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할 수 없는 북한의 재래식 무기

By | 2018-06-29T17:03:47+00:00 2013.03.20.|

북-미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며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대변되는 북한의 비대칭전력이 여론의 뜨거운 도마에 올라있다. 2012년 12월 12일, 인공위성 발사를 빌미로 유엔 안보리가 제재결의안을 채택하고 이에 대해 북한은 제3차 핵시험으로 맞서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지금의 군사적 위기를 지탱하는 배경이 비단 핵과 미사일로 대변되는 비대칭 전력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2010년 11월 23일의 연평도 포격전을 비롯해 수차례의 서해교전 등 지금까지 있었던 휴전선 인근의 모든 교전은 사실 재래식 무기를 통한 교전이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재래식 무기 없는 군사적 충돌은 불가능하기에 북한 재래식 무기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대응이 절박하다 하겠다.


 





북한의 무기 개발사

북한은 국가를 창건한 지 2년 만인 1950년, 한국전쟁에서 세계최대 군사대국인 미국과 전면전을 벌였다. 물론 중국인민지원군이 압록강을 건너와 북-중 연합군이 싸웠지만, 당시 중국도 공업설비가 부족하기는 북한과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1950년의 대대적 남진 이후, 전선이 휴전선 인근에 교착된 이후에, 북한군이 대규모 탱크전을 이끌었다거나 폭격기를 통한 융단폭격을 가했다는 보도는 찾을 수 없다. 제공권과 제해권이 사실상 미국을 중심으로 한 유엔군에 빼앗긴 상황에서, 북한은 산에 굴을 파고 “갱도전”을 벌이면서 기계설비도 지하로 옮겨 거기서 총을 만들고 수류탄을 만들어 싸웠다고 주장한다.

1994년, 북한연구소가 발행한 <북한총람>에 의하면 북한은 이미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대에 자체 무기생산 기반을 조성하였으며 1960년대에는 총기류를 비롯한 작은 화기 중심으로 군수생산을 늘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 시기에 이미 박격포, 무반동총, 방사포 로켓까지 자체생산하였으며 60년대 전반기에는 연대단위의 작전을 화력지원할 수 있는 병기류를 생산할 수 있었으며 60년대 후반기에는 사단급 작전지원용 병기를 생산하였다고 한다.

<북한총람>은 북한이 1973년에는 M-1973 장갑차와 K-61 수륙양용장갑차를 생산하였으며 T-59전차를 모방생산하였다고 한다. 해군력과 관련해서는 1972년에 고속정과 구축함을 자체 건조하였으며 1974년부터 잠수함을 건조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1978년에는 소련 T-55 전차의 개량형인 T-62 전차를 양산하기 시작하였으며 항공기 및 유도무기분야에서 부분적인 기술개조 효과를 보기 시작하였으며 관련 부품을 제작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상의 사실을 통해 북한의 군수무기는 해외수입보다 자체생산에 기초하고 있으며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군수부문 생산은 북한이 한국보다 우위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연구소는 1980년대를 북한이 신형무기를 생산, 도입하기 시작한 일종의 전환기로 규정하고 있다. “기존 무기의 양적확장에서 질적개선에 주력”한 시기라는 것이다. 북한은 이 시기에 항공기 및 유도무기 개발을 적극화하였으며 화학무기를 대량 생산하였고 스커드 미사일 개량을 통한 미사일 개발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1990년대 북한은 이미 이른바 “노동1호”라 불리는 중거리 미사일을 실전배치하였고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장거리미사일 기술을 축적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 시기에 미그-21과 미그-29를 도입하였다고 한다.

<국방백서 2012>로 본 남북한 군사력

그러한 결과, <국방백서 2012>를 살펴보면 북한은 재래식 병기의 양적 규모에서 여전히 한국군을 능가한다.

평시병력을 비교할 때 북한은 육군이 102만명으로 50만 6000명인 한국육군의 2배이며 공군도 11만명으로 6만 5천명인 한국공군의 2배에 육박한다. 그러나 북한해군은 6만명으로 해병대를 포함해서 6만 8천명인 한국과 대동소이한 수준이다. 북한은 지리적으로 볼 때에도 동서해가 연결되어 있는 남측에 비해 동서해가 분리되어 있으므로 다양한 해군작전을 벌이기 불리한 지형임을 알 수 있다. 북한은 또한 노농적위대, 붉은청년근위대를 비롯, 약 770만명의 준군사무력을 보유하고 있다.

