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후보의 눈빛이 흔들린다. 경황이 없어서, 어린 동생들 생각에 30년 전 6억원을 받았고 나중에 돌려줄 거라는 말까지 했다. 만일 어린 동생들 때문에 모든 게 용서된다면 “무전유죄”를 호소하는 대부분의 범죄자는 무죄다. 이처럼 이정희 후보는 송곳처럼 박근혜 후보의 아킬레스건을 찔렀다.5년 전 유권자들은 무려 14건이나 되는 이명박 후보의 전과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어떻게든 경제를 살릴 거 같은데 그 어떠랴”는 괴이한 분위기에 휩쓸렸다. 5년이 흐르는 동안 경제는 위기에 빠졌고 대통령의 모범을 따라 주변인사들은 줄줄이 전과자가 되었다. 이번엔 “어떻게든 위기를 극복하겠지…적어도 이명박보다는 낫겠지”, 현직 대통령의 실정이 심판의 대상이 아니라 비교 대상이 되는 요상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1차 토론에서 박 후보는 시종일관 굵은 기조를 유지했다. “위기가 닥쳤다, 신뢰의 정치를 통해 국민통합을 이룩하겠다”는 것이다. 핵심어는 위기-신뢰-통합이다. 박 후보의 취약점은 과거에 있지만 미래의 심장은 여기에 있다.정치에선 박 후보의 위기-신뢰-통합이 그럴듯해 보인다. 박 후보가 30년 전 청와대에서 나온 이래 한 일이라곤 한나라당-새누리당을 위기의 수렁에서 건진 것뿐이다. 분명 박 후보는 적을 간명하게 규정해서 궤멸시키는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고도성장의 추억”은 그를 ‘선거의 여왕’으로 만들었고 보수층을 결집시켰다. 그러나 경제도 그렇게 될까?현재의 경제위기는 한마디로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은 세운다) 때문이다. 시장에 모든 것을 맡겨서 양극화를 초래한 결과가 세계경제의 위기이고 곧 한국의 위기다. 박 후보의 “줄푸세”가 “시장만능주의(market fundamentalism)”의 한글 번역이니 당연한 일이다. 최근 새누리당은 “줄”은 빼고 “푸세”만 한다지만 지난 5년 감세액만 82조원(국회 예산처 추산)이었고 세법을 고치지 않는 한 이런 재정상태가 계속된다는 걸 의미한다. 위기에 빠지면 부자에게 증세해서 아래로 돈이 흐르게 해야 하는데 이런 기본적 위기대책을 아예 포기했다는 얘기다.박 후보는 “줄푸세와 경제민주화는 다르지 않다”고 강변했다. 최근에는 경제민주화가 재벌의 투자를 가로막는다고 주장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줄푸세”와 박정희의 “삽질”을 실천한 “불도저”였다. 그러나 주로 돈을 챙긴 재벌의 투자는 그다지 늘어나지 않았고 고용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당연하다. 불황기에 투자는 늘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중산층과 서민들의 소비가 늘어나도록 하는 게 즉효약이다.1000조원에 이르는 가계부채가 이들의 소비를 가로막고 있다. 박 후보는 18조원의 ‘행복기금’을 조성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정부보증 채권을 발행해 은행의 부실채권을 해결해 주겠다는 데 불과하다. 즉 정부 돈으로 은행의 골칫거리를 해결해 주겠다는 것이다. 올바른 방향은 채무자들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필요하면 빚을 탕감해주거나 이자를 줄여주고 괜찮은 일자리를 얻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에 필요한 재원은 지난 5년간 천문학적 돈을 번 은행 스스로 조달해야 한다. 여기서도 돈이 채무자에게, 즉 아래로 흐르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경제는요?”가 통하지 않는 이유는 그의 선문답을 알아서 실행할 주변이 모두 “줄푸세”의 주역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아직도 돈이 위로 흘러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이런 줄푸세가 양극화, 즉 국민 분열을 초래하고 결국 경제위기를 심화한다는 것은 세계와 우리의 역사가 이미 증명했다.박 후보의 심장이 여기에 있다. 경제에서 그의 “위기-신뢰-통합”은 더 큰 위기와 불신, 그리고 분열로 이어질 것이다. 1차 토론에선 박 후보가 조연에게 발목을 찔려 중심을 잃었는데도 주연은 그저 겨냥만 했다. 조연만 빛난 드라마는 실패한다. 과연 문재인 후보는 그 심장에 최후의 일격을 가할 수 있을 것인가? 이번 선거는 다음주 TV토론에서 또 하나의 결정적 고비를 맞을 것이다.* 이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된 글입니다.