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에 불법개입에 헌정을 유린한 국가정보원에 대한 해체요구가 매우 높다. 위기에 빠진 국정원은 통합진보당이 “내란을 예비음모했다”는 허무맹랑한 죄를 만들어 내 온갖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여기에 “국정원 개혁”의 목소리를 높이던 일부 민주인사들과 야권 정치인들까지 엉거주춤한 자세로 “사실이라면 큰일”이라며 국정원의 여론구도에 휩쓸리고 있는 현상이다. 

내란죄란 무엇인가? 형법 제87조 규정된 내란죄(內亂罪)는 국토의 참절 또는 국헌문란(國憲紊亂)을 목적으로 하여 폭동하는 죄를 말한다. 

국토참절은 대한민국 영토의 일부를 떼어내 이를 장악하려는 일련의 행위이다. 국헌문란이란 헌법의 기능을 현저히 정지시키려는 행위인데 이는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하여 전복(顚覆)하려 하거나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폭동’이란 다중(多衆)이 결합하여 폭동·협박을 행하는 것으로서, 그것이 적어도 한 지방의 안녕과 질서를 파괴할 정도의 규모여야 한다. 

국정원은 정상적인 수사기관이 아니라 해체의 대상, 철저히 개혁되어야 하는 대상이다. 그들의 대선개입에 분노하며 “국정원 정치개입 반대”를 앞장서 외치던 민주인사들이 정작 국정원이 노골적인 진보정치탄압, 여론왜곡에 나서자 “사실이라면 큰일”이라며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역사의 희극으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 

왜 그런가? 이는 33년전에 있었던 충격적인 “내란음모 조작사건”이었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사건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사건 

지금으로부터 33년전인 1980년, 전두환 신군부가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하던 그 무렵, 야권과 재야의 민주주의 요구가 눈엣가시였던 전두환 신군부는 당시 야권 정치인이자 지금까지 민주당의 정신적 뿌리인 김대중 전 대통령을 5월 17일, 학생·노조소요관련 배후조종 혐의로 체포했다.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인사를 비롯해 학생운동 지도자, 노동조합 간부, 종교임 등 26명이 중앙정보부에 체포되었다고 한다. 




그 때까지만 하더라도 전두환 일당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 씌운 혐의는 “학생소요 배후조종”이었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의 민주주의를 향한 뜨거운 열망은 신군부에 의해 결코 꺾이지 않았다. 광주시민들의 1980년 5월 17일의 비상계엄해제 요구 투쟁은 역사적인 민주주의 수호투쟁이었던 5.18 광주항쟁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5월 광주항쟁이 광주시민의 피로 얼룩진 이후였던 1980년 7월 4일, 전두환 신군부 계엄사령부는 5.18 광주항쟁의 주동자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지목해 그와 사건관련자 37인을 이른바 “내란음모” 활동으로 기소하였다. 이것이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사건이다. 

<프레시안>의 보도에 따르면 당시 계엄사령부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 “해방직후부터 좌익활동에 가담한 열성 공산주의자였으며 해외에서 북과의 노선에 동조하는 반국가단체인 <한민통>을 만들었으며 이들 불순분자들과 근래에도 접촉해왔다”고 발표하였다고 한다. 

이들은 2만 3000자에 달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공소장을 언론에 일제히 발표하였다. 

계엄사령부가 주목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활동은 <한민통>,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의 결성이다. 이미 1977년, 중앙정보부는 재일동포 유학생들을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의 간부로부터 지령을 받고 국가기밀을 탐지ㆍ수집했다는 혐의로 구타, 물고문, 전기고문 등 각종 가혹행위를 당했고 한민통 소속 재일지도원의 지령에 따라 국내에 잠입해 간첩행위를 했다는 등 허위 사실을 자백한 것이다. 계엄사령부의 주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한민통 결성을 준비하고 의장활동을 했다는 부분이다. 

뿐만 아니라 계엄사령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작성했다는 “예비 내각명단”도 압수하였다. 이 명단은 군사재판에 사건을 입증할 수 있는 유력한 증거자료로 제출되었다. 

당시 계엄사령부는 전남대 복학생이었던 정동년 씨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두 차례에 걸쳐 300만원과 200만원씩 모두 500만원을 받았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광주로 내려가 폭동을 일으키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하였다.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이었던 김홍일씨를 비롯해 김옥두, 한화갑, 권노갑 등 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인사들도 남산 중앙정보부 취조실로 끌려갔다. 

계엄사령부는 군사재판을 통해 1981년 1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그러나 이 사건은 이른바 “김대중 구명운동”으로 확산되어 정치인 김대중이 해외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고 내외의 김대중 구명운동에 의해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82년 형 집행정지로 출소해 미국길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역사에 완전범죄란 없다. 이후,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사건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피해자들이 고문에 의한 강압수사를 받았다는 사실들이 드러났다. 중정부 요원들은 김홍일 전 의원에게 “니 아버지가 빨갱이라고 쓰라”고 강요했으며 김옥두 전 의원도 고문당하면서 “김대중이 빨갱이라고 쓰라”고 강요받았다고 회고하였다. 고문을 못 이겨 허위자백하였던 정동년씨는 이후 두 차례나 자살을 기도했다고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통령 임기를 마친 2003년에 김대중내란음모사건에 대해 재심을 청구해 2004년, 이 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1979년 12·12사태와 1980년 5·18을 전후해 발생한 신군부의 헌정파괴범행을 저지하거나 반대함으로써 헌법의 존립과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행한 정당한 행위이므로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에 해당, 범죄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2010년 3월 24일, 진실화해위원회는 한민통 간첩조작사건이 수사기관의 강압적인 수사로 조작됐다고 밝혔다. 서울고법 형사8부는 2011년 9월 23일 이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던 김정사와 유성삼이 청구한 국가보안법 위반 재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진보당 내란음모 조작 