부대와 장비 중심으로 살펴본다면 북한육군은 특전사를 포함해서 15개 군단 88개 사단으로 편제되어 있는데 비해 한국은 12개 군단 46개 사단 규모이다. 북한은 통상 5.9개 사단이 1개 군단을 이루는데 비해 한국은 3.8개 사단이 1개 군단을 이루는 바 군단의 규모는 북한이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목할 부분은 기동여단의 규모가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북한은 총 72개 기동여단을 보유한 데 비해 한국군은 해병대를 포함하더라도 기동여단이 14개에 불과하다.

전차를 비롯한 기계화력구성에 있어서는 한국군이 북한의 화력을 능가하기 어렵다. 북한은 지대지 유도미사일과 관련해 100여기의 발사대를 보유하고 있어 30기에 불과한 한국군을 능가한다. 국방백서가 밝힌 북한전차는 한국 2400대의 2배에 맞먹는 4200대에 달하며 다연장 방사포를 무려 4800문을 보유하고 있어 수도권 인근의 주한미군과 한국군 전력에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 군은 다연장 방사포가 200문에 불과한 형국이다. 국방백서는 야포 역시 북한은 총 8600문의 야포를 보유한 데 비해 국군은 5300문에 불과하다고 한다. 다만 장갑차에 있어서는 우리 군은 총 2700대의 장갑차를 보유해 2200대에 그치는 북한을 능가한다.

북한공군의 경우 전투능력을 갖춘 전투임무기가 총 820대로 우리 군 460대의 2배에 달하며 공중기동기도 330대에 달한다. 그러나 육, 해, 공군이 보유한 헬기는 국군이 680대로 북한군의 300대를 능가하며 훈련기도 남측은 190대를 보유하고 있어 170대를 보유한 북한군에 비해 우세한 편이다.

해군의 경우, 북한은 다수의 소형군함을 보유하였다. 전투능력을 갖춘 전투함이 420척으로 한국군의 120척을 능가하며 상륙함은 260대에 이른다. 또한 북한은 해상지뢰로 불리는 기뢰부설함이 30대로 국군이 보유한 10대의 3배에 달하며 잠수함 역시 70척으로 남측 10척을 압도한다.

북한은 전시비축물자도 상당량을 비축하고 있다고 분석된다. 2011년 4월 7일, 당시 한나라당 윤상현 의원은 국회 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 질문에 앞서 배포한 자료를 통해 “북한 당국이 전시비축식량으로 정규군의 경우 30만t, 예비 병력과 일반인 등의 전쟁수행을 위해 70만t 등 모두 100만t의 전시 군량미를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하였으며 또한 “북한의 전시물자는 식량만이 아니며, 군 보관시설에만 150만t의 전시용 유류를 비축하고 있고, 탄약도 170만t을 비축하고 있다”고 밝혔다. 윤상현 의원은 “이는 ‘주요 전시물자는 목표치 6개월분을 비축하라’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명령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고 부연했다.

많은 이들이 북한의 장비는 양적인 면에서는 많을지 몰라도 질적인 면에서는 경쟁력이 형편없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북한이 매년 꾸준히 자체생산무기를 해외로 수출하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SBS는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은 재래식 무기 거래를 통해 1년에 몇 억달러의 이익을 취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보도하였다.

북한의 전략전술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 직속 국방선진화추진위원장을 맡았던 이상우 전 위원장은 연평도 포격전이 있은 3-4달 후인 2011년 2월, 중앙 Sunday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4세대 무기를 갖췄다. 하지만 군의 구조나 전략, 운영체제, 사고방식은 2세대다. 반면 북한은 돈이 없어 대부분 무기가 2세대다. 그러나 전략·훈련·기획·사고방식은 4세대다. 그러니 어찌 싸워 이기겠나. 우리가 산업화와 경제 발전에 성공한 데 도취해서 정부, 군, 국민 모두 오만해지고 북한을 과소평가했다. 그 결과 오늘 이 모양이다.”라고 일갈하였다.

