서 충분히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시대가 원하는 기업은 어떤 모습인가? 실제로 기업을 굴리는 사람은 누구인가? 나아가 삼성을 협동조합으로 만든다면 어떨까? 그럴 수는 없을까? 한 번 생각해보자. 협동조합이라는 새로운 표본의 등장은 우리의 현실과 함께 우리의 사고를 넓힐 수 있는 계기이다. *필자 주 :참고로 <또 하나의 약속>에 이어, 같은 주제의 다큐멘터리인 <탐욕의 제국>도 개봉한다고 한다. 이 외에 삼성 반도체 문제를 다룬 만화책 <먼지 없는 방>, 삼성 백혈병 피해자 지원 모임 반올림의 활동을 바탕으로 쓴 책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 <삼성 반도체와 백혈병>이라는 책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