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효과에 의지해 온 한국경제

By | 2013-05-15T14:40:05+00:00 2013.05.15.|

지난 수년 동안 70엔 언저리를 헤매던 엔화가 순식간에 달러당 100엔 시대를 열자 국내외 경제에서 환율 이슈가 크게 부각되고 있다. 최근까지 급격한 엔저현상을 관대하게 용인해 왔던 G7 선진국들 사이에서 조심스런 우려의 목소리도 들리기 시작했다. 엔화가치 하락으로 경기회복 기대가 커지는 일본과 달리 이웃나라인 한국에서는 수출경쟁력에 비상이 걸렸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환율 문제는 보호무역주의와 함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제경제의 가장 민감한 이슈였다. 2010년 가을에는 브라질의 만테가 재무장관이 ‘환율전쟁(currency war)’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격한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얼마 전까지 선진환율 문제는 주로 선진국과 신흥국가 사이에 불거졌고 선진국들이 비판의 당사자가 됐다. 신흥국들이 수출경쟁력을 늘리려고 인위적으로 자국 통화약세를 유도한다는 것이고, 그 때문에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들이 만성적으로 무역적자를 내고 경기회복이 지연된다는 것이다. 이른바 신흥국의 환율조작 혐의다. 미국이 중국을 대상으로 환율 조작국 혐의를 씌워 왔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들이 자국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역사상 최저 수준으로 장기간 떨어뜨린 금리와 대규모 통화팽창이 환율조작의 진정한 실체임은 이제 다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선진국의 초양적완화정책 책임론이다. 이 같은 극단적인 완화정책은 미국이 선도해 왔다. 독일의 반대로 애매한 입장을 보이던 유럽중앙은행도 스페인으로 경제위기가 번질 조짐을 보이자 지난해 가을부터 완화정책의 강도를 높였다. 그리고 일본의 아베 내각체제가 출범하면서 실시하고 있는 유례없이 강력한 완화정책이 정점을 찍는다. 일본은행은 2014년 말까지 100조엔 규모의 일본 국채와 기타자산을 매입할 것이며 2년 동안 본원통화를 두 배로 늘리겠다는 초양적완화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그 결과 달러당 70엔 수준의 엔화환율은 급격한 상승을 시작해 불과 4개월여 만에 100엔을 돌파했다. 당연히 엔화 대비 원화 환율은 폭락했다. 1년 전인 2012년 6월4일 100엔당 원화는 1천509원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그 후 지속적으로 떨어져 지금은 1천100원 미만으로 하락했다. 엔화에 비해 원화가치가 30% 가까이 올라간 셈이다.그러자 한국과 일본이 국제무대에서 경쟁관계에 있는 자동차와 전자 등 업계의 희비가 엇갈리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단 2013년 3월까지 돼 있는 도요타의 2012년 회계연도 순익이 전년 동기 대비 세 배 뛰었고 올해도 42%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소니도 오랜 적자에서 벗어나 흑자전환이 예상된다고 한다. 이들 기업의 주가가 급상승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반면에 한국의 자동차와 전자부문 수출경쟁력에 타격이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한국은행도 오랜만에 금리를 인하해 양적완화 대열에 합류하는 모양새를 갖췄다.그런데 상황을 좀 냉정하게 볼 필요도 있다. 고환율을 유지해 수출경쟁력을 확보하는 환율효과는 인접국에는 반대 역효과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는 전형적인 근린 궁핍화 정책의 하나다. 이런 효과로 인해 원래 없던 경쟁력이 만들어지거나 기존에 보유한 기술력이 사라지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도요타의 실적이 크게 개선된 것은 원래 도요타가 보유한 제품경쟁력에 더해 미국경제가 최근 다소 호전되는 데다 엔저효과가 얹어진 것이지 순전히 엔화 저평가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특히 우리나라는 북미와 아시아·유럽·남미 등으로 수출시장이 이미 다변화돼 있어 특정통화 대비 환율변동에 과거처럼 민감하지 않다. 더구나 자동차와 전자는 해외 현지공장 생산이 크게 늘어 과거보다 환율에 영향을 덜 받는 구조가 됐다. 사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인 경기침체 상황에서 한국은 두 가지 호조건을 누렸다. 하나는 중국효과다. 홍콩을 포함하면 대중국 수출비중이 무려 30%를 차지하는 국가는 대만을 제외하면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유일하다. 경제위기 국면에서도 8% 이상의 성장률을 꾸준히 유지해 온 중국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 최대 위기 국면에서도 그나마 선방할 수 있었다. 또 하나는 바로 환율효과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원화는 위기 이전인 2007년에 비해 거의 모든 통화에 대해 평가절하돼 왔다. 예를 들어 원-달러 환율은 2007년 말까지 920원대를 넘지 않았지만 2008년 이후 1천원대를 돌파했고 그 이후 계속 상승해 여전히 1천100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원-엔화 환율도 비슷하다. 예를 들어 100엔당 원화는 2007년까지 700~800원 수준에 머물렀다. 1천원으로 오른 것은 2008년 3월 이명박 정부가 고환율 정책을 공개적으로 구사하던 시점이었다. 지난해에는 1천500원까지 상승했다. 유로화나 위안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현상을 보였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원화만 저평가될 수는 없는 것이다. 수출경쟁력이나 국내경제 성장이 언제까지나 환율효과와 중국효과에 의지해서 지속되길 기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경기부진 이유를 ‘엔저 책임론’으로 몰아갈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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