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관계를 돌아본다 ③-2] 일본의 조선침략 후원자 미국 >“가쓰라-태프트 밀약” -2

By | 2018-06-29T17:03:39+00:00 2013.06.12.|

[한미관계를 돌아본다 ③-2] 일본의 조선침략 후원자 미국

“가쓰라-태프트 밀약” -2

 

루즈벨트의 일본 지원과 ‘가쓰라-태프트 밀약’

러일 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미국은 일본을 적극 지지했다. 루즈벨트는 1900년 부통령에 있을 당시 워싱턴 주재 독일대사 슈테른베르크에게 보낸 서한에서 “나는 일본이 조선을 차지하기를 바란다. 그러면 일본은 러시아를 저지하게 될 것이고, 이제까지 해온 것으로 보아 일본은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다”고 밝혔다.9)

시어도어 루즈벨트

러일전쟁이 발발하기 1달 전, 루즈벨트는 “러시아에 대항하는 일본에 도덕적 지원 이상의 것을 지체 없이 해 주겠다.”10) 고 하며 일본을 지원하겠다는 의도를 밝혔다. 루즈벨트는 일본이 미·영의 대기업들로부터 전비 차관을 받을 수 있도록 주선했다. 2007년 발간된 미국의 재야 사학자 캐롤 카메룬 쇼의 책 <The Foreign Destruction of Korean Independence(외세에 의한 조선 독립의 파괴)>에 따르면 루즈벨트는 카네기의 철강회사, 제이피 모건 등의 대기업을 통해 일본의 전쟁비용 약 7억엔(2007년 당시 가치로 14조원)을 조달했다고 한다.11)  또한 루즈벨트는 국방장관 태프트에게 “일본이 조선을 지배한다는 조항이 포함되는 한, 나는 강화조약의 일본 측 안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하여 일본의 조선지배를 앞장서서 추진했다.12)

1905년 7월, 태프트를 단장으로 하는 80명에 달하는 아시아 순방 사절단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발했다. 이 사절단은 하와이, 필리핀, 일본, 중국, 조선까지 들르는, 당시까지 미국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사절단이었다. 미국이 새로 점령한 하와이와 필리핀, 그리고 사실상 동맹관계를 맺은 일본에 들르고, 아시아에서 가장 큰 시장인 중국까지 가는, 미국의 태평양 제해권을 다지기 위한 행보였다. 

태프트는 7월 27일, 일본의 가쓰라 수상과 비밀 회담을 진행했다. 그리고 7월 29일,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어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사실상 인정하는 절차를 밟았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크게 3가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첫 번째는 필리핀에 대한 처리문제로 “필리핀은 미국과 같은 친일적인 나라가 통치하는 것이 일본에 유리하며, 일본은 필리핀에 대해 어떤 침략적 의도도 갖지 않는다”고 합의했다. 두 번째는 아시아 지역 식민지 재편에 관한 합의로서 “극동의 전반적인 평화를 유지하는 데는 영국, 미국, 일본 등 3국 정부의 상호 양해를 달성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며 사실상 유일한 수단이다”라고 하여 일본이 한반도와 만주, 영국이 중국 내륙, 미국이 필리핀에 특별한 이해관계가 있음을 서로 양해할 것을 합의했다. 

세 번째가 바로 조선의 처리 문제인데, 가쓰라는 “조선이 일본과 러시아가 벌인 전쟁의 직접적 원인이 됐다”고 주장하면서 “조선 문제의 완전한 해결이 전쟁의 논리적 결과이며, 이는 일본에 실로 중대한 문제”라고 밝혔다. 가쓰라는 “만약 전쟁 이후에도 조선에 맡긴다면 조선은 또다시 다른 국가들과 협정이나 조약을 맺어 전쟁 이전과 같은 복잡한 상황을 재발시킬 것이므로 일본은 이러한 상황의 재발 가능성을 막기 위해 모종의 확실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하여 일본이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할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드러내었다. 태프트는 가쓰라의 주장에 동의하는 것을 넘어 오히려 한 술 더 떴다. 태프트는 “조선이 일본의 동의 없이 외국과 조약을 맺지 못하게 요구하는 범위에서 일본의 군대로써 조선에 대해 종주권을 확립하는 것은 현 전쟁의 필연적 결과”라고 하며, 일본의 군사력에 입각한 조선에 대한 종주권까지 인정했다.13) 루즈벨트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내용을 확인한 후, 태프트에게 전문을 보내어 “당신이 가쓰라 백작과 나눈 모든 대화는 모든 면에서 절대적으로 타당하다”며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추인했다.

▲ 태프트와 가쓰라

미국은 가쓰라-태프트 밀약도 모자라 러시아-일본의 강화 회담인 포츠머스조약까지 중재하며 일본의 조선 종주권을 주려 애썼다. 심지어는 독일의 황제 빌헬름 2세에게 편지까지 보내어 한반도의 지배권을 일본에게 줄 것을 제의했다. 독일은 러일전쟁초기 러시아를 지원했으나 러시아-독일 동맹이 무산되면서 미국과 가까워지게 되고, 친일적인 미국의 극동정책에 동조하여 일본의 한반도 지배권을 인정했다.

