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권력’과 의료 민영화

By | 2013-12-19T09:53:39+00:00 2013.12.19.|

지난 1일 방송된 SBS 창사특집 대기획 <최후의 권력- 제4부 금권천하>는 참으로 훌륭했다. 제작진 모두에게 최고의 찬사를 보낸다. 마이클 무어의 <식코>보다 뛰어나다. 두 아이의 이름이 지금도 내 귓가에 맴돈다. 아샨 존슨과 디어몬트 죠지. 한 아이의 눈물과 한 아이의 죽음은 자본의 논리를 단번에 무너뜨렸다. 무엇을 위한 효율성이고 무엇을 위한 (선택의) 자유란 말인가.디어몬트는 단지 충치를 앓았을 뿐이다. 하지만 돈이 없어 치주염을 방치하다가 바이러스가 뇌까지 침투해서 숨졌다. 아이는 메디케이드(미국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국가의료시스템)의 대상이었지만 병원은 치료를 거부했다. 아샨은 단지 가난한 동네에서 태어났을 뿐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세 번째로 잘 사는 도시인 시카고의 이매뉴얼 시장은 공립학교의 예산을 20% 가량 삭감했다. 아샨의 학교는 폐쇄됐고 아이는 길거리에서 “교육은 우리의 권리”라고 목청을 높인다.방송에서 한 전문가는 “의료수가를 시장 원리에 맡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언제나 야바위를 의심하지만 “시장에서 결정되었다”고 하면 뭔가 객관적인 법칙이 작용한 것으로 믿게 됐다. 아픔을 참을 때 쓰라고 안겨 주는 테디베어 인형이 7~21만원, 약을 먹을 때 4~5일 동안 쓴 작은 컵 값이 530만원이라고 찍힌 의료비 청구서를 <최후의 권력>은 보여준다. 어떤 경제학자도 이런 가격을 공정하다고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금권천하’ 편 ⓒSBS” src=”http://www.pdjournal.com/news/photo/201312/50449_41314_3531.jpg”>▲ 지난 1일 방송된 SBS 특별기획 <최후의 권력> ‘금권천하’ 편 ⓒSBS의료 시장만큼 온갖 시장실패가 횡행하는 곳은 없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서 소비자의 선택 따위는 작동할 수 없고, 둘 사이에 끼어 있는 보험시장 역시 정보의 불완전성으로 가득하다. 뿐만 아니라 대형병원과 대형보험회사는 가공할 독점력마저 지니고 있으며 방송이 보여주듯 정치도 좌지우지한다. 수익성(돈)이라는 하나의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이들 병원과 보험회사는 효율성이 극단적으로 높은 기업이다. 또 만일 그런 이유로 적자에 허덕이는 공공병원을 폐쇄한다면 의료비와 보험료는 더 올라갈 것이다.재정문제를 들어 교육 예산을 줄이려는 시카고의 경우도 또한 마찬가지다. 수익성이 높은 곳부터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면 무상 공립학교는 당연히 맨 뒤로 밀릴 것이다. 시 전체의 예산이 줄어들지 않았는데도 공립학교 예산이 삭감된 이유다. 방송에서 가문의 세 번째 미국 대통령을 꿈꾸는 젭 부시(부시 전 대통령의 동생)는 말한다. “학교도 쇼핑할 수 있어야 한다”. <최후의 권력>은 이런 일을 꾸미고 실행하는 곳이 알렉(American Legislative Exchange Council, 미국 입법 교류회)와 같은 단체, 그리고 티파티와 같은 우파 운동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전국민 건강보험이 있는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훨씬 낫지만 그리 새삼스러운 얘기도 아니다. 예컨대 지난 13일에 발표된 제4차 투자활성화정책의 핵심은 의료와 교육의 민영화이다. 정부는 그저 의료 자회사를 허용할 뿐이라고 강변하지만, 의사가 특정 의료기기와 의약품의 사용, 특급병실과 관광을 마치 점심 메뉴처럼 세트로 제시할 때 이를 거부할 수 있는 환자가 얼마나 있을까.교육재정을 깎자고 주장하는 간 큰 정치가는 아직 없지만 교육을 하나의 수치로 환산해서 순위를 매기는 일은 한국에서 훨씬 더 발전했다. 규제완화에 의해 학교가 다양해지고 학부모의 쇼핑 권한이 높아질수록 등수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아이들은 죽음으로 내몰린다. 관찰하기 쉽고 순위매기기 좋은 부분에 강력한 인센티브를 걸면 교육이나 의료의 공공성이 붕괴한다는 사실은 이미 경제학에서 증명된 바다.한국의 재벌-고위관료-새누리당, 나아가 조·중·동의 동맹관계는 이미 알렉이나 티파티의 경지를 넘어섰다. ‘최후의 권력’이 한국을 지배한 지 오래다. 방송은 아이들의 경쾌한 노래로 끝난다. “우리의 호소를 들어주세요. 우리가 내일이에요. 우리가 변화를 가져올 거에요” 초등학생들이 이런 절규를 할 때까지 이렇게 내버려 둬도 괜찮은 걸까. 정말로….*본 글은 PD저널에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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