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그런 핑계를 대지 마. 입장 바꿔 생각을 해 봐.” 1993년에 발표된 김건모의 ‘핑계’는 참으로 경쾌하게 슬픈 얘기를 눙친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 생각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만일 인간이 경제학에서 상정하는 대로 자신의 물질적 이익만 추구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라면 더더욱 그렇다.<국부론>(1776)보다 17년 앞서 출판된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은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이라고 상정하더라도, 인간의 본성에는 분명 이와 상반되는 몇 가지 원리들이 존재한다… 타인의 비참함을 목격하거나 또는 그것을 아주 생생하게 느끼게 될 때 우리는 이러한 감정을 느낀다”로 시작한다.스미스의 이 문장을 놓고 그 감정이 동정(sympathy)이냐, 공감(empathy)이냐, 그도 아니면 동료애(fellow-feeling)냐, 나아가서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놓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강약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어느 경우든 “입장 바꿔 생각을 해 봐”가 그 밑에 깔려 있다. 이러한 감정을 전제하지 않은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세상을 파국으로 몰고 가기 일쑤다.이 아름다운 가을 산에서 힘겨운 싸움을 하는 밀양 할머니들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어떤 사람들은 할머니들이 보상금을 노리고 있으니 두둑하게 돈을 주면 그만이라고 주장한다. 또 어떤 이들은 전형적인 님비 현상이라고 비아냥거린다.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머릿속에서 모든 인간들은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그 세계의 경전인 경제학교과서는 고압송전탑이 자아내는 외부성(냉정해 보이는 경제학 용어지만 대대로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을, 한전에 벌금을 물리거나 밀양 등의 피해주민에게 보상금을 주어서 해결하라고 속삭인다. 어느 쪽이나 전기를 사용하는 5000만명 국민이 밀양 등 고압송전탑 주위의 피해자들에게 돈을 주는 것이다. 만일 전국의 피해 주민이 10만명이라면 1년에 전기료를 1만원 올려서 매년 500만원의 보상금을 줄 수 있다. 그렇게 돈을 많이 준다면 차라리 우리 동네에 송전탑을 세우겠다고? 그렇다면 경매에 부쳐서 가장 적은 돈을 제시하는 지역에 송전탑을 세우면 된다. 참여정부 시절에 ‘방폐장 문제’를 해결한 방식이다. 경매도 “입장 바꿔 생각을 해 봐”를 시장 방식으로 실천하는 것일 뿐이다. 송전의 거리를 대폭 줄여서 전력낭비까지 막을 수 있도록 아예 수도권에 송전탑을 세우자는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의 역제안(경향신문 10월10일자)은 더욱 더 경제적이다.하지만 “입장 바꿔 생각”을 해 보면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 해도 아이들이 암에 걸릴지도 모르는 위험을 선뜻 받아들이기는 힘들 것이다. 그럼 외부성 자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없을까? 있다. 원자력 발전이라는 대규모 전력생산이 고압송전탑을 요구하는 것이므로 각자 자기 지역에서 발전해서 소비하면 외부성이 없어진다. 태양광 등 재생가능한 에너지를 생산한다면 금상첨화일 테고 전기 소비를 대폭 줄이는 것은 더욱 좋은 방법이다.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의 화려한 조명을 줄이고 집집마다 콘센트에서 플러그를 뽑는 것, 그리고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의 전기료 보조를 끊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외부성 자체를 없앨 수 있다.그뿐만 아니다. 기후온난화 등 에너지 문제를 생각해 보면 어차피 우리는 재생가능에너지의 분산 발전체제로 가지 않으면 안된다. 시민이 참여해서 정책을 공동수립(co-construction)해서 공공서비스를 공동생산(co-production)하는 21세기형 사회혁신은 우리를 이런 결론으로 이끌 수밖에 없다.밀양은 우리의 에너지 문제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게 만드는 선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 언론은 밀양의 할머니들을, 배고픈 돼지에게도 모독일 “호모 에코노미쿠스”로 만들고 있다. 우리 모두 막연한 죄책감에서 벗어나려고 은연중 보조금이라는 ‘핑계’에 기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도덕감정을 전제로 하지 않고 ‘국가의 부’를 추구하는 것은 위험하기 이를 데 없다. 성장 제일주의에서 벗어나 입장을 바꿔 생각하는 것으로 경제관을 바꾸는 것이야말로 ‘창조경제’의 첫걸음일 테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 이어 박근혜 대통령의 귀도 쇠귀일까?*본 글은 경향신문에 게재된 원고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