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철지난 레코드가 울려 퍼지다. 빅뱅 또는 대폭발 이론은 우주물리학에서, 우주의 시원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이론이다. 우주론에 문외한이지만 굳이 보태자면, 밀도와 온도가 매우 높은 상태를 지닌 작은 물질이 약 150~200억 년 전의 거대한 폭발을 통해 급격히 팽창했다고 보는 이론이다. 이러한 빅뱅 이론은 경제적 영역에서도 곧잘 적용되곤 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금융 빅뱅(Financial Big Bang)이다. 1980년 6월, 영국에서 금융서비스법(Financial Service Act)을 도입하여 은행의 증권업 겸업을 허용하는 한편, 은행과 보험을 제외한 나머지 금융업종의 관련 법률을 통합하고 규제를 대폭 완화한 급격한 조치를 말한다. 86년 영국의 금융 빅뱅은 80년대 초반 레이건의 규제완화 정책을 추종하였지만, ‘더 빠르고 더 강력하게’ 탈규제를 촉진하여 런던을 금융허브로 만들고자 하는 야심에 따라 추진되었다. 그리고 미국은 1999년 금융현대화 법안(Gramm-Leach-Bliley Act)을 도입하여, 은행지주회사에 대한 영업 제한을 폐지하고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하여 증권업과 보험업에 진출할 수 있도록 허가하였다. 이른바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겸업 제한을 폐지하여 투자은행의 위험 관리, 자원 배분 등 영업 행위와 문화가 상업은행에도 확산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 2008년 대공황에 버금가는 금융위기가 발생한 제도적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하였다. 금융 빅뱅의 요람, 미국의 시티와 월가는 심각한 타격을 받았고 금융규제를 강화하여 금융안정성과 소비자보호를 제고하는 것이 시대적 추세가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나라에는 금융 빅뱅의 신봉자들이 금융 정책과 감독의 최첨단에서 활약하고 있다. 미국의 금융현대화법이 모태가 된 자본시장법을 2008년 금융위기의 격랑 속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듬해 2월 전격 시행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정권에 따라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다. 참여정부에서는 금융허브, MB정부에서는 금융선진화. 그리고 박근혜정부에서 창조금융 혹은 금융융복합으로 이름만 바뀌고 있다. 요지는 우리 경제의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금융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규제를 대폭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박근혜는 지난 18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제조업, 입지, 환경 분야 중심으로 추진되어 온 규제완화를 전 산업 분야로 확산해 투자 활성화의 폭을 넓혀가려 합니다. 특히 의료, 금융, 관광 등 부가가치가 높은 서비스 산업에 대한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 나갈 것입니다.…앞으로 창조경제의 핵심인 업종 간 융복합을 저해하는 규제를 과감하게 철폐하고…”그리고 27일 금융위원장은 ‘금융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하였다. “금융업을 우리 경제의 차세대 유망 서비스 산업으로 육성”한다는 명목 하에, 2009년 자본시장통합법에 버금가는 규제완화 정책을 대거 망라하였다. 여신전문업의 부수업무를 현행 열거주의(원칙 금지, 예외 허용)에서 포괄주의(원칙 허용, 예외 금지)로 전환하는 등 금융투자업, 여신전문업, 보험업에 대한 진입 및 영업규제를 대폭 완화하겠다고 한다. 또한 증권사 M&A시 사모펀드 운용업 겸영을 허용하고, 보험사의 신탁업 인가도 추가 확대할 계획이다. 사모펀드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설립규제를 사후보고제로 대폭 간소화하고, 부동산투자?파생상품거래?채무보증 등 운용규제 또한 대폭 완화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금융한류’라는 신조어도 만들어냈다. 금융산업의 해외 진출을 대대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의도다. 금융지주회사의 해외 자회사 설립 규제를 완화하고 국내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증권 관련 업무를 은행 해외지점에는 허용하겠다고 한다. 2009년 자본시장통합법이 금융지주회사를 통한 증권?보험업 진출과 업종 간 겸영 허용이 주요 내용이었다면, 이번 경쟁력 강화 방안은 은행과 증권사 간 방화벽을 아예 허물어 버리겠다는 의도다. 산업 본연의 임무가 야성적 충동 혹은 기업가정신을 통해 투자와 고용을 확대하여 개인과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금융 본연의 임무는 가계와 기업 간 자금의 중개와 리스크 관리, 그리고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다. 그러나 금융 산업이 과도하게 비대해지면, 한정된 자원이 금융과 투기 부문에 쏠림에 따라 실물 부문의 생산적 투자와 R&D가 저해된다. 또한 금융 특유의 리스크와 변동성은 불안정성과 불확실성 증대로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소수 특권 계층에 자산이 집중되고 자본소득에 대한 소득세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불평등 확대의 원인이기도 하다. 금융산업의 처분가능소득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10.4조에서 2012년 42조로 거의 네 배 가량 증가하였다. 반면 금융산업의 고용은 같은 기간 78만 명에서 84만 명으로 불과 6만 명(7.7%) 늘어나는데 그쳤다. 금융은 ‘금 나와라’ 하면 돈이 쏟아지는 도깨비 방망이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빅뱅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태초에 폭발하여 팽창하고 있지만, 공공의 영역인 금융시장에서 잘못 폭발하면 국민경제 전체가 산산이 부서질 수 있다. 1997 외환위기, 2002 카드사태, 2008 금융위기, 2011 저축은행, 그리고 최근 동양사태에 이르기까지 금융위기가 초래한 막대한 국민경제 손실과 구제금융 비용은 이를 잘 입증한다. 지금은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와 감독을 강화하여 소비자를 보호하고 금융안정성을 제고할 시점이다. 그것이 시대적 추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