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실명제와 토지공개념의 엇갈린 운명

By | 2013-08-19T11:02:00+00:00 2013.08.19.|

지난 12일 금융실명제가 전격 실시된 지 20주년을 맞았다. 실명제는 본인 확인 없이 아무 가명이나 대고도 은행계좌를 개설하던 관행에 종지부를 찍은 개혁안으로서 93년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직후에 취해진 조치다. 물론 가명계좌 개설은 중단됐지만 남의 이름으로 계좌를 개설하는 차명계좌는 막지 못해서 이를 보완하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마침 박근혜 정부가 지하경제 양성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건 만큼 기대를 해보겠다. 금융실명제 추진은 사실 중도에 좌절됐지만 80년대 말 노태우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하던 개혁안이었다. 노태우 정부는 당시 금융실명제와 함께 또 다른 중요한 개혁정책을 준비하고 있었다. 바로 ‘토지공개념’을 도입하는 것이었다. 노태우 정부는 비록 선거로 집권했지만 군부에 뿌리를 둔 태생적 한계가 있었던 탓에, 취약한 지지 기반을 만회하고자 금융실명제와 토지공개념이라는 개혁안을 들고 나왔다. 그런데 노태우 정부가 먼저 개혁 입법에 성공한 것은 금융실명제가 아니라 토지공개념 관련 3법이었다. 금융실명제는 비자금 조성을 해 오던 재계와 음성적 정치자금에 의지하던 정치권의 반대로 무산되고 결국 김영삼 정부의 과제로 넘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토지공개념은 당시 경악할 만한 부동산 값 폭등과 이에 좌절한 국민들의 자살사태 등의 분위기를 업고 89년 전격적으로 국회를 통과해 입법화된다. 택지소유에 대한 법률·토지초과이득세법·개발이익환수에 관한 법률이 여기에 해당한다. 노태우 정부 아래에서 이뤄진 획기적인 개혁이라고 할 만 했다.물론 다 아는 것처럼, 무산됐던 금융실명제는 93년에 전격적으로 입법화되면서 지금 20주년이 됐지만, 89년에 전격적으로 도입됐던 토지공개념은 반대의 운명을 겪게 된다. 토지공개념 3법 가운데 택지초과소유부담금제와 토지초과이득세는 이후 헌법재판소가 위헌결정을 냄으로써 금융실명제와 달리 토지공개념은 현실적 힘을 잃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로 인해 도입 24주년이 된 토지공개념은 지금 실질적으로 사문화되고 말았던 것이다. 두 개혁안의 엇갈린 운명을 보게 된다.하지만 흥미 있는 대목은 ‘개혁 의제’로서의 토지공개념은 힘을 잃지 않고 지속적으로 사회적 변동기마다 이슈가 됐다는 사실이다. 2000년대 초반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던 시기 집권했던 참여정부는 토지공개념을 정책 테이블로 다시 끄집어냈고 세금폭탄 공방이 오가는 와중에서 종부세를 입법화했다. 또한 종부세를 반대했던 한나라당이었지만 2007년 대선 후보들의 경선국면에서 일부 후보들은 토지공개념을 개헌안에 넣자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당시 홍준표 후보는 “국가가 장기적으로 국·공유지를 비축해 토지가 공공재라는 인식이 일반화되도록 해야 한다”면서 토지공개념 도입 필요성을 강조하고 성인 1인1주택제·토지소유상한제 등을 공약했다. 원희룡 후보도 “비정상적인 대한민국 부동산 공화국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헌법에 토지공개념 근거 규정을 만들어 넣는 개헌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경향신문 2007년 6월29일자) 5년 뒤인 2012년에는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나섰던 정세균 의원이 똑같은 주장을 다시 하기도 했다. 이처럼 의제로서의 토지공개념이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여전히 우리사회에서 부동산 문제가 제대로 풀리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모든 인간의 토지 사용에 대한 권리의 평등성은 공기를 호흡하는 권리의 평등성처럼 명백하며 인간의 존재 그 자체에 의해 인정된다.”사회의 온갖 불평등과 빈곤이 토지의 사유에서 비롯된다면서 토지에서 발생한 모든 이익을 조세로 회수할 것을 주장한 19세기 후반 미국의 사상가 헨리 조지(Henry George)가 남긴 말이다. 토지는 사적 소유의 대상이 아니며 사람들이 평등하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하는 일종의 ‘공공재’라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 사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사실 자체만으로 이익이 발생하면 이를 국가가 모두 환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토지공개념이다.특히 헨리 조지의 주장을 보면 토지공개념은 경제민주화와 매우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토지에 대한 평등한 접근권을 주장하면서 토지 사유로 인한 지대이익을 조세로 환수해 불평등을 타파하자고 했기 때문이다. 부동산(토지)의 사적 소유와 독점으로 인한 지대이익 추구가 경제적 불평등을 초래하는 매우 중대한 원인이다. 통상 부동산 소유 등으로 인한 자산불평등 정도는 소득불평등보다 훨씬 크다. 예를 들어 상위 10% 고소득층이 전체 시장소득의 23.5%를 차지하고 있지만, 순자산은 그 두 배에 가까운 46.2%다. 확실히 자산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경제민주화 과정에서 토지공개념은 반드시 다시 짚어 봐야 할 중대 개혁과제라는 것을 말해준다. 박근혜 정부는 애초에 불가능한 부동산 경기부양에 매달리지 말고 차라리 토지공개념이라는 기초 위에서 토지주택정책, 주거정책 설계를 다시 해 봐야 한다.*본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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