대통령 직속 위원장이 북한의 전략, 훈련, 기획, 사고방식을 4세대라 칭하며 “어찌 싸워 이기겠나”라고 일갈하는 대목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이상우 위원장의 지적은 지금 현재, 우리 군의 구조, 전략, 운영체제, 사고방식이 2세대에 불과하다는 충격고백이다. 그는 “연평도 포격이 터졌는데 한심하고 처참하게 당했다.”라고 밝혔다. 그는 “더 조사해야겠지만 북한은 무인정찰기까지 동원해 탄착 지점을 봐가며 쐈다. 완벽하게 준비했다. 없는 살림에 무인기를 띄우고, 재밍(전파교란)하고, 돈을 쏟아 부으면서 철저히 준비했다.”며 심지어는 “국방부에 가서 ‘통일 되면 포격을 기획한 북한 장교를 불러 술 한잔 사고 싶을 만큼 빈틈없는 기획이다. 국방부 당신들은 기합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밝힌 것이다.

이 대목은 전투에서 전략과 전술이 차지하는 중요도를 알고 있는 군 지휘관만이 할 수 있는 발언이다. 전투는 사람이 행하는 활동이며 명령이 내려지면 그 명령을 집행하는 시간의 흐름으로 하나의 전투작전이 나타나게 된다.

전투를 기술장비수준만 비교하면서 그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지난 역사의 전쟁사에서도 전혀 통용되지 않았다. 이순신 장군께서는 명량해전에서 불과 13척의 함선으로 133척의 일본해군을 격퇴시켰으며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미군은 세계최대의 군사력을 가지고도 아시아의 작은 나라들을 점령하지 못하였다. 아프간 전쟁은 10년을 경과하고 있지만 적외선 탐지기, 로봇탐지기, 열추적미사일로 완전무장한 미군들이 AK 소총 한자루 들고 저항하는 탈레반 의용군에게 10년째 고전을 면치 못하였다.

북한의 특수전, 전차전

전문가들은 북한의 재래식 병력 가운데 가장 주목해야 하는 대상은 바로 북한의 특수전 병력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와 더불어 전차를 앞세운 돌격전 능력 역시 주요하게 검토해야 할 사안이다.

조선일보는 2010년 12월 30일, <국방백서 2011>를 인용하며 북한은 경보병사단을 전방군단에 편성했고, 전방사단에 경보병연대를 추가 편성하는 등 특수전 능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하였다. 북한의 특수전 병력은 2006년 국방백서에는 12만명, 2008년에는 18만명에 이어 2010년에는 20만명으로 계속 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당시 조선일보는 국방부 판단을 인용하며 북한의 특수전 병력이 유사시 땅굴 등을 이용해 우리의 후방 지역으로 침투해 주요 목표 타격, 요인 암살, 후방 교란 등의 작전을 수행할 것이라고 보도하였다.

일각에서는 한미연합군의 정밀대응타격으로 북한 특수부대와 전차부대는 남진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북한은 전자전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 한미연합군의 정밀대응타격이 언제나 위력을 발휘할 것란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우리 군의 정밀대응타격 능력이 뛰어나다면 연평도 포격전 당시 우리 해병대를 포격한 인민군 포대는 초토화되었어야 하지만 민주당 박지원 의원이 공개한 인공위성 사진에 의하면 우리 K-9 자주포는 인근 야산과 배추밭에 포탄을 떨어뜨려 놓았을 뿐이었다.

북한군의 특수부대가 강력한 전파교란과 함께 대거 남하하게 되면 우리 군의 부대간 인접이 끊기게 되고 전방과 후방의 구분이 사라져 이른바 전선의 개념이 모호해지는 혼전양상이 펼쳐지고 만다.

전차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한미연합군이 시속 60km로 쇄도해 들어오는 북한전차를 제지할 방법은 아파치 헬기에서 발사되는 대전차미사일과 A-10 전투기에서 발사되는 요격미사일로 피격하는 것인데 북한의 전자전 능력이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성급한 재래무기의 충돌은 제2의 연평도를 불러올 수도 있다.

키리졸브 훈련이 막바지에 달하면서 미군은 B-52 전략폭격기를 기동시키는 등 한반도 정세가 갈수록 긴박해지고 있다. 충돌은 참상이고 파국을 낳는다. 대북강경정책은 답이 될 수 없으며 오로지 대화가 유일한 해법이란 것은 2000년대 이후 10여년의 값진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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