지금의 진보당의 내란음모 조작에 대해 일부 민주당과 국민들은 “사실이라면 큰일”이라며 엄정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이는 정확히 1980년 7월,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사건이 터졌을 때 “사실이라면 큰일”이라며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던 당시 사회상과 그야말로 일치한다. 계엄사령부가 계속적으로 터트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한민통 연계성, 그리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자택에서 나왔다는 “예비 내각 명단”이 그야말로 “사실이라면 큰일”이란 것이다.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억울함이 지금 통합진보당의 억울함에 비교할만 하다. 

1980년, 정작 내란은 누가 저질렀는가?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 신군부일당은 정권찬탈을 목적으로 군부대를 동원, 12.12 쿠데타라는 내란을 실제로 도모하였다. 부당한 방법으로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 신군부가 반대세력을 억누르기 위해 조작한 사건이 “김대중 내란음모조작사건”이다. 

당시 계엄사령부의 의도는 지금의 국가정보원과 정치적 의도와 완전히 일치한다. 지금 국정원과 박근혜 정부는 2012년 대통령 선거에 국가정보원이 부당하게 개입하였으며 그 사건으로 국정원 해체, 대통령 책임 요구가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다. 이런 판국에 국정원은 저들의 안위를 보장하고 정치적 반대세력을 억누르기 위해 통합진보당의 내란음모사건을 조작했을 개연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보다 취약한 진보당 내란음모 조작 

일부 인사들은 국정원이 공개한 녹취록을 그 무슨 국가변란의 유력한 증거로 보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통합진보당 조작사건은 공소내용 자체를 볼 때 1980년 당시에 논란이 되었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사건보다 훨씬 더 취약하다. 

첫째,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당시, 계엄사령부는 실제로 2천여명의 광주시민이 피를 흘렸던 5.18 광주항쟁을 여론전에 악용하였다. 광주항쟁을 “국가내란의 실제행위”로 규정, 내란의 실체라고 왜곡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통합진보당 내란예비음모는 일개 강연의 녹취록이 있을 뿐, 왜곡시켜 갖다붙일 행동요소마저도 전무하다. 녹취만 있고 행동이 없다. 정치적으로 만들어진 사건일 뿐 내란음모 자체가 적용될 수 없는 것이다. 

둘째,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당시에는 당시 신군부가 “예비 내각명단”을 입수해 증거로 제출하였다. 정권을 탈취할 경우의 조직체계를 구성함으로써 내란의 목적성을 입증하는 자료란 주장이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의 내란음모 조작에는 하다못해 1980년 신군부 수준의 “조직표”도 전무하다. 국정원은 진보당 일부 인사들이 “RO”라는 혁명조직을 결성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정작 구속영장이 발부된 인사들에게 마저도 RO 가입 혐의가 나와있지 않은 상황이다. 아무런 조직체계, 지휘통솔체계가 없는 상황에서 국가변란을 기도한 반국가단체로 구성될 수도 없다. 

셋째, 김대중 내란음모 당시에 신군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행적을 왜곡 보도하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유신시절, 일본에 계실 때 <한민통> 인사들을 만난 사실들, 동교동 자택에서 압수된 “예비 내각명단”을 내란의 증거로 여론전을 펼쳤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의 내란음모 조작에는 이같은 구체적 행적조차 없다. 

국정원에 의해 금품매수된 조력자(프락치)가 2013년 5월 13일의 강연장에 함께 들어가 강연과 참가자들의 토론을 녹취한 것이 전부이다. 이는 “내란음모”가 구성될 자격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허무맹랑한 내란음모 조작에 모두 맞서야 

많은 이들이 지금의 진보당 내란음모 조작사건을 1980년에 있었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사건에 비교한다. 그러나 실제 진보당 내란음모 조작사건은 1980년의 조작사건보다 더 허술하며, 더 정치적이다.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사건이 조작임을 인정받는데는 23년이 걸렸다. 그러나 국가정보원의 진보당 내란음모 조작은 법정으로 가기도 전에 검찰의 기소과정에서부터 손질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문제는 부화뇌동하는 일부 인사들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정치적 근거로 삼고 있는 민주당의 일부 인사들이 국정원의 “내란음모 조작”에 맞설 대신 “사실이라면 큰일”이라고 엉거주춤해 있는 모습은 민주주의를 추구한다는 정치노선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허무맹랑한 진보당의 내란음모 조작으로 더욱 명백해진 것은 국정원 해체이다. 야당에 대한 노골적인 정치사찰과 정치탄압, 금품매수 행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지금 모든 야권은 일치단결해서 국가정보원의 정치공작에 단호히 맞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