그러나 조선 정부는 무능하게도 미국에 대한 환상에 빠져 일본의 조선 침략에 대한 거중조정을 미국에게 기대하고 있었다. 고종은 1904년 2월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대외 중립을 선언하고 이것을 미국정부에 통보했다. 조선은 미국이 조선의 중립을 보장해주길 바랐으나, 오히려 미국은 러일전쟁과 관련한 중립지역에서 한반도를 제외함으로써 일본이 조선의 주권과 영토를 침해할 수 있는 길을 터 주었다.14) 1904년 8월에 조선정부에 일본인 고문을 파견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제 1차 한일의정서 체결 위협 때에도 고종은 미국에 거중 조정을 요청했으나 역시 묵살 당했다. 1905년 8월, 포츠머스에서 러시아와 일본 사이의 강화 회담이 진행되자 고종은 미국에게 또다시 특사를 보내 포츠머스 회담에 조선 대표가 참가할 수 있도록 요청했으나 이마저도 거부당했다. 

조선침략 정책을 펼치던 일본은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을 조선에 강요하여 외교권을 박탈했다. 루즈벨트는 을사늑약이 체결되기도 전인 11월 8일, 다카히라 일본 공사의 방문 자리에서 일본이 주한미국 공사관의 철수를 원하는지 물었다. 그리고 미국은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열강 중 가장 먼저 공사관을 철수했다. 당시 주중 미국 공사 윌리엄이 루트 국무장관에게 보낸 1905년 11월 22일자 전문에 따르면, 고무라 주타로 일본 외상은 윌리엄에게 “미국이 미국 공사관을 철수함이 타당하다고 본다면 일본은 그것을 우의의 증거라고 간주할 것이다”라고 하며 미국이 나서주기를 희망했다. 미국은 전문을 받은 다음날인 11월 24일, 주한미국공사 모건에게 전문을 보내 공사관 철수를 지시했다.

제 2, 제 3의 ‘가쓰라-태프트 밀약’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조선의 종주국을 노리고 있는 열강 중 가장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다. 그러나 유럽 열강들은 일본의 조선 병합을 바로 인정하지 않았다. 유럽 열강과 일본 간에 조선 문제를 놓고 체결한 보호국 협정의 내용에 모두 “조선과 통상조약을 보장한다”는 부분이 있었다. 이것이 일본의 조선 지배권을 어느 정도 제약하고 있었다.15) 영국과 러시아는 2차 영일동맹과 러일전쟁 결과 맺은 포츠머스조약에서 일본에게 조선의 보호권이 있다고 인정했으나, 일본의 군사력에 입각한 종주권까지 인정한 것은 아니었고, 조선의 주권과 독립문제는 유보한 상태였다. 

이 때, 일본의 조선 병합을 사실상 추인해준 과정을 밟은 것이 미국이었다. 가쓰라-태프트 밀약 합의 2년 후인 1907년, 태프트는 다시 일본에 방문했다. 당시 미국과 일본 사이에는 ‘이민자 제한’ 문제가 있었다. 일본은 일본인 이민자를 제한하고자 했던 미국의 이민자 제한 정책을 받아들이는 대신 미국이 일본의 “조선 병합”을 승인하길 원했고 미국은 일본의 조선 병합을 인정했다. 이 과정은 미국과 일본 사이 4개의 협정을 맺으면서 차례차례 진행되었다.

1908년 3월, 일본은 ‘신사협정’에서 이민자 문제에 대해 미국에게 양보했다. 이제 미국이 일본의 조선 병합을 보장해야할 차례였다. 1908년 5월, 미국과 일본은 ‘중재협정’을 체결하게 되는데, 이 협정에서 “양 체약국 간의 분쟁이 사활적 이익, 독립, 국가의 명예에 대한 것을 경우” 중재재판에 회부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미국은 조선의 외교권이 일본에 넘어갔던 을사늑약 당시, 주한 미국 공사를 철수함으로써 사실상 조선을 주권국가로 인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것을 제도화 한 것이 바로 이 중재협정이다. 일본의 조선 병합문제를 ‘일본의 사활적 이익’이라고 해석할 경우, 중재협정에 따라 조미수호통상조약상 미국이 조선의 주권을 인정했던 것이 파기될 수밖에 없다. 미국은 일본의 조선정부 주권 침탈로 인한 미국의 손해 문제를 중재재판에 회부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16) 

그리고 미국과 일본은 ‘중재협정’을 맺은 지 불과 2주 만에 ‘상표협정’을 맺었다. ‘상표협정’에서 미국과 일본은 “일본국 정부는 발명, 특허, 의장, 상표 및 저작권에 관하여 현재 일본국에서 시행하는 것과 동일한 법령을 본 조약의 실시와 동시에 조선에서도 시행한다.”고 하여 조선에서 일본법이 적용되는 것에 대해 합의했다. 이것은 미국이 조선의 사법권을 박탈에 동의한 것이다.

