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인의 협동의 경제학1979년 경제학과를 선택했을 때부터 따진다면 내가 경제학을 공부한 지도 벌써 35년이 다 돼 간다. 하지만 그야말로 정교한 논리 체계인 경제학이 가르쳐 주지 않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우리 연구원에서 내 월급은, 금년에 졸업과 함께 입사한 막내 월급의 두배가량 된다. 이건 정당한 것일까? 경제학에서 대충 제시하는 답은 나와 막내의 한계생산성 격차 때문이다. 그 생산성을 계산하려면 새사연의 생산함수를 알아야 하지만 그런 게 있을 리 없다. 총 인원 11명의 구멍가게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삼성의 인사담당 부장도 자기 기업의 생산함수를 모를 것이다. 연구원에서 하는 일만 놓고 볼 때 내 능력이나 경험이 막내보다 더 많이 필요한 건 사실일 테지만 그 능력과 경험 역시 수많은 우연에서 비롯된 것이다. 작년에 연구원이 <리셋 코리아>라는 책을 낼 때 내 청와대 경험이 한몫한 건 틀림없다. 하지만 그 경험은 그야말로 우연히 고 노무현 대통령을 만났기 때문인데 그런 우연도 보상을 받아야 하는 걸까? 경제학도라면 한국의 “연구원 책임자 시장” 같은 걸 떠올리고 그 시장의 수요공급곡선이 만나는 그림을 떠올릴 것이다. 내 나이 또래의 국책연구원이나 재벌 연구원 책임자의 월급은 최소 10배에서 최대 100배까지 정도일 것이다. 나와 그의 사회 기여도가 그리도 많이 차이가 날까? 시장에 물건을 내다 파는 기업이라면 이런 측정의 문제가 한결 덜 한 게 사실이다. 예컨대 스티브 잡스가 스마트폰이라는 신상품의 대유행을 만들어서 천문학적 수입을 올린 능력은 분명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만들어 내기까지 사용한 지식 중에 잡스가 추가한 부분은 얼마나 되는 걸까? 피타고라스의 법칙부터 알고리즘까지 인류 지식의 창고에서 무상으로 갖다 쓴 지식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걸까? 나아가서 도대체 이자 수입에는 어떤 근거가 있는 걸까? 인류 역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고리대는 죄악이었는데 이젠 고리대를 창출하는 방법(금융공학)이 대학에서 가장 인기있는 과목이 되었다. 돈을 우연히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 불교식으로 말하자면 영겁의 우연이 겹치고 겹친 결과 부자의 아이로 태어났다는 것 외에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남에게서 돈을 받는 행위는 과연 죄악이 아닐까? 지금의 욕망을 참은 데 대한 보상(이른바 제욕설)이라는 건 분명 답이 아니다. 너무 돈이 많으면 다 써버릴 방법도 별로 없으니…. 만일 어떤 이가 이룬 사회적 성취의 99.99%가 인류의 오랜 지혜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리고 나머지 0.01%마저도 지독한 우연의 결과라면 어떻게 보상하는 게 옳을까? 어쩌면 최대한의 평등이 답일지도 모른다. 한 게으른 경제학도의 망상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런 세상은 이미 존재한다. 최고경영자와 신입사원의 월급 차이가 얼마 되지 않고, 무이자 은행이 존재하는 곳, 바로 “사회적 경제”가 그렇다. 지금 우리나라 방방곡곡에서 일고 있는 협동조합 붐이 가야 할 사회가 바로 그곳이다. 앞으로 이런 경제의 운영 원리, 그리고 발전 전략을 생각해 보자.* 이 글은한겨레신문에 기고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