또한 1908년 11월 30일, 미국은 일본과 ‘루트-다카히라 협정’을 체결하면서 조선을 일본의 ‘영토적 속국’으로 인정했다. ‘루트-다카히라 협정’에서는 “태평양에서 현상을 유지하고 상호간의 소유한 영토를 서로 존중할 것을 엄숙히 결의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태평양에서 서로 소유한 영토는 미국의 경우 필리핀이고 일본의 경우 조선이다. 게다가 조약상에서 서로 소유한 영토를 ‘영토적 속국들(territorial possessions)’로 표현하여 ‘조선이 일본의 속국’이라는 뜻을 더욱 명확하게 했다.17) 그리고 미국은 일본의 조선 병합 이후 1911년 2월, ‘미일신통상조약’을 통해 열강 중 최초로 일본의 조선 병합을 추인해 주었다.

1908년에 미국과 일본이 맺은 신사협정, 중재협정, 상표협정, 루트-다카히라 협정을 통해 미국은 조선과 맺은 조약을 사실상 파기하고 일본의 조선 병합을 국제적, 법적으로 지지하는 행보를 보였다. 대부분의 서구 열강들이 1911년이 되어서야 일본의 조선 병합을 승인한 것과 달리 미국은 1908년에 이미 4개의 협정을 통해 가장 먼저 일본의 조선 병합을 인정한 셈이다.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 이후 1908년 루트-타카히라 협정까지, 일본의 조선 병합 과정에서 미국에 비견될 정도로 일본 조선 침략 지지 조치를 취해준 열강은 병합 전에도 병합 후에도 없었다.

배신의 이름, 가쓰라-태프트 밀약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대표되는 1900년대 미국의 조선 배신행위는 태평양 제해권을 차지하고, 중국에 진출할 마음을 먹고 있었던 미국과 한반도와 만주에서 사활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일본이 야합한 결과였다. 미국의 국력이 단독으로 태평양과 동아시아를 장악할 수 없는 조건에서, 미국은 중국에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일본을 이용하여 유럽열강이 추진한 중국의 분할을 저지하고, 일본의 조선 병합을 인정하면서 필리핀을 지켜 태평양 제해권을 장악한 것이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일본이 조선을 병합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최초의 국제외교문서이다.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미국이 일본의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인정하자, 일본은 러시아와 포츠머스강화조약을 통해 일본이 조선의 보호국임을 인정받고, 을사늑약을 통해 외교권을 박탈하여 조약권을 박탈, 주권을 강탈했다. 1908년, 미국이 일본과 ‘상표협정’을 통해 조선의 사법권을 박탈을 합의하자 1909년, 일본은 조선정부로부터 기유각서를 받아내어 조선의 사법권을 강탈했다. 그리고 ‘루트-다카히라 협정’을 통해 미국이 조선을 일본의 속국으로 인정하자, 일본은 1910년 조선을 병합했다. 일본의 조선 병합과정에 필요한 제도적 조치를 미국이 사전에 합의해 준 것이다.18)

조선은 위기의 순간마다 미국에게 기대를 걸고 미국 정부가 거중조정을 해주길 바랐으나, 미국정부는 이를 철저히 배신하고 일본을 지원했다. 일본의 침략 앞에 미국의 배신까지 받은 조선은 결국 일본의 식민지 신세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미국은 1900년대 초반, 자력으로 중국 대륙에 진출할 수 없는 조건에서 먼저 태평양 제해권을 장악하려 했고, 일본을 이용하여 러시아를 견제했다. 미국은 태평양 제해권을 장악하고 군사력이 강성해지자 자신이 뒤를 봐주던 일본과 결별, 일본에 대한 경제제재로 전쟁을 유발한다. 결국 미국은 일본과 한반도 38도선 이남지역, 대만이라는 중국 땅 바로 앞에 미군을 주둔시키는데 성공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1900년대 있었던 미국의 일본 지원은 미국의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였던 것이다.

주석

9) 제임스 브레들리, <임페리얼 크루즈>, 프리뷰, 2010.8, 216p

10) 제임스 브레들리, 위의 책, 219p

11) 국민일보, <[단독]美, 한일합방 과정 日에 천문학적 재정지원>, 2007.04.26

12) 김기정, <미국의 동아시아 개입의 역사적 원형과 20세기 초 한미 관계연구>, 문학과 지성사, 2003, 189p

13) 김기정, 앞의 책, 189p

14) 원철, <제국주의 시대의 열강과 을사조약>, 역사학연구 제 27집, 451p

15) 최정수, <특사 태프트의 제2차 대일방문과 미일조약체제, 1907~1908>, 동북아역사논총 29호 2010, 

16) 최정수, 위의 글

17) 최정수, 위의 글

18) 최정수, 위의 글

   댓글을 달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